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간선제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이 원초적인 문제 말이다.
미국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제도라던가, 기축통화인 달러라던가, 군사력이라던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중 가장 근본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리잡은 땅덩이에 있다. 캐나다나 멕시코가 미쳐 날뛰지 않는 한,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좌우에 두고 있어 육로로 침공이 불가능한 나라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의 내륙은 미시시피강이라는 굵직한 강줄기 덕분에 산업화의 초기부터 해양 운송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가령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여느 내륙 국가와는 다른 여건이라는 말이다. 한술 더 떠서, 19세기에 세계 최초의 통상적인 유전이 개발된 곳도 미국인데, 21세기는 셰일가스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되어 있다.
석유만 나오면 말을 안 한다. 우라늄도 충분하다. 우라늄만 있는가? 미국의 중서부 평원 지대는, 물론 지금은 많이 황폐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세계 대다수의 사람과 가축을 먹여살리는 천혜의 곡창지대다. 미국은 철도 있고 밀도 있고 석유도 있고, 우라늄도 있는 그런 나라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일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본의 인구는 미국의 절반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이 지금 갑자기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난다 해서 미국과 같은 국력을 가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일본에는 (충분히 쓸만한 양의 많은) 철도 없고, 밀도 없고, 인구 전체를 부양할만한 농업 생산이 불가능하며, 석유는 당연히 없다. 그래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이길 수 없었다.
미국의 힘은, 톡 까놓고 말해, 미국의 땅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 동부 서부 해안에 사는 리버럴듯이 비웃듯이 지껄여대는 'Flyover States'다. 캘리포니아만 떼어놓고 보면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캘리포니아가 미합중국에서 분리 독립하면 아무도 캘리포니아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힘은 동부와 서부에 모여 사는 인구와, '건너뛰는 땅'에 있는 그 무지막지한 천연자원의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경험했거나, 미국에서 공부했거나,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리버럴, 리버럴이 아니어도 메인스트림의 시각에 자신을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미국이 미국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나라가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원초적인 이유를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 미국인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미국인이 아니니까. 미국이 왜 미국인지, 왜 그런 힘을 가진 초강대국이 군림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원인을 잘못 분석하면 '인구 14억을 넘는 중국이 인구 3.5억인 미국을 능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허튼소리나 내뱉게 된다.
미국은 미국의 사람과 제도와 땅이다. 특히 마지막 요소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 점을 다들 잘 이해하면, 2020년의 국제정세에 대해 좀 더 좋은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