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4

2008 펜타포트 후기

7월 26, 27일 이틀에 걸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약 한 달 넘도록 주말이 되면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와 동행인은 약수역에서 오후 3시 경에 출발하여, 저녁 7시가 넘어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바깥에는 이미 장화와 비옷과 암표를 파는 상인들이 군데군데 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펜타포트 1회 당시 얼마나 공연장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를 이미 들은 터라, 낚시의자와 슬리퍼로 대비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앞섰다.

한철 특수를 노리는 숙박업소에 다소 비싼 값을 주고 짐을 내려놓은 다음, 역시 비싼 가격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후, 공연장에 들어갔다. 물빠짐이 좋지 않고, 주차장에 쓰는 자갈을 뿌려놓긴 했지만 본디 흙바닥인지라, 폭우가 쏟아지고 난 후의 모습은 갯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메인 공연이 열리는 큰 무대까지 가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펜타포트에는 '좌석' 따위가 없다. 기본적으로 스탠딩 공연인지라, 서서 볼 사람들은 계속 서서 보고, 앉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뭐라도 깔고 앉거나 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내 동행인은 공연 시작 이틀 전 대형 낚시의자를 주문했고, 덕분에 우리는 엉덩이를 적시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Next Stage 자우림'이라는 전광판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언제적 자우림인데 아직도 이런 큰 무대에 불러준단 말인지, 한국 음악계의 세대 교체, 혹은 중견 밴드들의 자기 혁신이 이렇게 모자란 것인지, 등등을 고뇌하고 있는 동안 자우림이 무대 세팅을 마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fan이거든요!'(f 발음을 강조하며)라고 외친 후 '팬이야'를 불렀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관중들에게 소리를 질러달라고 한 후 오른손을 두 바퀴 돌려서 귀에 대고 왼손을 옆구리에 갖다붙일 때, 나는 내가 왜 김윤아를 싫어하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분명 김윤아는 재능 있고 비주얼도 어느 정도 갖춘 드문 여가수이지만, 예쁜척하느라 인생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

자우림의 나머지 세 명에 대해서도 그날 대대적인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리더,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안녕하세요, 퍼킹 자우림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신곡 소개한다고 자꾸 모르는 노래만 하죠, 씨팔 존나 재미없게'라고 쿨한 척 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고등학교 밴드부가 여고 가서 할 때나 써먹을법한 멘트를, 내가 왜 이 진창 속에서 인천 송도까지 와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앵콜로 '헤이 헤이 헤이'와 '일탈'을 부르는 것도 나름 안습이라면 안습이다. 자우림의 전성기는 자우림 1집, 이 잔인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소녀 감수성은 제발 좀 버려라.

트래비스가 나올 때까지 나와 동행인은 정신을 놓고 있었다. 원거리 여행의 피로와, 그 엄청난 습기, 더위, 벌레는 별로 없었지만 저 멀리 화장실에서 느껴지는 향기, 등등을 전부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트래비스만이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세 번째 노래 'Writing to Reach You'가 나올때부터 관객들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트래비스 특유의 기타 사운드가 갖는 서정성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라이브 무대에서, CD를 들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락킹(Rocking)했다.

흔히들 '떼창'이라 부르는 노래 따라부르기 속에 내 목소리도 한 줄기 들어간다는 사실이 이토록 뿌듯할 수가 없었다. 'Closer'를 부를 때가 절정이었고, 앵콜곡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가 나올 때 나와 친구와 모든 관객들은 모든 것을 잊고 깡총거리며 하나가 되어 있었다. 트래비스 공연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당시 현황을 담은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래본다.


Closer, Travis, at Pentaport 2008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Travis, at Pentaport 2008


숙소에서 나와 친구는 다음날 메인 무대를 장식할 언더월드의 노래 몇 개, 카사비안의 곡 몇 개를 예습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2박 3일 공연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절반을 포기한 만큼, 마지막 날은 최선을 다해서 축제에 참여해야 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작정하고 나와 점심을 비싸고 맛있게 먹은 다음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밤새 비가 더 오지 않았고,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어 땅이 적당히 굳어가고 있던 차였다.



