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은 경향신문에 "혐오의 상승작용"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링크) 여성 대 남성의 성비가 3:1인 고등학교에 다녔던 자신의 막내아들이 겪었던 '고초'를 소개하며 글을 시작한다. 남학생들에게 '원치 않는 여장'을 강요하고 여학생들이 투표하게 하는 학교 행사가 있었는데, "다행히 자기는 강제 출전당하는 ‘굴욕’을 겪지 않았지만, 강제로 ‘여장’당하며 민망해하는 친구들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자 고등학생이 느낄법한 뻔한 '분노'인데, 전우용은 그런 시시껄렁한 사건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녀석이 살아온 세계는 내가 살아온 세계와 달랐다. 집에서 아들이라고 대우받은 적도 없고 학교에서는 언제나 여자 선생님들에게 순종했으며, 여자아이들에게 종종 ‘타자화’ 대상이 되었으니, ‘사회가 남자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주장에 공감할 수 없었을 게다."
전우용의 작은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역사학자'님이, 아직 세상의 쓴맛을 보지도 않은, 게다가 자기 아들이므로 혈육에 의한 끌림과 가중치가 주어질 수밖에 없는 편향적 경험에 대해, 대단히 큰 의의를 부여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설득에 실패했고, 오히려 내가 반성했다. 남자아이들에게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게 하고 즐기면서 여자아이들이 배운 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남자아이들에게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게 하고 즐기면서 여자아이들이 배운" 것이 메갈리아의 미러링이라고 전우용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 줄기차게 비판당한 바와 동일하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그것도 남들 기분 나쁘게 하는 점잖치 못한 소리인데, 그런 걸로 여성혐오를 극복하려 해봐야 도리어 반감만 커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저 고등학교의 ‘교육 프로그램’도 미러링에 해당하지만, 역효과가 더 컸다. 질 나쁜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쓰는 온갖 추잡한 말들을 그대로 복제해서 남자 일반에게 돌려주면, 남자들이 회개할까? 이런 행위는 오히려 여자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남성성’을 내면화하게 하여 여성주의가 그토록 혐오하는 ‘폭력성’의 저변을 확대 강화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전우용은 '여장 시켜놓고 깔깔거리고 쳐웃는 저 기집애들 줘패고 싶은 남자 고등학생'에 감정이입하고 있다. 적어도, 그가 여학생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지 않거나, 못하거나,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남자들에게 여장을 시키고 외모 품평을 하는 것, 그것을 전우용은 "미러링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여장남자 외모품평회'라는 "미러링"은 무엇을 비춰보이고 있는 것인가? 여성적으로 꾸미는 것에 관심이 있건 없건, '여자니까 여자답게 꾸며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외모 품평에 나서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전우용은 이미 '억울한 남자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미러링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거울에 비춰 보이는 모습이 왜 자신에게 분노를 일으키는지 되짚어볼만한 냉철함이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그저 자신의 막내아들을 달래려다가 도리어 '남자로서의 분노'를 공유해버린, 어른스럽다고 말하기 힘든 자아를 고스란히 폭로해놓고는, 그걸 또 무슨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된 양 신문 지면에까지 칼럼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전우용이 '너희 남자애들은 그렇게 1년에 딱 하루 외모 품평을 당하지만, 잘 생각해보렴, 여자애들은 지금도 계속 외모 지적을 당하고 품평 당하고 있잖니. 너와 네 남자인 친구들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지 않았니?'라고 물어보았다면, 아마 전우용의 막내아들은 대답할 말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른'스러운 대답이다.
하지만 전우용은 '여자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가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장남자 가장무도회라는 '미러링'을 겪은 아들을 설득하지도 못했다. 문제는 이런 협소한 남성중심적 시각과 협소한 세계관, 그리고 SNS에서 욕먹은 사실을 굳이 앙갚음하기 위해 신문 지면까지 동원하는 '선택적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진보 진영에서 주요 필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 진영의 인적 쇄신 및 젠더 감수성 회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