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촬영자와 모델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전문가이든 아마추어 동호회원이든 ‘촬영을 거부한 모델’이라는 소문이 나면 사진 업계에 발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관계를 악용해 모델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공개 촬영회가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곽씨의 증언이다.
허정헌, ‘모델이 신었던 스타킹 나눠 드려요’ 도 넘은 촬영회, 한국일보, 2018년 5월 21일.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5211066365076
2000년대 초반. 디씨 부흥기. 월드컵 하고 세상 다 ‘우리 거’라고 믿던 때. 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것이던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을 ‘흑미추녀’ 같은 식으로 조롱하는 영상을 만들고 유포해도 ‘진보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던 시절. 여자니까 박근혜를 지지할 수도 있다던 최보은을 김규항이 두들겨 패놓은 탓에, ‘젖녀오크’ 같은 언어 성폭력에 감히 반발하지 못하던 시절. 다함께 여혐하던 시절.
발기탱천한 진보남들의 부랄발광에 여성들이 장단맞춰주고 남성적 언어의 외피를 둘러쓰고 같이 놀았던, 혹은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 그게 존나 쿨한 줄 알았던 시절. ‘우리’가 이 시점에 ‘힘을 몰아주지’ 않으면 수꼴들이 부활한다는 협박이 날아오던, 그런 시절에 만들어진 여혐 템플릿들.
우파 남자들은 국가의 개입이 싫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라서, 좌파 남자들은 시장주의가 싫지만 가난한 여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면서,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이대 부르주아 꼴페미’를 욕하던 시절. 성매매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좌파 남자’들이 진보 사이트에서 히죽대던 시절.
* 일러두기: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기록 및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예전에 썼던 트윗 타래를 블로그에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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