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2

'딱 중학생 수준에 맞춰서'라는 표현에 대하여

내가 저널리즘의 세계에 들어와 내딛은 첫걸음은 주간지 기자가 된 것이었다. 그때 선배기자로부터 엄하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문장의 구석구석까지, 과연 중졸짜리도 알 수 있을까 자문하면서 알기 쉬운 문장을 쓰라'는 것이었다. 같은 얘기를 지금의 신입기자들에게 했다면 오해를 초래할 것이다. 당시와 지금은 학력구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 시점(1964년)에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해 취직한 사람만을 생각해도 중졸자가 틀림없이 30퍼센트 정도는 있었다. 이미 성인이 되어 사회인이 되어 있는 사람들 전체의 학력을 생각해보면 당시는 중졸자가 다수파였던 것이다. 지금은 고졸자가, 곧 대졸자가 사회의 다수파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평균적 고졸자가 가진 지식을 공유지식이라 전제하고 글을 쓰려 해도, 과학이나 기술이 관련되는 문제라면 어느 시대의 고졸자를 전제로 해야 하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다.(202쪽, 강조는 인용자)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 옮김, 『지식의 단련법』(서울: 청어람미디어, 2009)

한국에서도, 특히 방송계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다. '딱 중학생 수준에 맞춰서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많은 업계에서 사용되는 은어, 작업 관행, 표준 등이 일본에서 왔음을 전제로 해보면, '중학생에게 눈높이를 맞춰라'라는 표현 역시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그 경우 현재 한국의 대중매체 종사자들이 아무 비판적 고찰 없이 저 표현을 되뇌이며 '중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쓰고 방송을 만드는 것은, 대중의 지적 수준을 오히려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과거의 중학생 수준이라면, 지금은 대학교 신입생 정도에 비교할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대학 신입생 교양 교재로 쓸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만들라'고 해야 올바르지 않을까. 그렇게 눈높이를 설정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한다. 물론 시청률이나 구독률 등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말이다.

댓글 1개:

  1. 안녕하세요? 정태님의 트위터 글을 읽고 좀 의문이 드는 게 있어 여쭤봅니다(제가 트위터를 안 해서 여기에다). 지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서 주장하는 건 수학교육의 무가치함이나 무용함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수준이 적절하지 못 하다는 것 아닌가요? 예전부터,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미적분이 중등교육의 필수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일종의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것도 그러한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일 뿐인데.. 정태님은 마치 그들이 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 한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듯하여 좀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저로서는 그게 혹시 대학교육의 편의나 효율성을 위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느껴지는데.. 정태님은 미적분이 특히 문과 학생들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할 만큼 적절한 수준의 교육과정이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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