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연말로 돌아가보자. 벌써 4년 전이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다지 훌륭한 작품이 아니었다. 소설이 가지고 있었던 모순과 복잡성은 평평해졌고, 뮤지컬이 가지고 있었던 본연의 에너지는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관객들, 특히 정치적으로 ‘진보’라 분류되는 관객들은 열광했다.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를 보며 18대 대선 패배의 아픔을 달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극장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서프러제트>가 상영 중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서프러제트 운동을 다룬 최초의 장편 상업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해당 운동이 지니고 있었던 사회적 맥락을 최소화하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다양한 각도에서 대립하던 모습도 깊게 조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그 작품을 철저한 ‘운동권 영화’로 만들어냈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는 우연히 서프러제트의 시위 현장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쩌다가 운동권에 휘말려, 결국 투사로 거듭난다. 동료가 이탈하고, 배신의 유혹을 받고, 어떤 이는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캐리 멀리건의 선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착하고 순수했던 그가 한 사람의 ‘운동권’으로 재탄생하는, 꽤나 고전적인 서사가 2016년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왕년의 운동권’들은 왜 극장으로 몰려가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운동권 영화’로 소비하는 데에는 일종의 비평적 곡예가 필요했다. 반면 <서프러제트>는 그럴 필요가 없다. 대놓고 ‘운동권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짱돌’ 좀 던져봤다고 으스대다가 ‘문화운동’ 한다고 방향을 돌렸던 수많은 남성 비평가들은 <서프러제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매년 극장가에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대체로 뻔한 영화들이 절찬 상영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내부자들>을 꼽아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상도 방언을 쓰는 ‘꼴통 검사’가 전라도 방언을 쓰는 ‘착한 건달’과 손을 잡고,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내부자들’에게 한 방 먹인다는 줄거리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치부’를 보여준다는 그런 작품들은 한 해에도 몇 편씩 나온다. 대체로 여성들은 피해자의 위치에서 폭언을 듣고, 두들겨 맞고, 강간당하고, 시신으로 발견되기 일쑤다. 그러면 남자인 주인공이 절규하면서 정의 구현을 위해 힘쓴다. 그리고 관객들은 폭력의 무신경한 재현 앞에 ‘날것’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 맥락에서 이경미 감독의 신작 <비밀은 없다>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태어난 경북의 한 도시에서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 해당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탈당파 현역 국회의원과 맞붙는데, 그의 아내가 호남 출신이라는 것이 ‘추문’으로 취급되며, 하나뿐인 딸은 실종됐다. 전라도 여자는 경상도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광기 어린 추적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호남차별, 여성차별, 학교폭력, 동성애, 불륜 등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뜨거운 감자를 한꺼번에 씹어삼킨다.
그럼에도 <서프러제트>와 마찬가지로, <비밀은 없다>는 저평가 혹은 무(無)평가 당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매우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단지 희생자에 머무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들은 어떤 일을 겪고, 위협을 당하고, 폭력에 노출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하고, 책임을 진다.
그러자 관객뿐 아니라 비평가들 역시 형식적인 코멘트만을 남겨놓고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그 침묵은 열렬한 예찬보다 우리 사회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여성을 순순히 용납하려 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주체-되기. 2016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어야 할 ‘정치적’ 주제다.
입력 : 2016.07.04 20:53:03 수정 : 2016.07.05 11:25: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042053035&code=990100&s_code=ao122#csidx8a9de7b24f74d368a77c68193f19f35
근데 이걸 여성 문제로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냥 본문 전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대놓고 운동권 영화에 대한 비평이 그리 인기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레미제라블은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 영화였고 흥행도 상당해서 너도 나도 허세 담아 촌평을 남기기 좋은 물건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답글삭제생각해 보면 매드맥스 상영 시기에는 너도 나도 페미니즘 얘기 하느라 정신 없었죠. 그러니 비평가라는 양반들 치고 특별히 여성 주체성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라 봅니다. 그러나 매드 맥스 시기를 다시 이야기하자면, 페미니즘 얘기는 하면서 그 세부에 대해서는 그리 열심히 다루지 않더라 이겁니다.
답글삭제그러니 이는 용납하지 않는다, 같은 적극적 거부 및 수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페미니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쎄요. 제가 기억하기로 매드맥스가 개봉했을 무렵, 그 영화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과연 매드맥스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다시 말해, 해당 작품과 페미니즘의 연관이, 그렇게 명백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부정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걸 "적극적 거부"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체 적극적 거부라는 말은 어디에 붙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불매운동 정도?
