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신상목 저·뿌리와이파리·1만5000원
'조선은 임진왜란때 망했어야 마땅한 나라다.' 조선의 패망과 일본에 의한 국권 침탈 등을 논할 때 많은 이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망할만한 나라'였다면, 그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한 일본은 '성공할만한 나라'라고 불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한국 사회는 일본이 오랜 전란 끝에 통일되었던 그 시기, 즉 에도시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공직을 박차고 나와 우동집 '기리야마 본진'을 차린 것으로 유명한 전직 외교관 신상목의 책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화두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성공에 기여한 '축적의 시간'이자 '가교의 시기'로서의 에도시대에 주목한다. 에도시대에 어떻게 근대화의 맹아가 태동하고 선행조건들이 충족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주제이다."(17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리한 전쟁을 일으킨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막은 훨씬 복잡하고 의미심장하다. 도쿠가와 가문의 당시 본거지는 슨푸(시즈오카)였지만, 도요토미는 도쿠가와가 교통의 요지에 앉아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에도(도쿄)로 쫓아냈던 것이다.
오늘날의 도쿄를 보면 '에도로 쫓아냈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신들과 함께 자리잡았던 그 무렵, 에도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강 하구 습지에 불과했다. 에도 성이 있었지만 낡아빠진 상태였다. 우물을 파면 소금물이 나오는 그런 척박한 땅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괴롭힘에 굴하는 대신 가신들과 철저히 단결하여 에도를 발전시켰다. 치수(治水) 사업을 통해 "1)인공의 물길을 뚫고, 2) 자연 물길의 흐름을 바꾸고, 3) 수면을 메워버리는 대토목공사"(36쪽)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그렇게 척박한 에도를 교통과 상업의 허브이며 옥토로 바꾸는동안, 부질없는 전쟁에 몰두한 도요토미는 몰락하고, 버려졌던 땅 에도를 기반으로 삼아 발전시킨 도쿠가와 가문이 패자가 되었다. 에도시대는 계획도시 에도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도쿠가와 막부의 출현 과정을 조선왕조의 건국 이야기와 비교해보자. 이성계는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의 말을 듣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쩔 수 없이 자리잡은 터를 본인과 신하들의 힘으로 '개척'해내고 기반으로 삼았다. 건국 영웅담의 이면에 작동하는 사고의 체계부터 이미 확연히 다르다.
한층 더 대담한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이른바 '자생적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영조가 청계천 준설 공사를 벌인 것을 '조선판 뉴딜 정책'이라고 칭하곤 한다.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일본의 '자생적 근대화'는 에도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다시 말해 우리보다 약 170여년 빨랐다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에도 개척의 역사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의 가장 앞부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책장을 넘길수록 낯설지만 우리의 한반도 중심 세계관을 뒤흔드는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막연한 거부감과 우월감만 앞세우던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후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합병당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 우리가 잊지 말고 배워야 할 역사는 '우리'의 역사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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