송도의 꽃게탕



낚시의자에 앉아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임


순서도에 따라 여러 밴드가 무대를 장식했는데, 그 중 '오브라더스'가 인상적이었다. 그 밴드의 본명은 '오르가즘 브라더스'지만, 대외적으로 볼 때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오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다. 물론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는 자신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본명을 쓰는 그들은, 이름에 걸맞게 대놓고 엉큼하고 음탕한 가사의 로큰롤을 딱 50년대 필로 풀어내고 있었다.

무대 인사를 하는 방식도 눈여겨볼만 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입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는 로큰롤 밴드입니다'가 첫 인사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좆"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를 부르기 전이었나 부른 다음이었나, 관중들을 바라보며 '로큰롤 별거 없습니다, 그저 좆!'이라는 맨트를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선서하는 듯한 말투로 내뱉었다. 관객석은 쏟아지는 햇볕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하드 파이가 나왔는데, 그냥 내 감상으로는 명성에 비해 좀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오브라더스의 해괴망측한 흥겨움을 지워버리기에는 약했다는 뜻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일 수도 있으니, 이건 그냥 취향 문제일 듯하다. 다음 스테이지는 델리 스파이스. 아주 오래간만에 무대에 섰던 델리 스파이스는 녹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고백'을 오래간만에 그것도 라이브로 들으니 정말 짠한 기분이 들었고, 앵콜송 '차우차우'도 부르고 다 좋았는데, 갑자기 기타를 부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거니와 잘 부수지도 못해 몇 번씩 땅바닥에 내리치는 모습은 보기 딱할 지경이었다.

이제 해가 많이 기울어 땅거미가 기웃기웃해지는 시간. 아직 무대 위로 떠있는 태양이 눈부시긴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면 카사비안이 나온다. 카사비안이 나왔다. 이건 정말이지, 맥주 마시면서 축구 보다가 주먹질하는 청년들을 위한 락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무대 실황을 편집한 영상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이 영상을 보면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위의 것을 먼저 보고 아래 영상을 보면 충분히 상상이 간다.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T in the Park 2007



LSF, Kasabina, at T in the Park 2007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Pentaport 2008



문제는 이들이 공연하는 가운데 사운드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 보컬과 드러머가 몇 번씩 제스춰를 취했는데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드러머가 스틱을 뒤로 던져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행히도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 복귀하여 앵콜 송을 불렀지만, 다소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든 것이 사실이다.

최종적인 무대는 이례적으로 테크노 그룹인 언더월드의 것이었는데, 정말이지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신선한 자극이 되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들은 음악을 하면서 동시에 비디오아트를 선사하고, 심지어는 설치미술까지 동원하는 그런 총체적 예술의 한 형태를 제시했다. 눈과 귀와 몸이 이토록 동시에 즐겁고 짜릿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공연 중간에 무대에 설치한 초대형 형광봉. 치킨집 개업할 때 쓰는 대형 비닐 풍선 속에 전구를 설치하여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중간에 모양도 한 번 바꿔가며 완벽한 무대를 연출해냈다.


숙박업체에 바가지 요금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택시를 콜로 불러서 타고 장거리를 뛰는 편이 더 싸다는 판단에 다다른 우리는, 미리 계획했던대로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먼 길에 올랐다.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분출할 수 있었던 이틀이었지만, 그것이 방금 끝났다는 사실은 더욱 강하게 그와 나를 엄습해왔다. 온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는 아직도 강렬한 사운드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웅웅거렸다.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어젯밤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40여명이 연행되었고 경찰은 더욱 매몰차게 시위대를 몰아붙이고 있으며, 선거전은 '근소한 우세' 속에 일부 신문 매체의 집중 포화 속에 힘겹게 치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진짜 축제의 장에서, 민주주의가 어쩌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 아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던, 대책회의가 주관하던 어설픈 '축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더욱 미친듯이 뛰고 소리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축제는 어디까지나 축제일 뿐이며, 현실은 엄연히 우리가 떠나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검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때는 교육감 선거에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고, 체포전담조가 구성되어 투입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다음주 토요일인 8월 2일, 비옷을 뚫을 듯 쏟아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나는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라고 함부로 떠들던 그런 이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진짜 축제가 뭔지도 모르고, 진짜 축제에서는 놀 줄도 모르는 주제에, 집회의 힘을 소진시키기만 했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내가 청계천의 구멍가게에서 노란 비옷을 사서 입고 있는 동안, 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또한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그래 씨발, 놀 때 놀고 할 때 해야지 뭐.

