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4

[북리뷰] 조류독감, 혹은 우리가 키우는 재앙

조류독감
마이크 데이비스·돌베게·1만2천원

마이크 데이비스는 역사학자지만 특정한 시대만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 19세기 말 전 세계를 강타했던 엘리뇨와 식량 배분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대기근, 자동차 폭탄 테러, 초거대도시에 솟아오르는 마천루의 이면인 슬럼 등, 그가 단행본으로 다룬 내용은 한 사람의 지적 영역이라 보기에는 너무도 넓고 동시에 뜨겁다. <조류독감>도 그 중 하나다.

우선 몇 가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두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그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온혈동물이 고열, 오한, 설사, 구토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일 때 우리는 '독감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있고, 돼지나 닭이 걸리는 것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의 본질적 특성상,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감염될수록 끝없이 변종이 생산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세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사람과 동물 사이에 교차 감염이 가능한 인플루엔자가 존재한다. 둘째, 인간은 공장식 축산을 통해 수백만, 수천만, 수억 마리의 돼지와 닭 등을 기르고 있다. 셋째, 따라서 한번 인플루엔자가 퍼지기 시작하면, 그 질병이 수없이 전파되고 또 복재되면서,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살상력을 지니는 괴질이 탄생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마이크 데이비스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바이러스학자들이 'H5N1'이라는 유전자 번호를 부여한 이 독감 아형(亞型, subtype)이 처음 확인된 것은 1997년 홍콩에서였다. 물새에서 인간으로 전이된 이 바이러스에 의해 당시 감염자 18명 가운데 6명이 사망했으며, 홍콩 시 당국은 모든 가금류를 긴급히 살처분해 이 갑작스러운 첫번째 사태를 제압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지하로 잠복했고, 집오리가 '조용한 보유숙주'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2003년, 조류독감은 다시 중국과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등장했다.(11쪽)

유독 새를 좋아하는 홍콩과 중국 남부에서 조류독감이 자주 발생하였으나, 인플루엔자의 기습은 그곳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이 중국에서 발생한 비전형적인 폐렴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던 바로 그때, 네덜란드 헬레를란트의 한 농장에서 닭들이 죽어나간 것이다."(102쪽) H7N7, 아시아의 H5N1과는 또 다른 그 바이러스와 맞서기 위해 "가금류 산업 노동자들이 네덜란드 군대의 지원 속에서 3,000만 마리 이상의 닭을 살처분하기 시작했다."(103쪽) 2003년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노출된 인원 약 4,500명 가운데 553명이 결막염과 기타 증상을 호소했다."(105쪽)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방호구를 착용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들의 인플루엔자가 인간에게 옮아왔던 것이다. 공장식 축산 과정으로 길러진 수천만 마리의 닭. 그들을 매개로 삼아 진화한, 인류에게 낯선 극도로 '난폭한' 바이러스. 그것이 다른 생명을 몰살시키는 끔찍한 일에 동원된 계급 사다리의 아래쪽에 위치한 노동자들을 공격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부제인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조류독감은 그러므로 단순한 방역 실패 사례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길러내고 있는 재앙의 전조일지도 모른다.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을 막기 위해, 일단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맞서야 할 것이다.

2017.01.24ㅣ주간경향 12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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