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27

[북리뷰] 함성이 포성으로 바뀔 때

8월의 포성
바바라 터크먼, 평민사, 2만9천원.


긴 평화의 시기가 이어졌다. 물론 유럽 내에 국한된 평화였기는 하지만, 식민지의 고통에 힘입어 유럽은 1870년 보불전쟁 이후 50여년간의 '벨 에포크'를 맞이했다. "1914년 당시 변두리에서 벌어졌던 발칸전쟁을 제외하면 유럽대륙에서는 한 세대 이상 전쟁이 없었"(492쪽)다. 그런데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유럽에는 호전적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당시에는 평균 수명이 오늘날보다 훨씬 짧았음을 상기해보자. 1914년쯤 되면 보불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거의 다 죽었거나, 전쟁 당시 어린이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는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이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건, 가령 자동차라던가 비행기라던가 전화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유럽인들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무엇이든' 속에는, 당연하게도 전쟁이 포함되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촉발 원인은 이른바 '사라예보의 총성'이지만, 그 암살 사건은 쌓여있는 화약에 불꽃을 튀겼을 뿐이다. 프랑스는 1870년 발발했던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반면 "1870년부터 독일인들은 군대와 전쟁만이 독일의 위대함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원천이라는 사상에 세뇌되어 있었다."(79쪽) 유럽 각국은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거미줄처럼 동맹을 맺었지만, 오히려 그 수많은 동맹 관계 때문에 전쟁은 점점 커져만 갔고, 사라예보의 총성은 유럽 뿐 아니라 세계사를 뒤흔든 '8월의 포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역사 저술가 바바라 터크먼은 1962년 <8>을 출간했다. 그는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얽매이지 않은 시각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고, 그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였지만 <8>은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그의 애독자 중에는 존 F. 케네디가 포함되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영국의 맥밀란 수상에게 이 책을 증정하면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1914년 8월과 같은 함정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6쪽)

그는 역사의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본인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탁월한 저자였다. 1차 세계대전 전체를 조망하는 대신, 개전 이후 30일까지의 상황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독일군은 이미 세상을 떠난 슐리펜 장군이 세워놓은 작전 계획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굳이 벨기에를 침공한 후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의 자신감의 충만했지만 전쟁 대비는 형편없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지만, 마른 전투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게 저지당하고, 1차 세계대전은 길고 지루한 참호전으로 고착되고 만다. "교전국들은 처음 30일 동안 전세를 결정짓는데 실패한 전투로부터 만들어진 덫, 그때도 또 그 이후로도 출구가 없는 그러한 덫에 걸려들었던 것이다."(680쪽)

전쟁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되던 사회주의자들의 형제애 그리고 재정, 상업, 그 이외의 다른 경제적인 요인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과 같은 전쟁 억지력은 막상 때가 되자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가주의가 난폭한 돌풍처럼 일어나면서 그것들을 모두 날려버렸다."(491쪽) 막상 한 번 시작되자 전쟁은 뜻대로 쉽게 풀리지도 않았고, 마음대로 끝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 울려퍼졌던 '8월의 포성'은 멈췄다. 그러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함성은 쉽게 잦아들고 있지 않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아직 <8>으로부터, 우리 스스로의 역사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2015.09.08ㅣ주간경향 1142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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