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저·양희진 역·문파랑·1만원
『게공선』은 1929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될 때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걸작이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부터 새삼스레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책의 말미에 붙은 번역자의 말에 따르면 게공선의 새로운 바람은 "일본 매스컴이 일본 사회의 빈곤 현상을, 워킹 푸어(Working Poor)와 〈게 공선〉의 작품 세계를 연결해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었"(196쪽)다고 한다. 그 열풍은 『88만원 세대』의 출간을 계기로 청년들의 빈곤 문제에 대해 논의가 한창이었던 한국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그때 이 책을 한 번 읽었고, <군함도> 논란이 뜨거운 지금 다시 펼쳐들었다.
책으로 들어가보자. 1920년대 일본, 홋카이도의 도시 하코다테(函館)에서 게잡이 공선 하쓰코호가 출항하는 장면에서 작품은 시작된다. 공선(工船)이란 수산물 가공 설비를 갖추고 있는 어선이다. 가령 참치캔 같은 어류 가공품의 상당수가 공선에서 만들어진다. 공선에서 곧장 어류를 가공하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고 제품을 보관하기에도 용이하다. 하지만 『게공선』에서 말하는 바, 당시 공선을 운용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게 공선은 '공장선'으로 '선박'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다."(41쪽) 그 결과 하쓰코호는 선장이 아니라 노동자를 관리하는 감독이 지배한다. 하지만 바다에 떠 있기에, 혹은 작품 내에서 설명하지 않는 다른 이유로, 게 공선은 "공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그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었다."(42쪽)
어선이면서 공장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어선이 받아야 할 규제도 공장이 받아야 할 규제도 받지 않는 치외법권. 그것이 게 공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 착취는 일본 제국의 경제적 성장과 궤도를 같이 하는 현상이었다. "내지에서는, 노동자들의 힘이 커져서 무리하게 일을 시킬 수 없게 되었고, 시장도 대부분 개척해버리자, 자본가들은 '홋카이도, 사할린으로' 갈고리 같은 손톱을 드러냈다. 그곳에서 그들은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와 똑같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노동자를 '혹사'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자본가들은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83쪽)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름이 아니라 특징으로 기술되는 익명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연대하고 투쟁하는 법을 배워나가 동맹파업에 이른다. 자신들의 편일 줄 알았던 해군이 오히려 파업을 진압하는 광경을 목도하며 "우리에겐, 우리 말고는, 같은 편이 없어. 이제야 알았다"(180쪽)고 절규한다. 그리고 또 다른 투쟁을 결의하면서 작품이 끝난다.
식민지 뿐 아니라 자국의 하층민들 역시 일본의 자본주의는 철저히 착취하고 있었다. 그들의 저항은 제국주의적 무력으로 억눌렀다. 『게공선』은 단 한 줄의 '이론적' 서술도 없이 피와 오물을 뚝뚝 흘리는 자본의 원시축적과 그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그려낸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덧붙이는 말>에서 "이 한 편의 글은 '식민지에 있어서 자본주의 침입사'의 한 페이지이다"(185쪽)라고 말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과 수탈은 통제받지 않는 자본의 횡포와 뒤엉켜있다는 사실을 1929년의 그는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보다 섬세하게 입체적으로 심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군함도>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게공선』을 다시 거론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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