2008 펜타포트 후기

7월 26, 27일 이틀에 걸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약 한 달 넘도록 주말이 되면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와 동행인은 약수역에서 오후 3시 경에 출발하여, 저녁 7시가 넘어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바깥에는 이미 장화와 비옷과 암표를 파는 상인들이 군데군데 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펜타포트 1회 당시 얼마나 공연장 상황이 좋지 않았는지를 이미 들은 터라, 낚시의자와 슬리퍼로 대비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앞섰다.

한철 특수를 노리는 숙박업소에 다소 비싼 값을 주고 짐을 내려놓은 다음, 역시 비싼 가격으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한 후, 공연장에 들어갔다. 물빠짐이 좋지 않고, 주차장에 쓰는 자갈을 뿌려놓긴 했지만 본디 흙바닥인지라, 폭우가 쏟아지고 난 후의 모습은 갯뻘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메인 공연이 열리는 큰 무대까지 가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펜타포트에는 '좌석' 따위가 없다. 기본적으로 스탠딩 공연인지라, 서서 볼 사람들은 계속 서서 보고, 앉고 싶은 사람은 알아서 뭐라도 깔고 앉거나 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내 동행인은 공연 시작 이틀 전 대형 낚시의자를 주문했고, 덕분에 우리는 엉덩이를 적시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Next Stage 자우림'이라는 전광판 문구를 보는 순간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언제적 자우림인데 아직도 이런 큰 무대에 불러준단 말인지, 한국 음악계의 세대 교체, 혹은 중견 밴드들의 자기 혁신이 이렇게 모자란 것인지, 등등을 고뇌하고 있는 동안 자우림이 무대 세팅을 마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fan이거든요!'(f 발음을 강조하며)라고 외친 후 팬이야를 불렀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관중들에게 소리를 질러달라고 한 후 오른손을 두 바퀴 돌려서 귀에 대고 왼손을 옆구리에 갖다붙일 때, 나는 내가 왜 김윤아를 싫어하는지 새삼스래 깨닫게 되었다. 분명 김윤아는 재능 있고 비주얼도 어느 정도 갖춘 드문 여가수이지만, 예쁜척하느라 인생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

자우림의 나머지 세 명에 대해서도 그날 대대적인 평가절하가 이루어졌다. 리더,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안녕하세요, 퍼킹 자우림입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신곡 소개한다고 자꾸 모르는 노래만 하죠, 씨팔 존나 재미없게'라고 쿨한 척 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고등학교 밴드부가 여고 가서 할 때나 써먹을법한 멘트를, 내가 왜 이 진창 속에서 인천 송도까지 와서 듣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앵콜로 헤이 헤이 헤이와 일탈을 부르는 것도 나름 안습이라면 안습이다. 자우림의 전성기는 자우림 1집, 이 잔인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소녀 감수성은 제발 좀 버려라.

트래비스가 나올 때까지 나와 동행인은 정신을 놓고 있었다. 원거리 여행의 피로와, 그 엄청난 습기, 더위, 벌레는 별로 없었지만 저 멀리 화장실에서 느껴지는 향기, 등등을 전부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트래비스만이 희망이었고, 그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다.

세 번째 노래 Writing to Reach You가 나올때부터 관객들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트래비스 특유의 기타 사운드가 갖는 서정성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라이브 무대에서, CD를 들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락킹(Rocking)했다.

흔히들 '떼창'이라 부르는 노래 따라부르기 속에 내 목소리도 한 줄기 들어간다는 사실이 이토록 뿌듯할 수가 없었다. Closer를 부를 때가 절정이었고, 앵콜곡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가 나올 때 나와 친구와 모든 관객들은 모든 것을 잊고 깡총거리며 하나가 되어 있었다. 트래비스 공연에 대해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당시 현황을 담은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래본다.


