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5

보스 정치보다 못한 팬덤 정치

 [노정태의 뷰파인더㉛]대깨문의 적반하장과 민주당 잔혹史

●‘초선 의원의 亂’과 문자 폭탄
●한층 강경한 ‘친문 정당’으로의 길
●黨心 추종이 민주주의에 反한다?
●당원도 결과에 따른 책임지는 것
●한국 정당은 ‘구경하는 정치’ 조장
●극성 친문이 쏘아올린 퇴행 신호탄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2017년 4월 21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광장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집중유세가 열렸다. [동아DB]
극성 열혈 지지층. 현재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다. 야당보다는 여당에서 더 큰 고민거리가 돼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7 재·보궐선거(재보선)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를 동시에 빼앗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성 친문 지지층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4월 9일 민주당의 초선 의원 다섯 명은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을 내고 ‘조국 사태’ 때 조국 전 법무장관을 감싼 것을 반성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사흘 뒤 ‘민주당 권리당원 일동’ 명의의 권리당원 성명서가 발표됐다. 성명서는 초선 의원들의 입장 발표를 ‘초선 의원의 난(亂)’이라 표현하며, “초선의원들은 4·7 보궐선거 패배 이유를 청와대와 조국 전 장관의 탓으로 돌리는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쓰레기 성명서를 내며 배은망덕한 행태를 보였다”는 과격한 표현까지 내놨다.

극성 친문은 단지 성명서를 발표한 데 멈추지 않았다. 김정란 상지대 명예교수 등 유명 극성 친문 지지자들이 앞장서서 초선 의원 다섯 명의 연락처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 번호로 온갖 폭언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그것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인증하는 모습을 지난 4월 9일 이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극성 親文의 영향력
4월 20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광주, 전남, 제주 당대표,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홍영표, 송영길, 우원식 당대표 후보들(왼쪽부터)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동아DB]
민주당에서 극성 친문이 미치는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듯하다. 재보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총사퇴한 가운데 새로운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규정대로라면 지도부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고위원은 당규에 따라 중앙위원회에서 뽑아야 한다. 하지만 차기 당권 주자인 홍영표, 우원식 의원 뿐 아니라 문자폭탄에 시달린 다섯 명의 초선 의원들까지 권리당원 전체투표를 통한 최고위원 선출을 요구했다. 이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당대표와 최고위원 모두를 전당대회에서 뽑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에서 당비를 내는 당원을 권리당원이라고 한다. 모든 민주당 권리당원이 극성 친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극성 친문이라면 99% 이상의 확률로 권리당원일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극성 친문은 막강한 조직표로 작동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규정상 일반 권리당원은 40%, 국민 일반의 투표가 10%, 일반당원이 5%의 투표권을 갖는다. 권리당원의 지지를 받으면 무난히 이길 수 있다. 지난 4월 16일 선출된 윤호중 원내대표 역시 친문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이 한층 더 강경한 ‘친문 정당’으로 향할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일단 오해의 여지가 없는 내용부터 이야기해보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SNS에서 특정인의 연락처를 공유하며 욕설과 폭언 등을 퍼붓는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SNS를 통해 악플 폭격을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상식적인 시민 사회의 양식과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다. 위법성이 있을 때에는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 특히 정당정치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른 각도에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극성 친문 지지자들의 행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소수가 다수의 의사를 왜곡하는 현상’이라고 비판한다. ‘민심’과 ‘당심’이 괴리되었을 때, 마땅히 ‘민심’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론처럼 들린다. 소수의 열성적 지지층이 활동하여 일부 의원들을 움직이고, 그 일부 의원들이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면서 당이 바뀌고, 정당이 국가 전체의 국정을 좌우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전혀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원의 투표로 정당의 행보가 결정되는 것 자체를 ‘민주주의에 반(反)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 반대다. 당원의 뜻에 따라 정당이 움직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며 핵심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 중 상당수가 실은 국민보다는 집권 여당의 당원들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부자 노인의 정당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맨 오른쪽)과 이소영, 오영환, 장경태, 장철민 의원(오른쪽에서 세번째 부터)이 4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2030의원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가장 최근의 사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어떻게 집권하게 되었을까? 그는 2019년 테레사 메이 총리가 사임한 후 보수당 당원들의 투표로 당대표가 됐다. 집권당의 당대표는 곧 총리다. 따라서 그는 총리로 취임했다. 물론 그 전에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운동을 펼치며 온 국민에게 자신의 이름과 얼굴, 정치적 의제를 알린 상태였지만, 영국인들이 그를 총리로 직접 뽑지는 않았다.

보리스 존슨은 보수당 내 경선을 통해 영국 총리가 됐다. 그 투표권은 오직 보수당원만이 가지고 있었다. 보수당의 당원은 노년층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소득 수준을 놓고 봐도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부자 노인들의 정당이다. 영국이라는 나라의 총리가 오직 부자 노인들만의 투표로 결정되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일까?

브렉시트의 경제적 여파를 정확히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제 상식에 비추어보면, 브렉시트는 무역 및 국가 간 노동력의 이동을 저해한다. 이는 전반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 특히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 영국의 주요 언론들이 새삼스럽게 ‘온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수당의 당내 경선으로 새 총리를 뽑는 상황’을 문제 삼았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가디언’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진보 성향 언론은 유럽연합 및 국경의 개방성 등 진보 의제를 놓고 존슨 총리의 취임에 반대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나 ‘이코노미스트’ 같은 보수 성향의 경제지들은 브렉시트가 미칠 경제적 여파와 혼란을 우려하며 존슨을 반대했다.

하지만 보수당은 예정대로 당대표 경선을 강행했고 존슨이 승리했다. 이후 정치 상황이 여의치 않자 그는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을 단행했다. 201912월, 아직 코로나19가 중국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던 그 무렵, 존슨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선거를 치렀다. 선출의석 650석 가운데 365석을 차지하여 단독으로 과반을 넘기는 압승이었다.

어차피 본질은 ‘YS당’, ‘DJ당’
여기서 우리는 내각책임제가 정당과 정치를 이해하는 방식을 알 수 있다. 내각책임제에서 집권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다. 정당이다. 어떤 정당이 총선을 통해 다수 의석을 차지하거나, 총선 후 여러 정당이 연정을 통해 다수 의석을 확보한다. 그렇게 집권당 혹은 집권 내각이 형성되고, 그들이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국정을 수행한다.

반면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 문화는 정당보다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길지 않은 후발주자로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듯,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한국 보수 정당은 그저 ‘대통령당’일 뿐이었다. 자체적인 정치 의제를 토론하고 형성하는 기능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법을 만드는 거수기 집단에 더 가까웠다.

김영삼과 김대중이라는 두 보스가 건재하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분명 그렇다. 김영삼·김대중은 당대표를 넘어서는 존재였다. 정치, 정책, 가치관 등을 표상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당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했다. 어차피 본질은 ‘김영삼 당’, ‘김대중 당’이었을 뿐이니 말이다.

이와 같은 정치 문화를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던 고도 성장기였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집중된 리더십의 필요성은 당내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1987년의 직선제 개헌, 그 이후의 역동성 있는 정치 변화 등은 정당보다는 사람, 특히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이합 집산하는 한국 정치의 기본 구조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의 원론과는 다르다. 정당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의회 정치의 중요성이 누락돼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형 정치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누군가의 개인적 의지나 열정이 아니라 다수에 의해 합의된 이상과 이념에 따라 움직인다. 이를 원한다면 정당의 역할은 더욱 커져야 한다.

