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언론에서 '20대 남성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린 이유'를 알아보자고 나서는 모양새다. 가령 중앙일보에 실린 이 기사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물어보아야 할 질문이 있다. 왜 20대 여성은 현 정권을 지지하는가? 갓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이의 취업이 어렵다면 그것은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남자들은 '페미니스트 정권'이라는 구호 자체에 실망한 듯한 기색을 보이지만, 여자들은 그 거창한 구호가 한낱 말잔치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20대 여성은 현 정권을 든든하게 지지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꼰대질'을 더민주가 안 하지는 않지만 자한당 측은 감추려 들지도 않는다는 것. 둘째, 더민주 자한당 양자택일 구도가 유권자에게 사실상 강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셋째, 가장 직접적으로 꼰대질을 당하는 코호트가 노골적인 자한당 꼰대보다는 위선적인 민주꼰대를 지지하는 것.
가령 탁현민 같은 분이 청와대에서 버티는 차원을 넘어 실세로 살아가고 있는 '페미니스트 정권'을 보면 우습다는 생각이 들고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전 정권에서는 윤창중이 여성 인턴을 자기 호텔방에 불렀는데 그때 팬티만 입고 있었는지 팬티도 안 입고 있었는지 등을 놓고 한동안 언론이 시끌시끌했다. 그런 식이다.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절대평가를 하면 현 정권은 합격이 아니지만 정치는 상대평가다.
그래서 현 정권, 청와대, 더민주, 지지자들은 절대 자한당의 숨통을 끊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든 살아날 구석을 뚫어주고 빌미를 마련해준다. 이른바 적대적 공존 구도인 것이다. 20대 여성은 한국 사회의 억압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인구 집단이기에, 이들은 탁현민이 벌이는 온갖 쇼를 보며 혀를 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해한 백색 음모'를 유포하여 여자들을 시집보내자는 소리까지 했던 지난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 세력에는 차마 표를 주지 못한다.
물론 나는 현 정권의 에너지 정책, 경제 정책, 교육 정책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으며, 여성주의의 실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을 여지가 차고 넘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론조사상 20대 여성들의 지지율 높은 걸 '얼빠들'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천박한 여성혐오일 뿐이다. 정치적 지지와 반대는 그런 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갈등이 있고, 그 갈등 가운데 무엇이 지배적인 갈등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20대 여성의 지지를 좌우하는 대단히 큰 갈등은, 한국 사회가 '젊은 여자'들을 너무도 쉽게 손가락질하고 재단하며 평가하려 든다는 사실 그 자체다. 유권자 집단으로서의 20대 여성은 그런 면에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조롱을 일삼던 이들과 한 편에 서는 일은 절대 피하려고 들 것이며, 그것은 어지간한 경제적 유인동기마저도 가볍게 능가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더민주 정권이 경제를 어지간히 말아먹어도, 윤서인이 찍는 정당과 대선후보에 20대 여성들이 투표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통령 지지율은 경기 따라 좌우되지만 정치적 성향은 훨씬 견고하다. 사람이 밥을 굶으면 죽지만, 예수님의 말마따나 빵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에 홍준표가 나온다고 했을 때, 20대 여성들이 홍준표를 찍게 하려면, 홍준표가 문자 그대로 이순신급 업적을 쌓아도 절반 정도 넘어올까 말까라고 볼 수 있다. 왜일까? 20대 여성을 계속 멸시하는 자들(윤서인, 일베, 기타등등)과 같은 후보를 찍는다는 것은, 20대 여성의 입장에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인간의 심리다.
경상도의 자칭 '진보'들은 김영삼이 경제 다 말아먹은 직후에도 전라도 사람 김대중 찍기 싫어서 조순을 지지한다는 둥, 정동영이 후보 되니까 이명박을 찍지 않나 선거날 낚시 가자고 인증샷 놀이 하지 않나, 그러고 있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했던 이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호남혐오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심지어 본인들이 당하는 입장인 20대 여성들이, '김치녀' 운운하며 낄낄대는 이들과 같은 후보에 표를 던지고 인증샷을 올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20대 여성이니까 만만하게 보고 '계도'하려 들지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판단을 복잡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신뢰하는 이 사람이 신뢰하는 저 사람이 신뢰하는 그 사람을 신뢰'한다. 그러니까 경제 정책이나 탁현민이나 뭐나 뭐나 마음에 안 들어도, 통상적인 20대 여성이 윤서인이랑 같은 후보를 찍을 수는 없다. 신뢰의 사슬이 뚝 끊긴다.
20대 여성 입장에서 볼 때, '정부 하는 꼴은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저 새끼 때문에 야당은 못 찍겠다'에서 '저 새끼'에 해당하는 사람이 자한당 내외에 너무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제3의 세력을 지지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정치적 투자를 할 유인동기나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적대적 공존 구도의 견고한 버팀목이 되고 만다. 고령의 남성들이 그런 매커니즘으로 자한당 찍듯이 젊은 여성들도 저런 이유로 더민주의 열렬한 지지층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놀랍게도, 여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