Closer, Travis, at Pentaport 2008



Why Does It Always Rain On Me?, Travis, at Pentaport 2008


숙소에서 나와 친구는 다음날 메인 무대를 장식할 언더월드의 노래 몇 개, 카사비안의 곡 몇 개를 예습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2박 3일 공연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의 절반을 포기한 만큼, 마지막 날은 최선을 다해서 축제에 참여해야 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았다. 작정하고 나와 점심을 비싸고 맛있게 먹은 다음 공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밤새 비가 더 오지 않았고,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어 땅이 적당히 굳어가고 있던 차였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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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도에 따라 여러 밴드가 무대를 장식했는데, 그 중 오브라더스가 인상적이었다. 그 밴드의 본명은 '오르가즘 브라더스'지만, 대외적으로 볼 때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 하에 '오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다. 물론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는 자신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본명을 쓰는 그들은, 이름에 걸맞게 대놓고 엉큼하고 음탕한 가사의 로큰롤을 딱 50년대 필로 풀어내고 있었다.

무대 인사를 하는 방식도 눈여겨볼만 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입니다. 오르가즘 브라더스는 로큰롤 밴드입니다'가 첫 인사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갑자기 커져버린 좆" 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래를 부르기 전이었나 부른 다음이었나, 관중들을 바라보며 '로큰롤 별거 없습니다, 그저 좆!'이라는 맨트를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선서하는 듯한 말투로 내뱉었다. 밴드는 시큰둥한 듯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관객석은 쏟아지는 햇볕보다 뜨거웠다.

그리고 하드 파이가 나왔는데, 그냥 내 감상으로는 명성에 비해 좀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오브라더스의 해괴망측한 흥겨움을 지워버리기에는 약했다는 뜻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일 수도 있으니, 이건 그냥 취향 문제일 듯하다. 다음 스테이지는 델리 스파이스. 아주 오래간만에 무대에 섰던 델리 스파이스는 녹슬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고백을 오래간만에 그것도 라이브로 들으니 정말 짠한 기분이 들었고, 앵콜송 차우차우도 부르고 다 좋았는데, 갑자기 기타를 부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거니와 잘 부수지도 못해 몇 번씩 땅바닥에 내리치는 모습은 보기 딱할 지경이었다.

이제 해가 많이 기울어 땅거미가 기웃기웃해지는 시간. 아직 무대 위로 떠있는 태양이 눈부시긴 하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면 카사비안이 나온다. 카사비안이 나왔다. 이건 정말이지, 맥주 마시면서 축구 보다가 주먹질하는 청년들을 위한 락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무대 실황을 편집한 영상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이 영상을 보면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위의 것을 먼저 보고 아래 영상을 보면 충분히 상상이 간다.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T in the Park 2007


LSF, Kasabina, at T in the Park 2007


Shoot the Runner, Kasabian, at Pentaport 2008


문제는 이들이 공연하는 가운데 사운드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 보컬과 드러머가 몇 번씩 제스춰를 취했는데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지 않아, 급기야 드러머가 스틱을 뒤로 던져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행히도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 복귀하여 앵콜 송을 불렀지만, 다소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든 것이 사실이다.

최종적인 무대는 이례적으로 테크노 그룹인 언더월드의 것이었는데, 정말이지 짜릿하면서도 동시에 신선한 자극이 되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들은 음악을 하면서 동시에 비디오아트를 선사하고, 심지어는 설치미술까지 동원하는 그런 총체적 예술의 한 형태를 제시했다. 눈과 귀와 몸이 이토록 동시에 즐겁고 짜릿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진]

숙박업체에 바가지 요금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택시를 콜로 불러서 타고 장거리를 뛰는 편이 더 싸다는 판단에 다다른 우리는, 미리 계획했던대로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먼 길에 올랐다.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분출할 수 있었던 이틀이었지만, 그것이 방금 끝났다는 사실은 더욱 강하게 그와 나를 엄습해왔다. 온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는 아직도 강렬한 사운드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 웅웅거렸다.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촛불집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어젯밤부터 우리는 알고 있었다. 40여명이 연행되었고 경찰은 더욱 매몰차게 시위대를 몰아붙이고 있으며, 선거전은 '근소한 우세' 속에 일부 신문 매체의 집중 포화 속에 힘겹게 치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진짜 축제의 장에서, 민주주의가 어쩌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다 아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던, 대책회의가 주관하던 어설픈 '축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더욱 미친듯이 뛰고 소리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축제는 어디까지나 축제일 뿐이며, 현실은 엄연히 우리가 떠나기 전의 그 모습 그대로 검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때는 교육감 선거에 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고, 체포전담조가 구성되어 투입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다음주 토요일인 8월 2일, 비옷을 뚫을 듯 쏟아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나는 '집회를 축제의 장으로' 라고 함부로 떠들던 그런 주둥이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진짜 축제가 뭔지도 모르고, 진짜 축제에서는 놀 줄도 모르는 주제에, 집회의 힘을 소진시키기만 했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화가 났다. 내가 청계천의 구멍가게에서 노란 비옷을 사서 입고 있는 동안, 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또한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그래 씨발, 놀 때 놀고 할 때 해야지 뭐.

