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2

[별별시선]엄마 없는 하늘 아래

“방송에서 백종원을 ‘백주부’라고 한다. 집안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주부다. 주부는 대체로 엄마다. 백주부를 ‘백종원 엄마’라고 풀면 백종원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다. 대중이 백종원을 통해 얻으려는 건 엄마의 음식, 엄마의 사랑, 그렇다, 엄마다.”

최근 예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외식업자 백종원을 둘러싼 대중적 열광을 두고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내린 평가다. 발언 자체가 문제적이지만, 일단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황교익은 <집밥 백선생>을 보긴 했을까?

<집밥 백선생>은 연령대별로 나름 안배된, 하지만 요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네 남자에게 백종원이 아주 기초적인 레시피와 기술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타깃 시청자는 ‘엄마의 사랑’이 결핍된 ‘한국 맞벌이 부부의 1호 자식들’인 ‘1980~1990년대생’이 아니다. 평생 손에 물 묻힐 일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갑자기 자기 손으로 밥을 챙겨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중년 남성들이다. 그것은 <집밥 백선생>의 1화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방송을 하다 보면 제작진이 의도한 타깃 시청자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상세한 시청률 표가 없으니, 논의를 위해 일단 황교익의 말대로 1980~1990년대생들이 <집밥 백선생>에 열광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집밥’이니까 ‘주부’가 하는 것이고, ‘주부’니까 ‘엄마’일 것이라는 자동연상은 적잖은 의문을 남긴다.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집밥 백선생>에서 가장 차별화된 키워드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이지 좋은 선생이다. 학생의 수준에 맞춰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가르쳐준다. 이렇게 만들면 무슨 맛이 날지 상상해보라고 한 후, 당장 실습부터 해서 출연자들의 결과물에 대해 리뷰해주고,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유도한다. 그러니 시청자들 역시 손쉽게 따라해볼 용기를 낼 수 있다. 방송에 나온 식재료가 다음날 품귀 현상을 빚는 것은 괜히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집밥’과 ‘엄마’가 분리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라는 숭고한 이름 아래, 오직 여성에게만 쏠리던 가사노동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비로소 남자들에게 넘어오기 시작했다. 남자도 ‘집밥’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가 TV를 통해 전국에 유포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방영된 ‘통조림을 이용한 생선 요리’편을 떠올려보자. 왜 통조림을 쓰는가? 백종원은 생선을 사온 후 냉장고에 넣었다가 조리하고 잔여물을 버릴 때까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비린내가 나고 곤란한 상황을 만드는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내가 본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이 TV에서 요리를 했지만, 가사노동의 덧없는 고통을 이렇게 공정하게 전달하고 설득한 사람은 없었다.

황교익의 식재료 중심주의에는 분명 경청해야 할 내용이 있다. 그러나 백종원에 대한 대중적 열광을 분석하는 그의 시선은,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지만 시간도 없고 경제력도 부족한 엄마들의 죄책감을 부추긴다는 면에서, 무심하고 또 잔인하다. “맞벌이로 바빠 내게 요리 한 번 가르쳐준 적이 없는 엄마와 달리 부엌의 온갖 인스턴트 재료로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백종원의 인기 비결이라고 황교익은 말한다. 그런 논리라면, 아이가 집밥을 못 먹고 자라는 것은 엄마가 맞벌이를 안 해도 될 만큼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아빠 탓 아닌가?

아빠가 돈 벌고 엄마가 살림하고 애 둘 낳아 기르는 4인 가족 모델은 수명을 다한 지 오래다. ‘집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엄마’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구시대적, 여성차별적 세계관은 더더욱 현실 적합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집밥 백선생>의 성공은 변화한 세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엄마주의자’들이 엄마의 손맛 타령을 한다 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요리는 생존을 삶으로 바꾼다. 다 큰 어른들이 엄마 집밥 타령하는 것은 보는 사람마저 부끄럽다. 많은 남자들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스스로의 삶을 가꾸어나가면 좋겠다.


입력 : 2015.07.12 21:23:15 수정 : 2015.07.12 21:24:1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12212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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