‘코빈마니아’의 실패
다시 영국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영국의 선거는 돈이 안 드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예 법으로 돈을 못 쓰게 막아놓았다. “영국은 선거법상 선거비용을 1만 파운드(약1400만원)이하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유권자들을 직접 찾아나서는 선거 운동원에게 절대 돈을 지급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선거를 치를 수 있단 말인가. 비밀을 풀 열쇠는 자원봉사에 있다. “영국의 선거운동은 무보수 자원봉사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점심식사를 자비로 챙겨오고 교통비도 자기 돈을 쓴다. 말 그대로 ‘봉사’를 하는 것이다.” 주영 대사관 홍보실에서 제공한 자료라고 하니 믿어도 좋을 듯하다.

왜 영국의 정치 고관여층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써가며 자원봉사를 하는 걸까. 정치에 대한 영국인의 관심과 사랑이 유별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정치에 대해 관심 많기로 따지면 한국인을 능가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정당에서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 중 일부는 인터넷에서 악플을 달고 문자폭탄을 보내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위를 일삼는다. 이 차이는 대체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앞서 이야기했듯 영국에서 특정 정당의 당원이 된다는 것은 퍽 많은 함의가 있다. 당대표를 뽑는 등 주요 의사결정에서(물론 정당마다 규정이 다르긴 하겠으나) 대부분 여론조사와는 무관하게 당원이 전적인 결정권을 갖는다. 평소에는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테레사 메이가 사임하고 보리스 존슨 등 다양한 후보가 당대표 경선에 나서는 상황이라면 그 무게가 달라진다. 나의 한 표가 지금 당장 누군가를 영국 총리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단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 역시 정당을 운영하는 데 자원봉사에 크게 의존한다. 대신 당원 및 자원봉사자들에게 그만한 정신적 보상을 제공한다. 그 중 핵심은 당내 의사결정권을 주는 것이다. 설령 ‘민심’과 ‘당심’이 다르다 해도 ‘당심’을 이루는 사람들은 어떤 이념이나 정책에 집중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도 진다.

극단적인 두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다. 보리스 존슨을 총리로 만든 영국 보수당의 ‘당심’은 총선 승리로 이어졌다. 반면 제레미 코빈을 열렬히 지지하던 노동당의 진보 블록, 소위 ‘코빈마니아’(Corbynmania)들은 그렇지 못했다. 노동당은 201912월의 총선에서 처참히 패했다. 코빈의 오랜 정치 경력 역시 그 시점에 종지부를 찍었다.

존슨 지지자들이 옳고 코빈 지지자들은 틀렸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당심’은 ‘민심’과 가까웠거나 민심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다른 ‘당심’은 그러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코빈 지지자들은 당내 경선 및 총선 과정의 자원 봉사를 통해 뜨겁게 정치에 참여했다. 다만 유권자들이 그들의 지나친 사회주의 성향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당에 들어간다. 혹은 스스로 정당을 만든다. 민주적으로 그 정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념과 정책을 정직하게 밝히고, 대중을 설득하여, 그에 따른 정치적 결과도 온전히 스스로 책임진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정치의 작동 방식과 매우 가깝다. 결국 당원들이 정당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정당민주주의가 관건인 셈이다.

‘정치 개혁’의 첫걸음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현재로서는 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당심’보다는 ‘민심’에 가까운 지도부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편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젊고 신선한 지도부가 등장해 한국 보수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면 좋겠다.

정당은 정치 결사체다. 당원 스스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지도부를 구성하며,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이상에 더욱 가깝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변화는 당원으로부터, 즉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형태여야 한다.

지금처럼 두 거대 정당이 일관된 방향도 이념도 정책도 없이 여론조사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정치 풍조는 시민들의 ‘정치 효능감’을 떨어뜨린다. 정치를 ‘참여하는’ 것이 아닌 ‘구경하는’ 것으로 만든다. 평범한 시민들이 정당에 뛰어들어 시간과 돈을 써가며 내 의사를 드러낼 이유를 빼앗는다. 물론 곧장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이야기지만, 이상을 잊지 말아야 현실을 바꿀 수도 있다.

극성 친문, 소위 ‘대깨문’처럼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는 것은 몇 번을 비판해도 부족하지 않다. 이는 보스 정치보다 못한 팬덤 정치로의 퇴행일 뿐이다. 진정한 시민 참여가 이루어지는 정당 민주주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극성 지지층의 행태는 제지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좀 더 상식적이고 건설적인 시민 참여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겠다. 그것이야말로 ‘정치 개혁’의 첫걸음이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04-17

참사 7년… 진실은 사라지고 음모와 선동만 난무했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세월호 참사가 남긴 숙제

고대 그리스의 도시 테베에 왕과 아내가 살았다.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신탁이 있었지만 아들을 낳았다. 부부는 고심 끝에 아기를 죽이기로 하고 발에 꼬챙이를 꿰어 산에 버렸지만, 아이는 구조돼 성인이 되었다. 그러고는 델포이 신전에 찾아가 물었다. ‘신이여, 저는 누구입니까?’ 신은 엉뚱하고도 끔찍한 소리를 했다. ‘너는 네 아버지를 죽이고 네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 예언은 결국 이루어진다.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아실 오이디푸스 신화의 내용이다.

일러스트= 안병현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너무도 친숙했을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테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네 자녀를 낳고 모든 이의 존경을 받던 오이디푸스가 본인의 정체를 파헤치며 스스로를 파괴하고 몰락하는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일종의 추리물로 구성했다. 테베에 역병이 돌고 있다. 전 국왕을 시해한 범인이 테베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왕인 오이디푸스는 범인을 수배한다. 그러자 어떤 현자가 나타나 그 범인은 바로 당신이라고 지목한다. 그럴 리가 없다며 반박하고 새로운 증인을 불러오는 가운데 오이디푸스가 평생 궁금해하던 스스로의 정체가 드러난다. 국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근친상간한 범인은… 나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에 매료되었다. 인류 최초의 문예 비평이라 할 수 있는 <시학>에서 <오이디푸스 왕>을 비극의 모범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대단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신분이 높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운(티케, tyche)에 휩쓸리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아, 결함이나 실수 등을 뜻하는 과실(하마르티아, hamartia)로 인해 행복에서 불행으로 굴러떨어지는 완결성 있는 이야기.

우리는 모두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나약한 존재다. 알건 모르건 스스로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질 낮은 비극은 그런 인간적 조건을 망각하게 만들어, 관객의 영혼을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쉽게 욕할 수 있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주인공을 세워놓고 뻔한 권선징악극을 만드는 것은 미적·윤리적으로 가치가 없는 일이다.

