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은 <비밀은 없다>의 남매편(자매편x 형제편x) 같다. <우상>에서 성매매가 등장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은 <비밀은 없다>에서 디지털성범죄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되짚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두 작품 모두 결백하지 않은 인간들이 등장해, 최선을 다해 싸우는 이야기.
<비밀은 없다>를 좋아한 사람이 <우상>을 좋아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자를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후자도 적어도 '이해'는 하면서 볼 수 있다. 양자 모두 평균적인 한국 관객의 영상 리터러시보다 기준점이 훨씬 높기 때문에 애초에 흥행은 불가능한 작품이다.
<비밀은 없다> 이후 한국 영화가 이렇게 '영화답게' 나온 것도, 글쎄, 내 기억에는 중간에 끼워넣을만한 작품이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요 사건 설정, 인물 구도, 기타등등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비밀은 없다>를 본 사람이라면 <우상>은 보고 나서 판단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싫음 말고...
참고로 나는 문제의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렸다. '대한민국 학교 다 좆까라 그래 씨발~' 하더니, 결국에는 강남의 입시학원 다니는 게 결론이었던 그 영화. <우상>도 '대한민국 정의 도덕 다 좆까라 그래 씨발~'을 외치는데, 이쪽은 그따위 얄팍한 자기변명이 아니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애초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한 게 잘못이었다. 왜 결혼했을까? 그 남자는 '전라도 출신 미녀'가 필요한 정치 지망생이었고, 연홍은 탑 스타가 못 될 것이 거의 확실한 가수(지망생)이다. 물론 사랑도 했겠지. 남자의 야망에 탑승해 스포트라이트도 받고 싶었고. 근본적인 실수.
<우상>의 중식도 아주 근본적인 실수를 했다. 극중에서 아예 본인의 입으로 말을 해버린 그것일 수도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어떠한 방향으로건 비극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세팅. 두 영화 모두, 두 인물의 근본적인 실수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가 없는 셈 치는 '터진 맹장'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극장에서 '터진 맹장'(참고로 이것은 영화와 완전히 무관한, 내가 방금 떠올린 은유다) 같은 걸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우상>을 안 보는 편이 나을 수 있고, 솔직히 본다 해도 뭐 이해가 될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비밀은 없다>를 따라갈 수 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봐도 좋을 것이다.
다음 영화에서 댓글을 보니까 정말 '그 장면'에 진심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 <우상>은 어쨌건 '우상 파괴'에 성공한 것이다.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지금 말해도 큰 무리가 없)지만.
2019년 3월 25일 남겼던 기록. 내가 작년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우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