2008-07-29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을 보고 왔다. 열두 글자나 되는 이 긴 제목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만주에서 찍은 디워'. 정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놈놈놈'은 그저 '만주 디워'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좀 덜 노골적으로 한국 자본가들과 그 워너비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디워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이 영화의 문제를 쉽사리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놈놈놈'을 보며 우석훈의 최근 저서인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는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을 읽어서 그런 건 아니고, 다만 그 제목이 풍기는 인상이 바로 이 영화를 설명하는 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우석훈의 책은 나중에 읽어볼 계획이다). 김지운을 포함한 이 영화의 제작진은 평야, 대륙에 대한 감각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국제 감각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륙은 곧 자원이며, 우리가 수탈해야 할 무언가라고 보는 19세기 제국주의적인 구태는 물론이거니와, 무국적 공간으로 가정된 만주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일제시대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와 그것을 은폐하는 한국인들의 정신 구조까지 드러나버리고 만다.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놈놈놈'은 그저 문제작일 뿐이다.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이따위 영화를 찍는 현재 한국인들을 놓고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이라는 영화를 확 찍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냥 리뷰를 쓰도록 하자. 이미 논조를 보면 알겠지만 이 글은 '놈놈놈'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니 그 영화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읽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의 진행 내용을 짚어가며 논지를 펼 것이므로, 백지 상태에서 '놈놈놈'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이 글을 피할 것을 권한다. 최근에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를 보았지만, 그것과 이 작품을 대조하는 것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가혹한 일이므로 그렇게 하지도 않겠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일단 기술적인 차원에서, 액션씬의 문제를 먼저 짚고 들어가보자. 만주 평야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추적씬은, 이 영화의 제작진이 정글 밖으로 나온 피그미족같은 그런 인식론적 틀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장총으로 무장한 이들이 평야에서 만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먼저 총을 쏘고, 조준이 맞다면 상대방은 죽는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그 유명한 장면, 지평선 너머로 오마 샤리프가 등장하는 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사막이나 평원이라고 해서 꼭 그렇게 싸워야만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건 서부 개척시대 뿐 아니라 징기즈칸이 말을 타고 유럽을 침략하던 시대부터 이미 보편화된 전투 공식이다. 탁 트인 평원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쏴서 명중시키는 자가 승리한다. 따라서 들키지 않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첫번째 조건이며, 만약 발견되었다면 상대방의 위치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놈놈놈'에는 이런 최소한의 리얼리티에 대한 고려가 없다.

지도 사본은 단 한 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만주군 일본제국군 화적 집단 등이 동시에 한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고 치자. 그래서 만나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치자. 그런데 일본군이 기마 소총부대의 한복판을 가로질러가며 장총으로 아군을 마구 쏘아 죽이는 정우성 같은 놈을 그냥 보고 있을까? 마치 움직이는 과녁처럼, 정우성의 장총 돌리기만을 위해 멍하니 달려가던 일본군의 모습.

