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2

[북리뷰] 이성애도 한때는 정상이 아니었다?

사랑의 역사
루이-조르주 탱, 문학과지성사, 1만3천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전 세계의 국가를 하나의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다. 동성커플의 결혼을 법으로 인정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말이다. 영국의 시사·경제주간지 <The Economist>에 의해 '게이 디바이드'라고 명칭되기도 한 이 격차는, 지난 6월 26일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각 주는 동성커플의 결혼을 막을 권한이 없다'고 판결하여 미국 내 동성혼을 전면 법제화함으로써, 확연히 가시화되었다.

영화제작자이기도 한 김조광수 감독이 동성의 파트너와 함께 제출한 혼인신고서가, 우리의 민법 규정상 특별히 반려되어야 할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떠돌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 때, 우리는 '게이 디바이드'에서 선진국이 아닌 후진국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렵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난 6월 27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한국 사회는, 느리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루이-조르주 탱은 동성애자이며 동시에 흑인이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과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실천적 지식인이며, 학문적으로는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푸코의 방법론을 동원해, 사람들이 '자연스럽다', 혹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아주 근본적인 질서에 물음표를 던진다. 과연 '이성애'는 당연하기만 한 일인가?

우리는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고대 그리스 시절 시민이며 동시에 군인이었던 그들은 서로 동성애 관계를 맺고 전우로서 함께 전장에서 뒹굴었다. 저자는 문학 연구자답게 중세의 대표적인 서사시 '롤랑의 노래'를 사례로 든다. 롤랑의 뒤를 따라 약혼녀가 죽는 장면을 후대의 연구자들은 크게 강조했지만, 그것은 분량상 대단히 미비하며 극중 비중도 크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롤랑이 그의 맞수인 올리비에 경과 나누는 진한 우정 혹은 애정이다. 그들은 서로 변하지 않는 충직함을 맹세하고, 진지하게 입을 맞추고, 함께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정말 중세의 서사시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중세인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더 '개방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랐'기 때문에 동성애에 관대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동성애 뿐 아니라 이성애에 대해서도 현대인과 같은 관념이 없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중세인들은 여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지한 감정적 교류를 남자와 나누었고, '남색가'가 아니면 남자와 몸을 섞기란 곤란한 일이므로, 자신의 여동생을 내어주거나 하는 식으로 남자들끼리의 관계를 돈독히 다졌다.

기사, 즉 무인 중심의 중세가 궁정사회로 변모하면서 이성애 중심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제 여자는 남자들끼리 싸워서 얻는 전리품이 아니라, 그 여성의 마음을 얻어내야만 하는 설득과 유혹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또 현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사, 성직자, 의사들이 이성애에 온갖 딱지를 붙이며 그 영향력을 줄여나가기 위해 시도했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했다. 결국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성애는 너무도 당연하기에 눈에 띄지 않는 지배적 에피스테메가 되었고, 대신 동성애가 '문제적 대상'으로 부각된다.

이 책을 '이성애 중심 사회'에 대한 푸코적 해석으로 보는 것은 분명 가능하며, 그것이 저자의 의도에 더욱 가까운 독해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과연 한국 사회가 '이성애 중심 사회'로 나아간 적이 있긴 한지 의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마치 올리비에 경이 롤랑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신의 여동생을 내어주듯, 한국의 일부 남성들은 성매수 경험이나 여성혐오적 농담 등을 공유하며 그들끼리 진한 '형제애'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동성애가 인권의 판단 지표로 부각되어 있는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문명적인 이성애자의 삶을 구현하는 것부터가 우리에게 과제로 주어져 있음을, 불현듯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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