삭제레미제라블은 흥행을 했기 때문에 운동권 영화로 소비된 게 아니라, 운동권 영화로 소비되면서 흥행한 작품이라고 저는 기억합니다. 그거야 관객 설문조사를 해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긴 하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페미니즘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넥슨 여성운동 탄압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티셔츠 한 장을 구입해 입는 아주 사소한 페미니즘적 움직임만 봐도 우르르 달려가서 짓밟는, 민감한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입니다.
"안티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성차별주의자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한국의 대중이 여성주의에 관심이 없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보이는 족족 짓밟을 수가 없거든요.
삭제기억에 의거하기보다는 좀 객관적인 형태로 전체적인 지형에 대한 논거를 만들어야 할 듯 하네요. 제 기억에 의존한다면, 전 그런 리뷰는 하나도 못 봤습니다. 통계라도 내야 제대로 된 논거가 될 수 있겠네요.
삭제성차별주의적인 것과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다른 종류라고 봐야겠습니다. 좀 애매하긴 합니다만... 그런데 작금의 한국 비평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을 압박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제가 관심이 없는 분야도 아닌데요. 물론 저도 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일 뿐이니, 전반적인 정리가 있어야 가타부타가 가능하겠네요.
그리고 운동권 영화로 소비되면서 흥행한다고 하면 이런 종류의 흥행공식은 꽤 괜찮은 거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례가 없죠.
다른 내용들도 좀 동의하기가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데, 일단 너무 근거자료의 동원에 비해 결론이 손쉽게 나는 게 아니냐, 성급하지 않은가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냥 구글에 "매드맥스 페미니즘"이라고 넣고 검색해보니,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게시물이 이렇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당시의 분위기를 아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너무 노골적으로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는 싫고, 뭐 그랬죠. http://topa.co.kr/archives/256
삭제모든 차별은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존재를 지우려 듭니다. 그것은 차별의 기본입니다. 여성의 가슴을 감싸고 유두를 가리는 브래지어를 가리는 겉옷을 입으라는 사회적 압력은 결국 여성성 그 자체를 지우고 싶어하는 성적 억압인 것입니다. 이게 뭐 어려운 얘기인가요?
한편 운동권 영화는 굉장히 많이 나왔고, 그들 중에는 님도 저도 잘 아는 흥행작이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변호인이겠죠.
제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고 지적을 하신다면, 반대편의 사실관계를 가르쳐주시면서 말씀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냥 '성급하지 않냐'라고 하신다면, 글쎄요, 안 성급합니다.
해당 리뷰는 이해도의 차이나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페미니즘을 부정하고자 하는 방식의 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라애 있는 게시물들은 거의 다 영화의 페미니즘을 인정하는 글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적당한 논거 위주로만 동원한다면 무슨 프레임이든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분위기 기억, 으로만 논거가 설정된다면 제가 기억하는 건 듀나 등의 리뷰에서 페미니즘을 언급하면서 호평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충분한 논거를 동원해달라는 것입니다.
삭제운동권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이견이 있는데, 다만 어떤 말씀으로 하신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다만 흥행 포인트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데 이거야 정말 근거자료가 많이 필요하므로 입을 다물겠습니다.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지 아닌지 말할 정도의 수준은 안 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충분한 통계자료나 근거 같은 게 있으면 설득력이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냥 일개 독자의 촌평일 뿐입니다.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삭제이런 요구가 부당하다거나 과도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앞으로 이런 얘기들은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제 수준과는 별개로 트집쟁이 대접 받는 것도 달갑지는 않으니까요.
삭제다만 군대 가기 전 블로그 하실 때나 말을 섞어본 이후 처음이라 그런지 신나서 여기저기 댓글을 달아봤는데 오버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가장 현명한 자는 가장 우둔한 자로부터도 배운다고 하니 제 댓글도 그렇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건필하십시오.
의견을 '주고받으'려면 양자에게 뚜렷한 논지가 있어야 하고, 그 논지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삭제그런데 제가 링크해놓은 글을 보고 "페미니즘을 부정하고자 하는 방식의 글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시는 걸 보면 뭐랄까, 리플로 논의를 더 이어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아예 본문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의 각성’을 주된 목적으로 삼거나 ‘남성 지배적인 체제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일까요?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읽지도 않고 그냥 '나는 트집쟁이가 아닌데...' 하고 계시잖아요?
아니요, 스스로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님은 트집쟁이가 맞습니다. 실컷 트집도 잡고 리플 길게 달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자 '애독자였거든요'라는 식으로, 마치 웹툰 작가들에게 '나는 독자다 에헴' 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려고 하는 트집쟁이죠.
"다만 가장 현명한 자는 가장 우둔한 자로부터도 배운다고 하니 제 댓글도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라는 식으로 폼 잡으려고 하지 마세요. 애초에 대화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떻게 나오나 반응 보려고' 리플 다는 사람에게서 배우긴 뭘 배웁니까.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