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6

아직 개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2004년 총선, 노회찬이 소수점 차이로 김종필을 꺾고 국회에 입성했던 그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이 급성장하여, 마치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리버럴 파티를 압도하고 보수당과 양당 구도를 이루는 미래를 꿈꿨다.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아무리 원숙했다한들, 정의당이 된 민주노동당이 NL 주사파 주류가 떼어준다고 꼬여낸 비례 의석 몇 개에 눈이 팔려, 원칙이고 뭐고 다 갖다바치며 공수처같은 악법에 동의할줄은 몰랐을 것이다.

개표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찌되건, 이미 내 피는 식었다. 내가 현실 정치에서 희망을 보던 나날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2020-04-13

중국 자본주의와 코로나 19

2003년 사스도 그렇고 이번 바이러스 대란은 중국이 무책임한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 이미 경제적 기반이 있는 부농들이 일반적인 농업을 선점하자 빈농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그 대책으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아무 생각 없이, 현존하는 모든 동식물을 천연자원으로 간주하여 채집 수렵 매매를 원천적으로 허가합니다.

그래서 특히 내륙의 밀림과 맞닿은 우한시 등이 야생동물 밀렵(도 아니죠 사실) 거래의 천국이 되었고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겁니다.

이건 제 뇌피셜이 아니라, 중국계 미국인 학자를 인터뷰한 미국 언론 Vox의 보도 내용입니다.

"How wildlife trade is linked to coronavirus", Vox, 2020년 3월 6일.

중국이 '서구 자본주의' 국가처럼, 야생동물 밀렵을 금지하고 매매를 엄금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10여년 단위로 새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은 없었겠지요. 공산주의를 빙자한 극단적 자본주의의 인류적 민폐라고 봅니다.

좋은 시장경제, 바람직한 시장경제라면 시장에서 매매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후자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자칭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는 양자의 구분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그냥 돈이면 다 되는 아수라장인 셈.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이런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아무거나 영리활동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니, 온갖 야생동물을 잡아서 비위생적으로 유통하는 시장이 생겨버린 겁니다.

저는 이번 판데믹의 전개를 보며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회복 능력'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는 논의가 매우 불편합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건 2년 후면 인류 전체 인구의 60%가 감염되면서 끝납니다. 스페인 독감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 경우도, 최악이라 해도, 그렇게 끝납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지배할 것이고, 인류는 화석 연료를 활활 태울 것이며,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의 작동 원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바이러스 앞에 죽어나가는 선진국 시민들'을 보면서 뒤틀린 만족감을 느끼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정리해보겠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는 자연의 복수가 아닙니다. 통제되지 않은 중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더 잘 제어되는 시장질서와 경제 윤리, 그리고 원시림과 야생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 하는 '서구적 자연 관리' 개념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2020-04-12

21대 총선 과정에서 확인된 몇 가지

  • ‘소수 정당을 우대하는 제도’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도 결국 정치 지형은 정치인과 유권자가 만든다.
  • 우리가 잊고 있던, 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을 둔 소선거구제의 장점.
    1.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유권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2.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후보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3. 유권자에게 ‘저 인간 떨어뜨리기’의 권리가 주어진다. 반면,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는 무슨 수를 써도 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떨어뜨릴 수 없다.
  • 애초에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촉진하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부터 물어봐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왜 당위적 선으로 여겨지는가? 어차피 국회에 보내놓으면 거대 여당/야당 따까리 짓이나 하는데?
  • 소선거구제이며 비례대표 따위 없는 영국의 정치.
    • 한국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 UKIP이나 스코틀랜드 국민당 같은 소수 정당이 출현하여, 대중을 설득하고, 민심을 움직여, 소선거구제를 뚫고 의석을 얻어낸다.
    • 그 역동적 과정 속에서 영국은 새로운 정치적 의제와 대립 구도를 얻었다(그 의제가 좋은 의제라는 뜻은 결코 아님).
  • 반면 한국은, 제도만 신나게 뜯어고쳤지, 5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대립 구도 속에서, 현재의 국면에 걸맞는 정치적 의제를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
  • 왜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가? 왜 ‘제도’ 탓이나 하는가?
  • 이것은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2020-04-06

2000년대 초, 인터넷과 페미니즘에 대한 단상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촬영자와 모델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전문가이든 아마추어 동호회원이든 ‘촬영을 거부한 모델’이라는 소문이 나면 사진 업계에 발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관계를 악용해 모델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공개 촬영회가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곽씨의 증언이다.

허정헌, ‘모델이 신었던 스타킹 나눠 드려요’ 도 넘은 촬영회, 한국일보, 2018년 5월 21일.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5211066365076

2000년대 초반. 디씨 부흥기. 월드컵 하고 세상 다 ‘우리 거’라고 믿던 때. 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것이던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을 ‘흑미추녀’ 같은 식으로 조롱하는 영상을 만들고 유포해도 ‘진보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던 시절. 여자니까 박근혜를 지지할 수도 있다던 최보은을 김규항이 두들겨 패놓은 탓에, ‘젖녀오크’ 같은 언어 성폭력에 감히 반발하지 못하던 시절. 다함께 여혐하던 시절.

발기탱천한 진보남들의 부랄발광에 여성들이 장단맞춰주고 남성적 언어의 외피를 둘러쓰고 같이 놀았던, 혹은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 그게 존나 쿨한 줄 알았던 시절. ‘우리’가 이 시점에 ‘힘을 몰아주지’ 않으면 수꼴들이 부활한다는 협박이 날아오던, 그런 시절에 만들어진 여혐 템플릿들.