장거리 총격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두홍 무술감독팀이 짜넣은 액쎤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우성은 아예 대놓고 일본군 부대 속으로 뛰어들어서 장총을 돌려가며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린다. 이건 '주차장 액션 씬'의 재탕일 뿐이다. 한국 액션 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적들 한가운데에서 단기필마로 깡패들을 쓰러뜨리는 '사나이'의 모습 말이다. 다만 만주니까 발차기 대신 총을 쏘는 것 뿐이고, 그러니 정두홍이 만드는 액션에서 (특히 〈짝패〉, 기본기도 돌려차기 필살기도 돌려차기, 어째 액션이 돌려차기밖에 없던가?) 돌려차기가 죽도록 나왔던 그 연장선상에서 정우성은 죽어라 장총을 돌려댈 수밖에 없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액션씬의 구성 오류는 단지 실력 문제만은 아니다. '놈놈놈'의 제작진, 더 나아가 이 영화에 돈을 대준 사람들, 혹은 400만명이나 보고 있는 관객들이 '대륙'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따위 액션씬을 찍어놓고도 호쾌하네 어쩌네 대륙적 기상이 느껴지고 운운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만주에서 넓은 땅을 이용해 액션을 찍을 거면, 김지운은 대륙 그 자체를 좀 더 사유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제목에 써놓은 바와 같이 국제촌놈들이기 때문에, 혹은 정글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피그미족들이기 때문에, 탁 트인 평원을 마주치면 어찌할 줄 모르고 주춤거리다가 '결국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라며 깊고 편안하고 아늑한 우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대륙'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자원 빈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인식 체계 속에서 '대륙'은 곧 '자원'일 뿐이라는 것을 '놈놈놈'보다 더 잘 보여주는 텍스트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포일러 경고를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보물지도는 결국 일본인들이 파놓은 유전의 지도인데, 만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발상도 우습거니와 기껏 만주에 가서도 생각하는 것이 유전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피식 나오는 설정이다. 사실 난 초반부에 '시추'라는 단어가 들릴 때부터 이따위 설정을 짐작했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구역질이 났다. '자원 외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자원 외교'등을 통해 외국으로부터 안정된 자원 수급을 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요? 이런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에 '자원 외교'를 요청하는 것이다. 한국에 비교적 풍부한(아니, 풍부했던) 금, 무연탄 등의 자원을 일본에 싼 값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그런 외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국내 주요 일간지가 모두 쿵짝쿵짝 떠드는 가운데 일본인 외교관이 '한국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일본의 기술이 만나...'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거다.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자원 외교'를 논하는 것은, '나 식민주의자요'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후지고 못나고 한심한 짓이다. 그런데 그걸 한국 정부는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게 대체 왜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지운의 '놈놈놈'에서 만주를 '석유'로 치환시키는 것을 본 중국인들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할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서 다소 동떨어진, 송강호가 독립군을 사칭하는 사기꾼의 아편굴에서 아편과 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장면에서 그 가소로운 제국주의의 욕망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거기서 독립군을 사칭하는 사기꾼은 '사실 만주는 조선의 땅이다', '그런데 거기에 보물(즉 석유)가 묻혀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 조선의 것이어야 한다'는 삼단논법을 펼친다. 한국인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또한 연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딱 그 모양 그 꼴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한국인들은 전부 '민족뽕'에 취해 해롱거리는 얼간이들로밖에 안 보인다. 뽕 먹은 논리가 뽕 먹은 장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나마 그 석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영화의 주인공인 세 놈들은 알아보지도 못한다. 여기서 더욱 주목할만한 것은 보물을 찾은 후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장면이다. 몇 년이 지나도 연기 못 하는 정우성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대사 치게 하는 대범한 연출이 불러오는 두통과 현기증은 논외로 하자. 그런데 송강호가 말하는 '소원'이라는 것이 결국 '외국에서 돈 벌어서 국내에 땅 사는 것', 다시 말해 해외 펀드로 대박 쳐서 아파트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지적하고 있지 않은 걸까?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어차피 그 소원의 내용이라는 것이 클리셰에 가까운 것이므로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보물의 실체가 밝혀진 다음 그 소원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그 적나라한 욕망 앞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땅은 사사 뭐하냐는 정우성의 되받아치는 대사도 그렇다. 그러면서 정우성은 말한다. 나라가 없으니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땅을 사서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는 언제 망할지 모르니 돈을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최고다. 바로 이 두 가지 생각이 맞물려, 아파트 값을 올려주기만 하면 한국이 망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서울 아빠'들의 표심을 만들어냈고, 그게 바로 이명박을 당선시킨 주범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그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읊어댄 수많은 작품들, 네셔널리즘을 과장되게 포장하여 설파하던 작품들의 존재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우리가 한국인의 '민족혼'이라 일컫던 '한'의 실체가 고작 이런 것이었을까?

