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11

상스러운 조짐들

나라 앞바다에서 기름 실은 배가 나자빠지고, 때 맞춰 국가의 보물이 화마에 휩싸여 무너지니, 이 어찌 상스러운 징조가 아닐런가.

2008-02-08

지구를 뒤덮은 슬럼에서 퀴즈쇼에 참여하다

알라딘 서재에 《Q & A》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

. . . 《Q & A》는 현대 인도 사회에 대한 일종의 파노라마를 제공한다. 그것이 주마간산이라고 해서 우리가 이 책의 가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 사는 독자인 우리는 그저, 점점 평평해지면서 작아지는 세계의 가장자리 바깥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 정도를 기억하면 된다. 나 자신도 아차하는 순간 그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 굳이 떠올리지는 말기로 하자. 그런 '통찰'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퀴즈쇼》를 펼쳐보는 편이 더 나을 테니 말이다.

리뷰 전문을 읽으실 분은 여기로.

2008-02-05

왕도정치의 실용성과 그 방법론

도를 이룬 자에게는 도와주는 이가 많고 도를 잃은 자에게는 도와주는 이가 적다. 도와주는 이가 극단적으로 적은 경우에는 친척조차 배반하고, 도와주는 이가 지극히 많은 경우에는 천하 사람들이 따른다. 그러면 천하 사람들이 따르는 나라를 가지고 친척이 배반하는 나라를 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싸우지 않지만 싸우게 되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다.
73쪽, 《맹자》 (서울: 책세상 2002)


. . . 필자들은 연구 대상을 확대해, 1816년 이래 벌어진 전쟁 80개를 추가해 조사해 보았다. 해당 국가의 사회 계층화 정도는 당시 문헌을 조사해 판단했다. 분석 결과, 전쟁 당사국 중에서 사회적으로 더 평등한 구조를 가진 국가가 전쟁을 이긴 경우는 80%인 것으로 나타났다.
용감무쌍한 전투력과 사회 평등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둘 사이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국민개병제 체제로 구성된 군대의 내부 결집 정도가 다양할 수 있다는 점, 불평등한 사회의 군대는 종종 국내 반대 세력을 진압하는 데 동원된다는 점, 이런 사회에서는 적에게 심정적으로 이끌리는 가난한 병사들이 존재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13쪽, "평등한 나라가 이긴다", 《Foreign Policy》 한국어판, 2007년 11/12월호, 통권 163호


문제는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론"이 일종의 프로파간다를 통한 '사회 통합'일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는 데 있다. 가령 그 유명한 양혜왕 상권의 1장을 살펴보자.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을 다툰다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것"(15쪽, 같은 책)이라는 이유로 맹자는 이익을 말하는 양혜왕을 꾸짖는다. 임금이 인仁을 보여주면 신하와 백성들도 그것을 따라할 것이므로 임금은 이익 대신 인의만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 구상이기는 하지만, 너무도 단순한 행동 모형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국민국가의 구성원이 충실한 애국심을 느끼고 있을수록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굳이 위에 인용한 FP의 기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문제는 그러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방식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지도자가 먼저 본을 보여야'처럼 한국어 화자들의 입에서 너무도 쉽게 나오는 표현들은, 이렇듯 의외로 단단한 사상적 연혁을 갖추고 있고, 따라서 좀 더 정밀한 분석 및 역사적 고찰을 요한다.

김규항에 대한 벤야민의 코멘트

나는 신학을 공부하려던 나의 소망을 접고 입대했다. 그곳에서 세 번의 살인과 세 번의 자살을 생각했고 김씨 성을 가진 여자를 떠나보냈으며 김씨 성을 가진 창녀에게 구혼했다.
김규항, "교회", 《씨네 21》, 1998년 12월.


매춘부에 대한 사랑은 상품에 대한 감정 이입의 신격화이다.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조형준 옮김 (서울: 새물결 2005), 1154쪽.

2008-02-04

[낮은 목소리로]“군대 가면 영어 잘하게”

'국민들이 영어를 잘 하게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사고방식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칼럼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 번 글에서 필자는 군대를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 지식사회의 최고 공헌집단으로 변화시킬 기회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방안으로 국방부의 공식 언어를 영어로 지정하고 지식 중심의 군대로 재편할 것을 제안했다. 군 복무기간 동안 모든 군인은 영어만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즉 국방부의 시계를 영어로 돌리는 것이다.

군대가 가진 최대의 장점과 최고의 강점은 격리된 집단생활이다. 시간을 통제하고, 언어를 통제하고,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명령하고 지시하고 정확하게 알아들었는지를 복창으로 확인하는 유일한 조직이다.

일반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조직, 영어만 사용하게 하는 절박한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이런 강제력을 가진 조직이 군대 외에는 없다. 어느 사단을 정해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고 차차 확대해 나가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2년 동안 영어만 쓰는 군대생활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 .

이강백, [낮은 목소리로]“군대 가면 영어 잘하게” 경향신문, 2008년 2월 2일, 34면.

너무 골때려서 지금은 코멘트 불가.


추가) 이 칼럼의 저자 이강백 씨는 아름다운가게의 집행위원이라고 한다. '뒤집어 쓰면 영어로 욕이 절로 튀어나오는 철모' 같은 아이템도 거기서 파는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