반면 좋은 비극은 어떨까. <오이디푸스 왕>을 보던 그리스의 관객 중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000년이 넘도록 수많은 이들은 감동을 느낀다. 마치 자신이 겪는 일처럼 두려움에 떨고 전율하고 비탄에 빠지고 헤어나오면서 ‘영혼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만취 후 구토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배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술과 음식을 게워내고 나면 평정을 되찾고 건강한 몸을 회복한다. 비극을 보며 통곡하고 눈물을 쏟아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영혼이 정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의 의미다. 요즘 흔히 말하는 ‘사이다’와는 전혀 다르다.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악한 자가 벌받는 이야기로는 부족하다. 인간적 한계와 모순을 지닌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하는 이야기야말로 비극으로서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7년 전, 어제. 바다가 304명의 목숨을 삼켰다. 그중 250명은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다. 몇 번을 곱씹어봐도 참담한 이 사건에서 확인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불법 개조로 무게 중심이 턱없이 높아진 낡은 배. 조타 장치의 일부인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장으로 인해 우현 37도로 돌아가 고정되어버린 방향타. 엉성하게 묶여 배가 기울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과적 화물. 승객을 구조하지도 갑판 위로 유도하지도 않은 채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

가장 나쁜 우연과 있어서는 안 되었을 과오가 겹쳤다. 온 국민의 영혼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다. 사건에 대한 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했다. 더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를 우리 사회의 ‘비극’으로 받아들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카타르시스, 영혼의 정화에 도달했어야 했다.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해경 해체를 발표하자, 일부 국민 사이에 청와대가 ‘꼬리 자르기’를 한다는 의혹이 퍼져나갔고,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음모론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폭침설, 좌초설, 심지어 미군 핵 잠수함과의 충돌설 등 온갖 황당무계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과정에는 수수께끼가 없다. 통상적인 선박 전문가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원인으로 벌어진 사고였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서 인양한 선체를 분석해본 결과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었다는 사실까지 확인됐지만 어떤 이유로 공식적인 발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진실’은 인양되었다. 그것을 바라보려 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따름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따로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체 왜 팽목항 분향소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고 쓴 것일까? 나는 어떤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장소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해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왜 생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뿐이다.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이디푸스 왕>은 진실 때문에 파괴되는 한 인간을 다룬 비극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한 인간을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오이디푸스는 탐정처럼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며, 그게 본인임을 깨달은 후, 브로치로 눈을 찔러 스스로를 응징한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진실을 향한 끝없는 의지로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면 진정한 비극만이 선사하는 묵직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세월호 사망자의 명복을 빈다. 유족과 부상자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또한 우리 사회가 이 비극을 비극으로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정화된 영혼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1-04-16

진보정당이 ‘허경영’에게도 밀린 진짜 이유 3가지

 [노정태의 뷰파인더㉚] 현실감각, 핵심의제, 권력의지 부재

● 국가혁명당에도 밀린 4·7 재보선
●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거늘….
● 경제 과제에 대한 합리적 해법 無
● ‘대장주’ 정의당의 무책임
● 질타조차 회피해버린 제2야당
● 기본소득이 해결? 허황된 소리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열린 3월 2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군소 정당 후보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신지혜(왼쪽부터) 기본소득당 후보,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 배영규 신자유민주연합 후보, 송명숙 진보당 후보, 정동희 무소속 후보, 신지예 무소속 후보, 이도엽 무소속 후보, 오태양 미래당 후보,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여당의 패배, 야당의 압승. 4·7 재·보궐선거(재보선)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물론 맞는 말이다. 원인이 뭐가 됐건 여당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서울과 부산이라는 두 도시의 ‘지방 권력’을 빼앗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의 의의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보 정치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진보 정치는 무너졌다. 아주 확실히, 과연 부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폭삭 망해버리고 말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자. 1위,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2798788표로 57.50% 득표. 2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1907336표로 39.18% 득표. 문제의 3위,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 5만2107표로 1.07% 득표. 

원내 제2야당, 즉 세 번째로 큰 정당인 정의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국회의원을 보유한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 조차 2만3628표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허경영에게 두 배 이상의 표 차이로 뒤졌다. 범(汎)진보 계열에서는 오히려 기호 11번을 달고 나온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가 3만3421표로 4위를 기록했다. 

물론 허경영을 우습게 볼 수는 없다. 허경영은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탄탄한 조직표를 지닌 후보였다. 2020년 치러진 제21대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다. 총선을 앞두고 그의 자금 출처 및 과거 문제 등이 제기돼 기존의 지지율을 크게 잃고 국회 입성에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비례대표 득표율 0.7%를 기록했다. 이번 재보선에서 1.07%를 얻었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그 어떤 진보 정당도 허경영을 이길만한 득표를 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무플의 수렁에 빠지다
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송명숙 진보당 서울시장 후보(오른쪽부터),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여영국 정의당 대표,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 김예원 녹색당 공동대표가 ‘반기득권 공동 정치선언’을 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시곗바늘을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돌려보자. 당시 서울시장 선거와 비교해보면 현 상황의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다. 당시 1위는 현직 시장이던 박원순 후보, 2위는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 3위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차지했다. 

4위는 놀랍게도 최연소 후보 신지예를 앞세운 녹색당이었다. 신 후보는 8만2874표를 얻어 1.6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같은 선거에서 후보를 냈던 정의당은 8만1664표를 득표해 녹색당에 간발의 차로 뒤지며 5위로 밀려났다. 김진숙 후보의 민중당 역시 2만2134표를 얻었다. 진보 정당끼리 서로 경쟁을 하며 도합 18만여 표를 얻었다. 

2018년 녹색당, 정의당, 민중당을 합쳐 진보 진영은 총 3.7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21년의 경우 여성의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신지예, 진보당, 미래당의 득표를 모두 합해도 1.91%에 불과하다. 진보 정당과 후보의 숫자는 크게 늘었지만, 유권자의 지지는 대략 반 토막이 났다. 

원론적으로 보면 이번 선거는 진보 정당에 불리한 선거가 아니었다. 서울시와 부산시 모두 성폭력과 성추행 등을 이유로 재보선을 했다. 진보 정당이 페미니즘을 비롯한 도덕·윤리적 주제를 앞세워 활약할 여지는 그만큼 넓었다. 

경제 등 그 밖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등 정책 실패가 도드라지는 상황에서 여당에 대한 심판 성격으로 치러지는 선거가 이번 재보선이었다. 진보 정당이 유권자에게 야당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면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실망 및 이탈표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 적어도 지난 지방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낮아지는 일이 벌어지지는 말았어야 한다. 

요컨대 이번 선거에서 허경영이 3위를 기록한 것은 허경영의 승리가 아니다. 진보 진영 전반의 몰락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혹독한 심판을 당했다면, 그 밖의 진보 정당은 아예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흔히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하지 않던가. 2021년 현재, 한국의 진보 정치는 바로 그런 수렁에 빠져 있다.

허경영의 성의
한국의 진보 세력은 어째서 허경영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을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현실 감각의 부재. 둘째, 핵심 의제의 부재. 셋째, 권력 의지의 부재. 

선거 공보물을 펼쳐놓고 쭉 읽어보면 이번 재보선은 가히 ‘기본소득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범 진보진영 후보들이 그렇다. 아예 정당 이름부터 ‘기본소득당’인 신지혜 후보가 눈에 띈다. 다른 후보들이라고 해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던 게 아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지난 3월 19일부터 24일까지 이번 재보선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기본소득에 대해 질의했다. 이를 보면 오태양 미래당 후보, 송명숙 진보당 후보, 신지예 무소속 후보 모두 ‘기본소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지지한다’고 답했다. 여성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진보 정치 세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여성의당을 제외하면, 그 외 모든 진보 정당과 후보가 기본소득을 지지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앞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질의에서 후보자들은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을 추가로 마련한다’와 ‘소득과 자산의 공정한 재분배를 위해 조세제도를 개편하고 증세를 하여 마련한다’를 택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는 한 발 더 나아가 국채 발행 및 주권화폐 발행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민 한 사람당 월 10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하려면, 대한민국의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았을 때, 매달 50조원의 재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1년이면 600조원이 필요하다. 서울시장이니 서울시민에게만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도, 서울시민을 1000만 명으로 잡았을 때 매달 10조원이 필요하다. 2020 회계연도 총세입이 4655000억원, 총세출이 45380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실로 터무니없는 숫자다. 그 어떤 증세나 국채 발행으로도 메꿀 수 없는 돈이다. 