아닌게아니라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을 연출하던 중 《판타스틱》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자신은 당시의 만주를 고증 그대로 찍었으며, 그곳은 실로 코스모폴리탄적인 공간이었다고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판타지를 구성하고자 했다면 그 판타지의 내적 논리가 충실하게 성립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에 등장하는 만주는 역사상 존재했던 그곳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망치를 들고 휘두르던 마동석.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에서 만주를 해방구로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그곳이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냐 하는 것이다. 기존 한국 문화계를 짓눌러온, 일제시대에 대한 과도한 네셔널리즘적 반발에 대항하여, 최근에는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포함하여 몇몇 영상 매체에서 '화려하고 재미있는 일제시대'라는 하나의 표상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작품들은, 기존에 그려내지 못한 '일제 시대'라는 무언가를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도리어 한국의 창작자들은 그 시점에서 만주로 나아가, 아니 도망가, 과도한 네셔널리즘의 반대급부로 과도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통해 초라하게 드러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을 배태한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성향은 이 작품이 매끈한 판타지가 될 수 있도록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송강호가 빨려들어간 만주의 아편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그곳에서 송강호는, 놀랍게도, 그 코스모폴리탄적인 만주에서 참으로 놀랍게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세 명의 어린이들을 구출해내 '조선인촌'에 숨겨두고 나온다. 무국적 공간으로 만주를 제시하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민족'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순수한 어린이'의 탈을 쓰고 귀환하는 것이다. 무국적 공간인 만주에, 우리 민족이 있단다.

이 모든 병리적 현상은 결국, '일제시대'를 직시하고 싶지 않은 한국인들의 무의식이 빚어내는 현상이다. 해방 이후 수십년 동안 '사악한 일제'에 맞선 '숭고한 민족'을 제시하다가, 그게 서서히 먹히지 않는 시점이 되자 '일제시대에도 실은 연애도 했다'고 눙치다가, 그건 그림이 잘 안 나오고, 로맨스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리얼리티를 확보하다보면 결국 일제시대를 직시할 수밖에 없으므로, 무국적 퓨전 공간인 만주로 도망간다. 만주에서는 모든 이가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질주하는 무국적 신자유주의 코스모폴리탄 공간이라고 우겨보다가, 아편굴에서 해롱거리는데 그 지하실에는 '조선인' 어린이가 순수한 표정으로 갇혀 있다. 한국인들은, 혹은 한국인들이 만드는 문화적 컨텐츠는, 절대 일제시대를 그 자체로 직시하려 들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을 타고 시선을 돌리며, 끝까지 '순수한 민족'의 맹아를 남겨두고야 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모든 균열은 한국의 자본가들과 그 워너비들의 욕망을 드러내준다. 대륙이 뭔지도 모르고, 국제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면서, 그저 대륙으로 질주해서 석유를 퍼오고 금을 캐오고 수익률 200%를 먹은 다음 다음 국내에서 떵떵거리는 꿈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자'의 모습을 구성하는 일에 우리는 너무도 촌스럽다. 외국인들도 모두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떠는 '유사 한민족'으로 묘사하거나, 그도 아니면 바로 '놈놈놈'처럼 짐짓 코스모폴리탄인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백의민족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박수를 치거나. (알겠지만, 그런 장면도 나온다. 그건 '쿨'한 척하는 김지운 감독의 이중 기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관객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장면을 구상하고 넣음으로써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그런 이중 기만 말이다.)

내가 여기서 비판의 대상을 '자본가'와 그 워너비들로 한정지은 이유는, 이 문제와 맞서기 위해 리얼리즘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말을 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앞서 레오네 영화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잠깐 반칙을 저질러보자. 〈황야의 무법자〉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덤덤함, 〈옛날옛적 서부에서〉에 치열하게 묘사되는 서부 개척시대의 난맥상, 뭐 그런 것들. '좌파'라는 말은 '우울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여서는 안 된다. 우파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둥그렇게 원을 그린 다음 그 밖으로 삐져나가는 이들을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좌파적인 리얼리즘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을 찍고 보고 즐기는 한국인들은, 타자의 시선으로 볼 때 그저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일 뿐이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떼어 먹는 놈, 공항에서 내린지 10분도 안 된 외국인에게 ENG 카메라 들이밀며 한국 좋냐고 물어보는 놈, 그걸 또 TV로 보고 있는 놈, 그 놈 욕하는 놈, 외국 나가서 '자원 외교' 한다는 말 듣고 좋아하는 놈, 알프스 산 올라가서 기껏 신라면 큰사발 먹고 내려온 게 자랑이라고 떠벌이는 놈, 놈, 놈, 놈... 하, 징그러운 놈들.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2008-07-24

