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18

[북리뷰] 읽고 쓰는 여자들, 스스로를 변호하다

문학소녀
김용언 저·반비·1만5000원

'문학소녀'는 멸칭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자아도취적이며, 자기 자신과 소설 속의 주인공을 구분하지 못하고, 흔히 경제적으로 무책임하며, 그나마 문학적 취향도 사실 좋지 않은 여성들을 향한 조롱의 표현이 바로 '문학소녀'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전혜린은 바로 그 '문학소녀'의 대명사와도 같다.

그러므로 전혜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전혜린의 책을 감명깊게 읽은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칼럼니스트 고종석 등의 냉소어린 평가는 전혜린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완전히 고착시켰다. "이들의 선고에 힘입어, 이제 전혜린은 특정한 독서의 출발점의 공통 대명사가 아니라, 부잣집 철부지 문학소녀의 대명사로 더욱 자주 호명되는 것 같다."(16쪽)

『문학소녀』는 바로 그러한 경향성과 맞서 싸우는 책이다. 애초에 '문학소녀'라는 멸칭을 제목으로 전유하고 있는 것부터 우리는 저자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 잡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인 저자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전혜린과 '문학소녀'들에 대한 폄하의 근간에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내 말은, 전혜린이 그렇게 비웃음과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17쪽) 그에게 이 책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를 추적하면서 나의 '문화적 기억'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한, 내 어린 시절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전혜린을 이해하기 위한,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문학소녀는 왜 안전하게 놀려댈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한, 그리고 전혜린을 쉽게 비웃는 이들에게 변호를 자청하기 위한 기나긴 '수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20쪽)

이 책을 읽고 환호할 독자들은 이 서평이 나가기 전부터 『문학소녀』의 출간 소식을 전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이들에게는 앞서 인용된 것 이상의 책 소개가 더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남자들, 그 중에서도 여성 차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들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진지하고 비장하게 전혜린을 '변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여기서 잠깐 내 이야기를 해보자.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일이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에 살고 있었지만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대부분 시험과 무관한 책을 읽으며 소일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그 무렵에 읽었다. 『태백산맥』의 1부 제목은 '恨의 모닥불'이다. 그걸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담임선생님이 내가 읽던 책을 힐끗 보더니, '성(性)의 모닥불?' 하면서 빼앗아가 훑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읽던 소설이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돌려주었다. 혼나지도 않고, 조롱당하지도 않고, 오히려 머쓱해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좋은 책 읽는다고.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거나,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등, 우리 사회에 통용되던 책읽기에 대한 그 모든 관대한 시선들을 문득 떠올려본다. 내가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였던 그것은 남자들에게만 허용된 특권 아니었을까? 전혜린을 읽지 않은, 전혜린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도 이 고민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까지 상식인 양 통용되어온 여성의 독서를 향한 폄하의 시선에 『문학소녀』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문학계는 좀 더 진지하게 응답할 의무가 있다.

2017.07.18ㅣ주간경향 12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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