결국 용어만 다를 뿐이지 허경영의 공약과 다를 바 없는 소리다. 가령 허경영은 18세부터 국민배당금 150만원을 지급해 부익부 빈익빈을 없애겠다고 하고 있다. 게다가 허경영은 재원 마련에 대해 둘러대는 시늉이라도 한다. 자신이 서울시장 급여를 받지 않고 판공비로 쓸 것이 예상되는 100억여 원 역시 받지 않음으로써 시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마르크스도 생산력 증대 전제
국민들이 투표장에 가서 표를 던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결국 경제다. 부동산 분노 투표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번 선거의 경우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그 어떤 진보 정당도 우리 사회가 당면한 경제적 과제에 대해 합리적 해법을 제시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치 세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진보 정치의 핵심 의제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좌파 경제 담론은 마르크스주의 노동가치론에 입각해 있다. 이는 생산력을 증진해 물질적 부를 키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사실상 주류 경제학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표다. 생산력 증대를 전제로, 커지는 부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나누고, 부의 생산수단을 노동자가 소유하자는 것이 공산주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진보 사상은 이와 같은 발전주의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 애초에 ‘진보’라는 말 자체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은 향상된 생산력에서 나온다. 어떤 공산주의, 사회주의, 진보 이념이건, 경제 전반의 발전과 향상을 도외시한 채로는 성립할 수 없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은 1980년대 말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동구권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몰락한 탓이다. 역사의 목적의식과 대의를 추구하는 것은 예전과 같은 힘을 갖지 못했다. 대신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문제 등 일상 속 차별이나 억압을 발견하고 해결하는 게 진보 정치의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기존의 좌파 세계관은 정체성의 정치와 동떨어진 것이었다. 노동자는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단일 대오를 이루는 형제였다. 반면 소수자의 정체성 정치는 태생적으로 ‘다름’을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이 모두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문제를 언급했지만 공동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그 차이는 4위를 기록한 여성의당과 그 외의 진보 정당 사이에서 도드라진다. 여성의당은 오직 여성의 인권만을 의제로 삼는다. 성소수자 문제에는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외의 진보 정당과 정치 세력은 여성의당이 갖고 있는 관점에 반대했다. 여성의당은 자신들의 입장이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여성의당을 비판하는 기타 진보 세력 역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대중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같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뜻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의에 빠져 고개 숙인 사업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거운동 기간인 3월 30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투기공화국 해체’ 정의당 전국순회 출정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문제의 해법은 정치에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 의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실의에 빠져 고개 숙인 사업가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없다. 선거에서 이겨 집권 세력이 되겠노라는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은 정당과 정치 세력은 정치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유의미한 사회적 화두조차 던지지 못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의당의 행보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시절 만든 당헌까지 수정해가며 기어이 후보를 냈다. 국민의 비판과 야유가 쏟아졌다. 그런데 불현듯 정의당에서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비공개로 긴급 대표단 회의를 갖더니 반성의 뜻으로 이번 재보선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물론 김종철의 성추행은 당사자가 인정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은 누가 뭐라 해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폭력을 저질렀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탓에 치러졌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후보를 낸 선거를, 정의당은 왜 지레 포기했을까. 

정당은 정치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는 선거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정당은 시합에 나가지 않는 운동선수와 다를 바 없다. 당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진지한 반성의 뜻이 있다면 그 뜻을 갖고 선거라는 공론장에 나와야 했다. 이를 통해 국민의 질타를 받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쪽이 정의당에는 더욱 바람직한 경로였을 것이다. 

정의당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6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정의당은 선거에서 전임 시장의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의당의 불참으로 박원순의 성폭력이 선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기회는 사라졌다. 공백이 된 의제의 자리는 부동산에 분노한 민심이 채웠다. 민주당은 이 틈을 타 집요하게 ‘생태탕과 페라가모’ 네거티브를 시도했다.
 
정의당은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만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의당의 지지율은 2.9%에 그쳤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6석을 가진 원내 3당의 지지율이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거에서 보이지 않는 정당이 되고 나니 국민의 뇌리에서 빠르게 지워져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진보 정당의 ‘대장주’라 할 정의당이 이 정도니, 다른 정당의 처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유권자들의 집단 면역
진보 정치 세력은 ‘기본소득이면 다 해결된다’는 식의 허황된 소리를 그만둬야 한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허경영이 그런 소리를 해온 탓에 유권자들이 집단 면역에 도달해 있으니 말이다. 대신 오늘날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에 맞는 핵심 의제를 찾아야 한다. 그것을 대중에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 꾸준히 선거에 나오고 유권자와 접촉하며 입지를 확보해가야 한다. 오랜 세월 진보 정당을 지지해왔던 사람으로서 진심을 담아 드리는 조언이다. 

#정의당 #여성의당 #기본소득당 #국가혁명당 #진보당 #미래당 #허경영 #신동아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04-13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 이 성취를 뺏을 권리는 없다

 [朝鮮칼럼 The Column]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뉴시스
 

남북전쟁이 막바지로 향하던 1865년 1월, 연방군의 윌리엄 T 셔먼 소장은 휘하에 해방 노예로 이루어진 부대를 통솔하고 있었다. 그는 특별 야전명령 15호를 발령했다. 해방 노예에게 1인당 40에이커의 땅을 준다는 것이었다. 노새는 공식 명령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연하다는 듯 포상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미국은 약속을 어겼다. 셔먼이 나누어준 40에이커뿐 아니라, 전쟁 과정에서 압류된 땅 모두가 백인 농장주에게 되돌아갔다. 남부에 살던 흑인들은 ‘해방’된 신분으로 소작농이 되어 노예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의롭지 못한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됐다. 1930년대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연방주택국(FHA)은 집값의 10%만 있으면 나머지 90%를 빌려주는 정책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장기주택담보대출이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을 지원하는 제대군인지원법(GI Bill)과 맞물려 미국은 순식간에 중산층의 나라로 탈바꿈했다. 단, 흑인들만 빼고. 연방주택국은 흑인들이 사는 구역을 빨간색으로 칠하고 융자를 막았다. 일명 ‘레드라이닝’이라는 농간이었다. 좋은 교외 주택가에 집을 사려고 해도 흑인이면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100만여 흑인 참전 군인은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지도 못했다.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인 가구의 자산 중위값은 흑인 가구에 비해 9~12배 크다. 소득이 동일할 때에도 백인 가구의 자산이 흑인에 비해 두 배가량 많다. 흑인 감독 스파이크 리가 본인의 영화 제작사에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 땅의 역사는 어땠을까. 갑오개혁으로 노비라는 신분이 폐지됐지만 차별은 엄존했다. 가진 게 없으니 처지가 달라질 수 없었다. 근본적인 변화는 해방과 함께 찾아왔다. 이승만 정권의 토지 개혁으로 인해 소작농이 자영농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자칭 ‘진보’ 세력 중 일부는 한국전쟁을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조국 해방 전쟁’으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노예 해방 전쟁’에 더욱 가깝다. 남북전쟁의 흑인들과 달리 대한민국의 소작농들은 토지 개혁으로 땅을 받았다. 그들이 목숨 걸고 싸워 나라를 지켜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가난에서 벗어난 풍요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남북전쟁 당시의 구호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를 약속한 것이다. 물론 모든 이가 경제 개발의 과실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 시대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그 약속은 성공적으로 지켜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탄탄한 중산층을 형성한 국가가 되었다. 중산층의 성장과 민주주의의 정착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게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루어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이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심지어 4·7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압도적인 패배로 끝났음에도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선거 다음 날인 8일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부패 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8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정책의 큰 틀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신념, 차라리 집념이라고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노예제는 폐지했지만 너희가 감히 좋은 집을 사면 안 된다. 자산을 가진 중산층이 아닌 우리가 시혜적으로 내려다보며 동정할 수 있는 빈곤층이 되어라. 이런 차별과 멸시의 시선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혈기 넘치는 20대 남성들이 분노의 투표를 한 것은 그런 면에서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노예 해방 전쟁으로 세워진 자유민들의 나라다. ‘24평 아파트와 자가용 한 대’의 약속을 믿고 달려온 국민들이 기적과도 같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이 빛나는 성취를 빼앗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청년에게 내 집 마련을 허하라. 삐뚤어진 차별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면, 내년에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1-04-08