우파 남자들은 국가의 개입이 싫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라서, 좌파 남자들은 시장주의가 싫지만 가난한 여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면서,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이대 부르주아 꼴페미’를 욕하던 시절. 성매매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좌파 남자’들이 진보 사이트에서 히죽대던 시절.

* 일러두기: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기록 및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예전에 썼던 트윗 타래를 블로그에 적어둡니다.

2020-04-05

코로나의 불똥? 국민국가(nation state)가 귀환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대국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불필요한 이동과 사회적 접촉을 삼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연거푸 전달한 그에게 한 기자가 던진 질문.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은 과연 잘 통제될 수 있겠습니까?’

CNN으로 그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국경 문제, 이른바 ‘백스톱’은, 브렉시트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다수의 영국 언론은 검문소와 담장 등 물리적 국경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영국의 국경은 튼튼한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코로나-19가 뒤집어놓은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국가(nation state)가 귀환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국경 없는 세계주의’를 선으로, ‘자국 중심주의’를 악으로 단정짓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중국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되고 있음에도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러한 도덕관념에 기댄 것이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에서 의료진이 운전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이날 슬로베니아 정부는 이탈리아와의 국경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게티이미지

하지만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어도 바이러스 대응에는 국경이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외교 논평가인 기드온 라흐만(Gideon Rachman)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여분간 이어진 대국민 연설에서 단 한 번도 유럽연합(EU)을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은 EU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 독일마저 코로나-19 앞에서 오직 독일 자신만을 챙기는 중이다.

EU는 미국처럼 내전을 치러가며 국방, 치안, 행정 등을 통합하는 대신 그저 같은 화폐를 쓰고 인구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만으로 연방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 기획이었다. 좋을 때는 좋았지만 힘든 시절이 오니 어림도 없다. <포린 폴리시>의 보도에 따르면, 3월 현재 이탈리아의 발병 건수가 중국을 넘어서고, 성당마다 시신이 넘쳐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EU 회원국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EU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초국가적 공동체의 이상이 무너지고 나니 국민국가의 모습과 개성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앞서 말했듯 독일은 위기가 닥쳐오자 감정을 배제하고 국민의 60% 이상이 감염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질병과의 총력전에 나섰다. 흔히 프랑스를 ‘시위할 때 자동차를 불태우는 나라’, ‘왕의 목을 자른 나라’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자 마크롱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대국민담화를 통해 친구들과 만나 파티를 벌이는 국민, 특히 청년들을 꾸짖었다. 부르봉 왕가와 나폴레옹, 드골을 거쳐 오늘날까지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의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국가가 아닌 도시나 마을 단위로 귀속감을 느낀다. 최근 화제를 끌었던, 한 이탈리아 시장이 시민들을 향해 조깅하지 말고 개 산책시키지 말라고 화내는 영상을 떠올려보자.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돈 까밀로와 뻬뽀네(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가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가톨릭 신부와 공산주의자 시장의 힘싸움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방국가로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특성 또한 이번 일을 통해 도드라졌다. 지난 3월 27일, 지나 레이몬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는 주방위군을 배치해 뉴욕주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량을 멈춰세우고 격리 조치에 대해 상기시켰던 것이다. 미국은 각 주가 무장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연방국가이며, 남북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그 틀을 지켜냈음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힘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에 있다. 그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와 일부 언론은 한국의 코로나-19 검사 속도를 소위 ‘국뽕’의 소재로 삼아왔다. 이는 민간 기업이 신속하게 내놓은 5종의 키트를 임상병리사들이 수작업으로 비교하여 만들어내는 결과다. 반면 미국은 3월 31일 현재 자동화된 과정을 통해 엄청난 속도와 정확도로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포드 모델 T처럼 전차를 찍어내고, 돛단배나 요트처럼 군함을 띄우던 저력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은, 마치 처칠의 그 유명한 연설처럼,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피와 땀과 눈물’뿐임을 천명하고 단결과 희생을 호소하는 중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보리스 존슨이 보좌관들과 설명한 바, 코로나 사망자는 세 종류다. 건강한데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경우, 기저질환이 있고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경우, 의료 과부하로 치료를 못 받아 다른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경우. 코로나-19의 치료제가 없는 현실 속에서 병원에 온다 한들 첫째 경우는 공공의료체계 NHS가 해줄 일이 없다. 아파도 집에서 참아야 한다. 그래야 세 번째에 해당하는, 대구 17세 소년 같은 환자가 제때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집에 있자, NHS를 지키자, 생명을 구하자. 본인도 확진자가 된 후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존슨 총리는 본의 아니게 솔선수범하는 지도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바이러스의 대공습 앞에 국제주의와 탈국가주의의 이상은 온데간데없이, 각국이 뿔뿔이 흩어져 대응하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에 ‘윤리적 과제’를 던진다고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기드온 라흐만은 이 사태로 인해 극우 민족주의자와 극좌 환경주의자라는 양 극단이 기승을 부리게 될지 우려한다.

하지만 대만처럼 선제적으로 중국발 입국을 차단한 뉴질랜드는 노동당 출신의 1980년생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의 지휘 하에 사망자를 한 자릿수로 묶어두고 있다. 2015년 완전한 남녀동수 내각을 출범하며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또한 해외 입국을 차단한 상태다. 차이잉원 대만 총리의 진보적 성향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진보 정권들이 선제적으로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국민국가를 절대악도 필요악도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삶의 조건과 윤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조선닷컴 | 입력 2020.04.04 12:0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3/20200403031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