이건희와 송두율

최근 두 건의 중요한 재판이 있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것과, 송두율 교수에 대한 것. 두 판결 모두 집행유예로 마무리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자는 면죄부를 주기 위한 무죄 판결로, 후자는 국가보안법에 의한 유죄 판결로 보인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집행유예의 문제가 아니라 구속수사와 불구속수사의 문제이다.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건희 회장을 구속수사하지 않았다. 반면 증거를 인멸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송두율 교수를 구속수사했다. 한국인들은 그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느냐 무죄 판결을 받았느냐로 그의 유죄와 무죄를 판가름하지 않는다. 순사에게 붙들려서 철창에 갇힌 후 콩밥을 먹었느냐 안 먹었느냐, 오직 그것만이 관건인 것이다.

똑같이 집행유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건희를 무죄로 보게 만든 검찰의 마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광우병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조계사에 숨어 농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손에 넘어가 '구속'되는 순간 대중들은 그를 죄인 취급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헌법 제1조를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의 형사소송법이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천명하고 있지 않고, 동시에 국민들의 법감정 또한 '나쁜놈은 잡아넣어야지'에서 나아지고 있지 않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이건희와 송두율은 모두 유죄다. 하지만 그 결과에 수긍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있다. 그들을 무죄로 만든 것도, 또한 유죄로 만든 것도, 국민들의 법감정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검찰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8-07-23

이것 저것

1. 어젯밤 읽은 이코노미스트의 사설 "Twin Twisters". 진정한 시장주의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프레디맥 패니맥에 공적자금을 퍼부어서 부도를 막는 것은 납세자들에게 고통을 전가시키는 것이므로, 아예 화끈하게 국유화를 해버린 다음 그걸 되팔아서 비싼 값에 팔고, 정상화된 시장 기능에 그 회사들을 다시 맡겨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화끈하다, 화끈해.

'시장주의'라는 말을 할거면 이정도 강단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그 어떤 정책적인 수단도 가리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없다면, 책이 나오기 고작 사흘 전에 사건이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준의 글을 후다닥 써서 표지에 박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반면 한국의 '시장주의'는... 에휴.


2. 독도 문제 등에서 잃어버린 점수를 되찾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멕시코 피랍사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다지 현명한 방침이 아닌 것 같다. 금전을 노린 단순 납치사건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대응하면, 납치범들 사이에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동시에 긴장이 고조된다. 만에 하나 정치적인 이유로 이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더더욱 정부는 이토록 이른 시점부터 공개적으로 나서지 말아야 한다. 높은 사람들의 '액션'은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이지 못한 효과를 낳는다.


3. 아주 오래간만에 알라딘 서재에 서평을 올렸다. 《갖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 인생을 위하여》(이충걸, 위즈덤하우스 2008)이다. '독서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오래간만에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전문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쉽게 훌훌 읽어넘길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에 실린 글 하나 하나를 읽는 것은 마치 잡지 한 권을 읽는 것과도 같은 감각적 포화 상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것을 '이충걸식 글쓰기'라는 편리한 단어 하나에 우겨넣어버린 후 치워버리지만, 이것은 실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소비의 현란함을 논하는 글쓰기에서, 저자처럼 온갖 명사를 끌어내어, 그들에게 가장 알맞은 형용사를 입혀놓은 후, 그 모든 언어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걷게 할 수 있으니, 독자로는 더 바랄 게 없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잡지식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을 구성하는 방식의 글쓰기이다. 저자는 '잡지에 싣기 좋은 글'을 쓰지 않는다. 대신 그 자체가 잡지가 되어버리는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4. 다크 나이트 보고 온 사람들이 난리다. 부러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