4‧7 재보선, ‘문재인식 뒷짐 정치’ 심판했다

 [노정태의 뷰파인더㉙] 文 멋져 보이는 데만 골몰 ‘無책임정치’

4·7 재보선 결과는 1월 3일 정해졌다
● 이명박‧박근혜 사면 카드 제안한 이낙연의 추락
● 文 대통령 “지금은 사면 말할 때 아니다”
LH 사태엔 ‘부동산 적폐 청산’ 적반하장
● 김종인 중도, 안철수 합류…‘사면 불발’이 만든 결과
● ‘文 팬덤’ 달래려고 누군가 대신 악역 맡아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4월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4월 8일 오전 3시를 전후해 최종 완료된 개표 결과 오세훈 후보가 57.50%를 득표해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39.18%)를 18.32%포인트 앞섰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모두 오세훈 후보가 승리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박형준 후보가 62.67%를 득표해 당선됐다. 민주당 김영춘 후보는 34.42%를 득표했다. 

광역·기초의원 선거에서도 12곳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고, 민주당 후보는 호남 4곳에서 당선되는데 그쳤다. 경남 의령군의원 선거에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슈퍼여당’을 만들어준 민심이 확 바뀐 것이다. 선거의 결정적 분기점은 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드러나고, 부동산 정책에 분노한 민심이 폭발하는 와중에도 정부와 청와대가 ‘자체 조사’ 등을 운운했던 3월 중순을 떠올릴 것이다. 때마침 그 직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윤 전 총장은 지지율 1위의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상황이 이랬으니 3월 중순을 재보선의 분기점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부터 누적되어온 정권 심판 여론이 이제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마치 봄이 되면 꽃이 피듯이, 대통령 임기가 고작 1년 남짓 남은 시점에 비로소 불만 여론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는, 요컨대 정권 심판 구도를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보는 시각이다. 

과연 그럴까. 세상 어떤 일도 저절로 이루지는 것은 없다. 국민감정과 여론이 나쁘기로 따지면 지난 총선 무렵도 만만치 않았다.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소위 ‘강남좌파’의 내로남불 행태가 불거지면서 적잖은 국민이 학을 뗐다. 하지만 선거를 해보니 180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이 탄생하고 말았다. 

대체 이번 선거는 무엇이 달랐던 걸까. 야당이 압승한 결과를 이해하려면 어떤 순간에 주목해야 할까. 그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1월 3일 나비효과… ‘정권 심판 어벤저스’의 출현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가 4월 8일 새벽과 전날 밤에 각각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와 부산 부산진구 선거사무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스1]
1월 3일. 이번 선거의 결과가 결정된 날이다. 그 후로 벌어진 일은 1월 3일의 논리적 전개로 인한 것이다. 스스로의 책임 하에 정치행위를 해야 할 사람이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모두 그 ‘부작위’의 영향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1월 1일로 돌아가 보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뜻밖의 행보를 보였다. 수감 중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거론한 것이다. 이는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열혈 지지층의 분노가 컸다. 결국 이 전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했다가 사흘 만에 “당원들의 뜻을 존중하겠다”며 뜻을 굽혔다. 여권 대선 주자로 꼽히던 그의 정치적 입지는 치명적 타격을 입은 셈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 혹은 청와대가 한없이 애매한 입장을 유지했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은 1월 7일 청와대에서 화상으로 진행된 신년인사회에서 “새해는 통합의 해”라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할 듯 운을 뗐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당일 춘추관에서 “통합에 사면만 있겠나”라며 사면론에 선을 그었다. 

결국 보름이 지난 18일에서야 사면 정국은 마무리됐다. 이날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수감에 대해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태”라면서도 사면에 대해서는 “그래도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절 특사로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3·1절을 앞두고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이 현실화했다면 정국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지금처럼 정권 심판 열풍이 몰아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재보선의 진행 과정을 복기하면 분명하다. 야권은 탄핵을 둘러싼 갈등을 반복했을 것이다. 정국은 지금보다 훨씬 혼잡스러운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테다. 재보선의 정권 심판 구도는 이명박·박근혜가 선거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하면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래서 대선주자 급 정치인 중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가장 일찍 외쳤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먼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고 야권 단일화에 나설 수 있었다. 

1월 19일 안 대표는 국민의힘에 “경선 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오픈 경선 플랫폼에 참여하는 나뿐 아니라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 야권 그 누구든 참여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당시 나경원, 오세훈 두 사람이 국민의힘 경선판을 달구고 있던 시점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안철수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제안의 여파는 작지 않았다. 4·7 재보선 성격이 단번에 규정됐기 때문이다.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과 안철수라는 중도 대선후보가 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이번 선거의 성격을 오직 ‘정권 심판’으로 좁힌다는 말과 같았다. 

안철수 스스로도 그 점을 강조했다. 그는 1월 19일 “이번 서울시 보궐선거는 이겨도 되고 져도 되는 선거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선거에 저의 모든 것을 던져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다 더불어민주당 출신인 금태섭 전 의원마저 ‘정권 심판’의 흐름에 동참했다. 금태섭은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거쳐 ‘범야권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국민의힘의 ‘빨간 점퍼’를 입고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역할을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어려웠던 ‘정권 심판 어벤저스’의 결성이었다.

오세훈 지지 이유…“文정부 심판하기 위해서”
4월 2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에서 4·7 재·보궐선거 투표참여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던 것은 김종인이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꾸준히 ‘좌클릭’을 하며 중도 유권자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광주 5·18민주묘역을 찾아 참배하였을 때 국민의힘 내외에서 쏟아졌던 반발은 굉장한 것이었다. 김종인은 우직하게 중도를 향한 외연 확장 행보를 밟았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다시피, 두 전직 대통령이 사면을 받았다면 ‘오직 정권 심판’으로 하나가 된 선거구도는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안철수가 앞장서서 야권 단일화를 외칠 수도, 금태섭이 합류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수는 보수의, 중도는 중도의, 이탈한 진보층은 또 각자 의제를 끌어안은 채 사분오열된 상태로 선거를 치렀을 공산이 크다. 

