[북리뷰]신의 이름으로 장부를 기록하다
2014 03/11ㅣ주간경향 1066호
<1494 베니스 회계>
루카 파치올리 지음·이원로 옮김·다산북스·2만3000원
루카 파치올리는 15세기에 활동한 수학자이며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였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지식인 계층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대단히 재산이 많아서 생업에 종사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읽고 쓰고 공부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야 했다.
세속으로부터 가장 먼 삶을 살아야 할 기독교 수도사가 가장 세속적인 주제라 할 수 있는 상인의 장부 기록법에 대한 책을 쓴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는 <Summa de Arithmetica, Geometirica, Proportioni et Proportionalita>라는 책을 토스카나어와 베네치아어로 써냈다. 제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시피 <Summa>는 대수학, 기하학 등 수학의 각종 영역을 넓게 다루어 집대성한 책이다.
문제는 그 중 포함되어 있는 ‘Treatise de Computis et Scripturis’라는 부분이다. 번역하자면 ‘상업적 계산과 기록’이라는 뜻이며, 말 그대로 상인에게 필요한 계산 및 기록법이 적혀 있다.
그 ‘계산과 기록’이란 다름 아닌, 괴테가 “인간의 지혜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라고 극찬하기까지 한 복식부기법이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가 논쟁을 하면서 때아닌 화제가 되기도 했던 복식부기는 어떤 거래가 있을 경우 그것을 원인과 결과에 따라 나누어 동시에 기록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신용카드로 7000원을 내고 국밥을 한 그릇 사먹었다고 해보자. 그것을 ‘-7000원 국밥’으로 적어둘 수도 있겠지만, 복식부기 방식대로라면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저녁식대 7000 // 미지급금(신용카드) 7000.’
이 차이는 명백하다. 단식부기가 아니라 복식부기를 택함으로써 내가 쓴 7000원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식부기식으로 적어두면 지금 사용한 7000원이 나중에 신용카드 결제일에 또 빠져나가는 장면을 보며 혼란을 겪게 되지만, 복식부기를 해놓으면 그럴 우려가 없다.
그래서 15세기의 수도사는 “누구라도 한눈에 거래내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차인(돈을 꾼 사람)과 대인(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정리·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러나 <1494 베니스 회계>는 오늘날의 실용서들과는 퍽 다른 인상을 준다. 모든 재산을 기록하고 목록으로 만들며 그 경제적 가치를 파악하라는 내용은 극히 세속적이지만, “상인은 그의 모든 장부의 첫 머리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은 영락없는 종교 서적이다.
세계 최초로 복식부기에 대해 설명하고 기록하는 <1494 베니스 회계>에는 이렇듯 종교적인 가르침과 경건한 태도가 한껏 스며들어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결코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닌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장부를 적는 상인의 경건함과 정직함이 없다면, 서로의 신용을 걸고 거래하며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자본주의는 거대한 투전판으로 전락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차변과 대변으로 나누어 모든 사안을 이중으로 기록함으로써 기록자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자본주의의 출발점인 셈이다. 회계 조작으로 경영 손실을 만들어내 노동자를 해고하는 일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가 공부해야 할 책이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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