김종인의 중도 확장 전략, 중도를 대표하는 안철수의 단일화 드라이브, 그리고 문 대통령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거부. 이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리면서 이번 재보선은 명실상부한 ‘민주당만 빼고’ 선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결과론적인 해석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선거 결과를 놓고 그 과정을 복기하고 있고, 복기는 결과론에 기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짚어본 선거 과정 속에서 유의미한 교훈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번 선거가 ‘정권 심판’ 선거였다는 것에는 모든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꿔보자. 유권자들은 정권의 어떤 부분을 심판한 것일까.
 
대체로 이번 선거는 현 정권의 위선과 부도덕과 내로남불 등에 대한 심판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여론의 디테일은 사뭇 다르다. 여론조사기관 ‘케이스탯’이 ‘한겨레’ 의뢰로 3월 30~31일 서울 거주 유권자 1012명을 조사한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사에서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를 상대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도덕성에서 더 신뢰할 만해서’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4.2%, ‘친근하고 서민을 잘 이해할 것 같아서’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6%에 지나지 않았다. 

여권의 아킬레스건으로 평가받는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도 야당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중 ‘부동산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은 14.9%에 머물렀다. 서울시민은 더 도덕적이지도, 더 서민적이지도 않은, 심지어 부동산 문제에서도 더 나을 거라고 큰 기대를 품지 않는 야당 후보 오세훈에게 지지를 보냈다. 

1위를 차지한 응답은 단연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서’였다. 응답자의 46.4%가 이 선택지를 택했다. 국민은 뭔가 심판을 했다. 그 이유는 도덕도 서민 친화성도 부동산 문제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심판받은 이유는 결국 정치에 있다.

남의 손으로 카드 만지다 내팽개쳐
이번 선거는 ‘문재인식 무책임정치’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감옥에 보내고, 대통령 자신의 입으로 사면 논의를 꺼내지도 않은 채, 적당히 간을 보다가 철회하는 식의 무책임한 정치의 대가를 이제야 치르고 있다는 소리다. 

돌이켜보면 ‘문재인식 뒷짐 정치’는 이번 정권 내내 이어져왔다.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향한 ‘팬덤’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꼭 누군가가 대신 악역을 맡았다. 대통령이 멋져 보이기 위해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쇼가 끝나면 입을 씻는 일이 반복돼 왔다. 

LH 사태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내로남불,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 그 자체가 국민의 도화선을 건드린 게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여론이 나빠진 것도 아니다. 부동산 문제가 한창 뜨겁던 지난해 말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40%대를 견고하게 유지했다. 그때만 해도 몇 달 뒤 재보선에서 여당이 무기력하게 패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결국 정치적 책임의 부재에 대한 국민의 분노라고 봐야 한다. 온갖 잡음과 비리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던, 심지어는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사과부터 하고 시작했다면 여론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다. 즉각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한 마디 하는, 그 작은 책임조차 지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에 국민들이 학을 떼 버렸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의가 진행되던 과정을 떠올려보자.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논란이 커지자 다소 ‘송구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여론, 특히 강경 지지층의 눈치만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여당의 유력 대권 후보 중 한 사람(이낙연)은 모멘텀을 잃었다. 사면이 불발로 돌아가면서 안철수로 대표되는 중도 세력의 선택지가 넓어졌다. 

청와대도 재보선을 앞두고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지 않으면 선거 구도가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면 카드를 꺼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직접 맞지 않기 위해 남의 손으로 카드를 만지다가 내팽개쳤고, 결국 여당에 전혀 유리하지 않은 정치 구도가 완성되고 말았다. 

이번 재보선은 다음 대선 전초전이다. 급격한 정계 개편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어떤 변화가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실수할 수도 있고, 부패와 추문이 불거져 나올 수도 있다. 지지층을 실망시키는 정치 행위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부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정치를 보고 싶다. 대부분 국민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더 이상 무책임한 정치를 보고 싶지 않다. #문재인 #이명박 #박근혜 #4‧7재보선 #사면론 #오세훈 #박영선 #박형준 #김영춘 #신동아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2021-04-04

식목일로 본 文정부…나무 뽑는 정권? [노정태의 뷰파인더㉘]

 ● 일본이 길 가에 소나무를 심은 이유
● 박정희 “산이 푸를 때까지 유럽 안 가겠다”
● 나무에서 석탄으로…탄광촌 개발과 산업화
● 태양광 패널 깐다고…2018133만 그루 벌목
● 토지보상 더 받으려 나무 심는 공직자들
● 나무 심는 정권이냐, 뽑는 정권이냐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1993년 4월 5일 당시 농림수산부 공무원들이 경기 용인시 일대 야산에서 잣나무 묘목을 심고 있다. [동아DB]
4월 5일은 식목일이다. 식목일은 1948년 처음 지정된 이후 1960년 ‘사방(砂防)의 날’로 변경됐다가 이듬해 곧장 4월 5일로 복귀, 지금껏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공휴일은 아니지만 법정기념일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식목일 이틀 뒤인 4월 7일은 재‧보궐선거가 예정된 날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다시 뽑는 날일 뿐 아니라, 울산 남구청장과 경남 의령군수 선거 등도 함께 진행된다. 

이번 재보선은 '대선 전초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은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부산은 제2의 도시인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을 우리는 좀 더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듯하다. 물론 이것은 1년3개월짜리 시장과 구청장, 군수를 뽑는 선거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라 전체의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식목일 직후에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을 놓고 보면 분명히 그렇다. 

조선과 일본의 국력 격차는 언제부터 벌어졌을까. 역사학자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지만 임진왜란이 벌어질 당시에도 양국 간 격차는 충분히 벌어져 있었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조선은 국력이 더 기울어진 반면 일본은 에도 막부 시기를 거치며 안정적인 치세를 이루었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은 개항을 빨리 해서일 수도 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초 체력 자체가 취약했던 탓도 있다는 뜻이다. 

조선이 몰락한 원인을 정확히 서술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몫이다. 앞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조선과 비교해볼 때 일본이 지니고 있었던 독특한 성격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

도쿠가와 막부의 삼림 관리
1972년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식수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아DB]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 시대가 열린 후, 일본은 철저하다 못해 집요한 삼림 관리가 시작됐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서로 오랜 전쟁을 벌이고,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평화와 안정을 찾았지만 1657년에는 에도(오늘날의 도쿄)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해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고 도시의 절반이 불타버렸다. 

나무를 베어내고 또 베어내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마구잡이 벌목을 하다보면 산은 민둥산이 되고 흙탕물이 하류로 내려와 농업 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잦은 홍수로 인해 인명 피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도쿠가와 막부는 철저한 숲 관리에 들어갔다. 

일단 쇼군 스스로가 별도의 관리를 임명해 자신이 직접 관장하던 일본의 삼림 중 4분의 1을 통제했다. 또한 그 외의 다이묘(높은 신분의 지방 영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임야를 통제하라고 명령했다. 소규모 군락 등에서는 마을 단위의 공동 관리를 지시했다. 

사실 에도 대화재가 발생하기 전부터 에도시대 일본인들은 나무를 심고 숲을 관리하는 것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 일본의 잡초생태학자이며 저술가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에서 그 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전국시대의 무장들은 약초, 독초, 비상식량 조달 등을 이유로 식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무사들에게 식물에 대한 지식과 애정은 ‘필수교양’을 넘어 ‘전공필수’에 가까웠다. 둘째, 에도시대에는 각 지역 다이묘들이 자식을 에도에 인질 삼아 보내야 했다. 그렇게 각지의 귀족이 모여 있는데 땅은 좁다보니 정원을 잘 가꾸고 과시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셋째, 가장 중요한 권력자로서 ‘트랜드 세터’라고 할 수 있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성격이었다.

일본이 길 가에 소나무를 심은 이유
201810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키고 전국 통일을 이루기 전이었던 1604년,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일본 전역의 가도(街道)를 정비하면서 그 길가에 소나무를 심었다. 적이 침공한다면 재빨리 나무를 베고 쓰러뜨려 장애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길가에 심어진 가로수는 여행자와 마차 등이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준다. 아직 천하 패권을 놓고 벌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도쿠가와 막부는 길을 닦으며 나무를 심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혹은 그 후를 놓고 보더라도, 조선의 사정은 퍽 달랐다. 흔히 중앙집권국가로 알려져 있는 조선이지만 숲의 관리에 있어서는 봉건국가인 일본보다 통제력이 부족했다. 강원도에서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낸 탓에 매년 장마철마다 흙탕물이 한강으로 쏟아져 내려오고 홍수가 발생하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나서서 변변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1751년 간행된 조선 최초의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를 보면 그러한 상황이 안타깝고도 적나라하게 기술돼 있다. 

“강원도 영서지방의 산간지대가 화전민에 의해 자꾸 벌목되다보니, 여름철에 많은 비가 내리면 토사가 쓸려 내려가 한강바닥에 쌓여 한강의 범람 위험성이 커진다.” 

1910년 경술국치일 이전부터 조선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식민통치를 준비하던 일제로서는 이런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도쿠가와 막부 통치가 끝나고 메이지 유신을 통해 입헌군주제 국가로 탈바꿈했지만 숲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문화와 행정의 연속성은 지속됐기 때문이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상 조선의 산과 숲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관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학자 최병택의 책 ‘일제하 조선임야조사사업과 산림 정책’에 따르면,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일제가 조선인에게 총칼을 들이대며 숲의 소유권을 빼앗아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 전까지 공유지로 여겨지거나 소유권을 명확히 하지 않았던 숲을 국유지 혹은 사유지로 분류하고, 그 각각에 대해 나름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 벌목을 금지하고 식목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일제는 대단히 많은 나무를 심었다. 최병택의 기록은 이렇다. 

“일제는 조림대부제도와 삼림조합원에 대한 묘목 강매를 통해 1920년대 말에 이르면 한 해에만 모두 3억여 본(本)에 이르는 나무를 심었다. 자연히 식림 면적도 늘어나 1933년까지 1175602정보(1만1659㎢)에 이르는 임야에 식재를 완료했다. 식림이 강력히 추진될수록 미입목지(未立木地) 면적도 줄어들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최병택의 비판에 따르면, 일제의 나무심기 사업은 설득과 장기적인 계몽을 통해 협력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근대적 왕조 시대를 살아가던 조선인들에게 갑작스러운 근대적 제도를 제시하고 ‘금벌주의’를 앞세워 처벌을 통해 강제하는 쪽에 가까웠다.

나무에서 석탄으로…박정희의 산업화
2018년 9월 3일 충북 청주시 청원군 성재리 태양광 발전시설이 집중 호우로 토사가 유실됐다. [동아DB]
그 결과 일제의 식목사업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역사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남아 있다.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최병택처럼 ‘민족적’ 관점에 가까운 이들은 효과가 없었거나 미비했다고 보는 편이다. 반면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자’라는 비난을 듣곤 하는 학자들은 일제의 식목사업이 조선의 산을 푸르게 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여긴다. 총독부 스스로도 식목사업이 투입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고 반성하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일제의 나무 심기는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는 앞서 ‘뷰파인더’에서 다룬 일제의 두창 예방 접종 실패와 같은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가 도입한 근대 문물의 효용 그 자체는 조선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이중환은 ‘택리지’를 썼고 지석영은 종두법을 배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식목사업이나 우두법 보급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때 식민지 조선인들은 그런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고만 있지 않았다. 이는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의 표출이지만, 일면 안타까우면서 또한 어느 면에서는 분노를 자아내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나마 진행되던 일제의 식목사업은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을 거치며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6‧25전쟁 당시 남아있는 기록 사진을 보면 야트막한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다. 나무나 풀을 찾아보기 어려운 흙과 돌더미였다. 온 국토가 전란에 휩쓸려 있는데다 여전히 주된 연료로 나무 혹은 숯을 쓰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박정희 집권 이후였다. 강원 정선에 있는 사북은 전쟁이 터졌다는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1950년대 말 사북 도사곡에 50여 호, 고한에 80여 호 정도의 가구가 화전민 생활을 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제3공화국이 출범하고 1961년 말 ‘석탄개발에 의한 임시 조치법’이 제정되고 탄광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사북 등 탄광촌은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됐다. 

정선의 탄맥을 처음 발견한 것은 박정희가 아니었다. 이미 1926년 발행된 ‘삼척탄전 조사보고서’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 바 있다. 일제가 만들고 광구 개발권을 독점한 삼척개발주식회사는 1944년에 이르면 약 30만여 명에 달하는 광부를 동원해 석탄을 채굴했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탄광 광구는 해체됐고, 박정희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한국인들은 석탄이 아닌 나무를 주 연료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탄광촌 개발과 나무에서 석탄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를 특징짓는 핵심 사건 중 하나로 기억돼야 한다. 오늘의 논의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해방 이후 멈춰있던 식목사업이 다시 본격화되었다는 데 있다. 

1964년 서독의 울창한 산림에 큰 충격을 받고 돌아온 박정희는 관계자들에게 “산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 유럽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1965년부터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산림녹화 사업이 시작됐고, 그것으로도 미흡하다고 느꼈는지 1973~1982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이 추진됐다. 6년간 294000만 그루를 심었는데, 4년 일찍 목표를 달성한 대성공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산림녹화 결과 우리는 2015년 현재 산지 1ha당 나무 총량에 있어서 독일이나 스위스보다는 뒤쳐지지만 미국보다는 앞서는 ‘푸른 나라’에 살게 됐다.

나무를 심는 정권이냐, 뽑는 정권이냐
3월 5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667번지 일대 농지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보상을 노리고 심은 묘목. [동아DB]
박정희 시대의 의의와 유산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향에서 역사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현재사’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또한 탄광촌 개발로 인한 인근의 환경 파괴, 급격한 석탄 산업의 성장 및 1980년대의 석탄 합리화 사업으로 인한 탄광촌의 몰락 등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검토가 필요하다. 하지만 박정희가 나무에서 석탄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내면서, 동시에 삼림녹화를 진행해 민둥산이었던 국토를 푸르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나무를 심고 기르는 것도, 숲이 망가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민과 지도자 모두에게 10년을 내다보는 안목과 주인의식이 있어야 산림녹화는 온전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탈원전 및 태양광 발전 확대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2015~2020년 산지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벌목된 나무는 307만여 그루. 그 중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부터 베어진 나무가 81.3%를 차지한다. 2016년에는 태양광 설비 설치를 이유로 베어낸 나무가 31만여 그루였으나, 2017년에는 67만여 그루, 2018년에는 133만여 그루로 매년 두 배씩 늘어났다. 보다 못한 산림청에서 제동을 건 덕분에 이 추세는 꺾였다. 

나무를 심는 게 절대선은 아니다. 때로는 나무를 베어내거나 다른 수종을 바꿔 심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중금속 성분을 띈 태양광 패널을 깔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베어내는 건 마치 사북 탄광을 폐쇄하고 대신 1950년대처럼 나무를 연료로 쓰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양광 발전을 기후변화 대응 명분으로 내세운다면 더욱 그렇다. 

‘나무를 심는다’는 행위를 지표로 놓고 본다면 문재인 정부는 박정희는 고사하고 태평양 전쟁 이전의 일제 총독부와 비교해도 미흡하다. 국토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 및 책임의식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나무를 심는 정권이냐, 나무를 뽑는 정권이냐, 그 하나의 기준을 놓고 보자면 이러한 부정적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들어 공직자들은 다른 종류의 나무를 심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의 천태만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처럼, 더 많은 토지보상금을 받기 위해 희귀 수종의 나무를 개발 예정지에 빽빽하게 심고 있었던 것이다. 

3월 29LH 사태에 대해 내놓은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덧붙인 말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사실 개발 예정지나 수용 예정지에 나무나 묘목을 빼곡히 심어 보상금을 늘리는 적폐는 수십 년 전부터 되풀이돼 순박한 농민들도 알만한 수법이 된지 오래입니다.” 

21세기 최악의 ‘국토농단’이 벌어졌는데, 대통령 입에서 ‘그건 다들 아는 수법’이라는 말이 나오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식목일 이틀 뒤 치르는 재보선은 유권자들은 투표용지가 아닌 씨앗이나 묘목을 투표함에 넣는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향한 희망을 심어보는 건 어떨까.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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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3

강남좌파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날 길, 4·7선거에 달렸다

 [노정태의 시사哲]
영화 ‘헝거게임’을 통해 본 ‘참여연대 권력’의 시작과 끝

일러스트=안병현
 

어느 날 크나 큰 재앙이 닥친 후 북미 대륙은 수도인 ‘캐피톨’과 13개 구역으로 이루어진 판엠이라는 국가로 재편되었다. 오래전 반란을 일으켰던 13구역은 초토화되었고, 나머지 12개 구역은 오직 캐피톨의 번영과 풍요를 위해 착취당하고 있다. 16세의 소녀 캣니스 에버딘(제니퍼 로렌스 분)은 그중 가장 가난한 12구역에 살고 있다.

판엠에는 74년째 이상한 제도가 운영 중이다. ‘반란을 속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캐피톨을 제외한 전국 12개 구역에서 매년 12세부터 18세까지 남녀 한 쌍을 추첨해, 총 24명의 청소년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게 하는 것이다. 선수 추첨부터 단 한 사람의 승자가 살아남을 때까지 벌이는 살육전의 이름은 ‘헝거 게임’. 캣니스는 동생을 대신하여 헝거 게임에 자원한다.

헝거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24명중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평생토록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 캣니스처럼 가난한 구역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셈이다. 그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모든 판엠 주민들은 원치 않아도 시청해야 한다. 자기네 구역 출신의 누군가가 이기라고 응원하고, 열광하고, 실망하면서. 가장 잔인하게 고안된 ‘빵과 서커스’인 셈이다.

대체 왜 이런 잔인하고 비합리적인 짓을 하는 걸까? 판엠의 독재자인 스노우 대통령은 설명한다. “겁주는 게 목적이면 24명을 모아놓고 몰살하는 게 낫잖아?” 헝거 게임의 목적은 공포가 아닌 희망이다. “두려움보다 강한 유일한 것이지. 단, 그것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가두어 둬야 해.”

미국 작가 수잰 콜린스의 소설 <헝거 게임>의 설정이다.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또한 4부작으로 제작되어 큰 흥행을 거둔 바 있다.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에 맞서는 시위대가 영화에 나오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미얀마 국민들을 향해 세 손가락 경례로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이 지면에서는 좀 더 깊은 논의를 해보도록 하자. 스노우 대통령이 말한 ‘헝거 게임’의 내용과 목적에서 우리는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의 작동 과정을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을 주도하고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맞서 싸웠던 사람이다. 당시 많은 이는 자본주의와 불평등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파시스트 정권이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벌어지지 않는 것일까? 왜 억압당하는 자가 억압하는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 때로는 도리어 옹호하는가?

그람시는 경찰과 군대 등을 통해 폭력을 행사하는 좁은 의미의 ‘국가’와 그 밖의 ‘시민사회’를 구분했다. 시민사회는 교회, 언론, 학교,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제도 및 삶의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배계급은 국가뿐 아니라 시민사회를 통해서도 지배한다. 심지어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낸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헤게모니’다.

가령 무솔리니 정권에 불만이 있는 한 공장 노동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잠재적 혁명분자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매주 성당에서 신부의 강론을 들으며 착하고 순종적인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국가’의 폭력에는 반대하지만 ‘교회’의 설교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시민사회, 그중에서도 종교를 통해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짜 희망을 주는 헝거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 자신이 태어난 구역에서 착취당하고 살아야 하는 가난한 젊은이에게 헝거 게임은 ‘인생 역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각 구역 출신 우승자가 ‘멘토’가 되어 출전자를 지도하는 교육 프로그램까지 갖춰져 있다. 그런 구조 속에서 24명의 젊은이가 잘못된 체제와 싸우는 대신 자기들끼리 덫을 놓고 칼로 찌르며 화살을 쏜다. 판엠의 헤게모니는 그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헤게모니를 장악한 지배계급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다시 그람시로 돌아와 보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은 어지간해서는 혁명에 동참하지 않는다. 한 번에 세상을 뒤엎는 ‘기동전’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진득하게 사람들 틈에서 영향력을 늘리고 때를 노리는 ‘진지전’을 펼쳐야 한다. 대중을 천천히 견인해나가는 전략이다.

헤게모니론과 기동전, 진지전은 한국의 운동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주사파 등 혁명을 꿈꾸던 세력과 달리 시민운동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는 쪽을 택한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김창엽, 성낙돈 교수의 논문 “헤게모니론 관점에서 본 시민단체 시민교육의 성격: 참여연대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시피, 참여연대는 그 ‘진지전’의 핵심 거점이었다.

참여연대는 조국이 주도한 사법 개혁 운동, 장하성의 소액 주주 운동, ‘재벌 저격수’ 김상조의 재벌 개혁 운동, 박원순이 이끈 부패 정치인 낙천 낙선 운동 등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피지배층이 자발적으로 복종할 만한 권위를 축적한 것이다. 결국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참여연대는 문재인 정권을 통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실세 집단으로 등극했다.

그들이 권력을 잡은 후 대한민국은 내로남불 부동산 천국이 되고 말았다. 젊은이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면서 빚을 내 주식과 가상 화폐 투전판에 뛰어들고 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캐피톨’ 강남에 사는 강남좌파들이 온 나라를 헝거 게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캣니스는 헝거 게임에서 우승한다. 우승자로서 얻게 된 인기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혁명군에 동참하여 판엠의 헤게모니를 파괴한다. <헝거 게임>은 한 청년이 ‘진지전’을 벌여왔던 혁명군과 힘을 합쳐 ‘기동전’을 통해 잘못된 체제를 무너뜨리는 이야기인 셈이다.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교육, 언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는 저들 손에 넘어간 상태다. 자발적인 복종 상태에 빠진 이들은 여전히 단단한 결속력을 과시한다.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강남좌파의 헤게모니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응징의 화살로 헝거 게임을 끝낼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