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6

노동가치론의 가장 약한 고리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을 통해 어떤 철학적 영감을 얻는 일이 옳거나 그르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당한 철학적 논변이라면 마땅히 합당한 이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혹은 동양철학의 4원소론은 현대 물리학의 원자론보다 어떤 면에서 더욱 아름답고 시적인 함의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으며 철학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기반하고 있는 물리학적 지식이 옳지 않기 때문에 합당한 철학적 논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에 기반하여 논지를 펼치고 있는 현대 철학자들은 일종의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그 논변이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 자신의 철학이 현실과는 큰 연관을 맺지 않는 지적 유희임을 실토하거나, 이미 명백하게 틀린 것으로 판명된 노동가치론을 끝까지 옳다고 우기거나.

장차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지난 노트를 계속 뒤적이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나와서 그것을 다시 정리하여 블로그에 공개한다. 당시에는 책의 서지사항을 정확히 밝혀놓는 법을 익히지도 않았는데, 추정컨대 모든 출처는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김수행 번역 [자본론 1上]일 것이다. 2003년 5월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해 6월부터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상품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가 자기의 상품가치에 가격이라는 형태, 곧 상상적인 금 형태를 부여하더라도 아직은 자신의 상품을 금으로 전환시킨 것은 결코 아니며, 또 그가 몇백만원어치의 상품가치를 금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도 현실적인 금은 한 조각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화폐는 가치척도의 기능에 있어서는 단지 상상적인, 곧 관념적인 화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엉터리 화폐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단지 상상적일 뿐인 화폐가 가치척도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지라도 가격은 전적으로 실제의 화폐재료에 달려있다."[p.120]

여기서 말하는 '실제의 화폐재료'란 다름아닌 금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던 당시 세계 경제는 금태환제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노동가치론에 따르면 모든 상품의 가치는 그것에 투여된 노동에 비례하므로, "실제의 화폐재료"는 그 어떤 경우에도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며 그것은 그 화폐와 교환되는 상품의 가치와 동일하거나 어느 정도 상응하는 노동력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마르크스는 말한다. "금이 가치척도로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금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이며 따라서 가치가 잠재적으로 가변적이기 때문이다."[페이지 미상]

불환화폐, 즉 금이나 은으로 교환해주지 않고 전적으로 정부의 신용에 의지하여 발행되고 있는 현재의 화폐 체계 하에서,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급격하게 발 디딜 곳을 잃어버린다. 상품들 사이의 가치척도로 기능하는 화폐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그 자체가 노동생산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화폐를 찍어내는 기능을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종이에 그림을 찍어내는 과정과는 다르다. 만원짜리 지폐를 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조폐공사 직원들의 노동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의 지불보증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폐공사 직원들의 노동력만큼은 하루에 수십억원 어치의 가치를 지니게 되노라고 우겨야만 한다. 혹은 "만약 12원으로 표현되는 금광을 생산하는데 24노동시간, 즉 2노동일이 걸린다면, 이 면사에는 2노동일이 대상회되어있는 셈이 된다. [p.239]"는 구체적인 예시를 포기하거나.


노동가치론이 화폐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벌이는 이러한 이론적 곡예는, 철학적으로 볼 때, 물질과 관념을 일대일로 대응시켜야만 한다는 이분법적 집착의 산물이다. 마르크스는 구체적인 노동이 투여되지 않은 채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그 무언가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상품의 가격으로 지급되는 화폐를 볼 때마다 그 뒤에 감추어져 있는 금광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읽어내야만 했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신용카드빚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은 직감적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유효한 '경제학자'는 아닐지라도 한 사람의 '저자'로서만큼은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을 뿐이다.

댓글 16개:

  1. 이 글은 화폐 체계에서는 화폐가 불태환이고, 정부의 신용에 의지해서 발행되고 있기 때문에 금=화폐=노동생산물이었을 때 성립될 수 있었던 노동가치론이 설득력을 잃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금본위제 시대에도 실제 거래는 금에 연동된 파운드화로 이뤄졌고, 화폐 가치의 보증은 금을 소유한 영란은행, 곧 영국의 신용에 의해 이뤄진 것이니까 미국의 신용과 직결되는 달러를 중심 화폐로 하는 현재의 화폐 체계하고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은데.. 과거의 고정환율제와 현재의 변동환율제의 차이 때문에 차이가 생기는건가요? 경제에 대해 무식해서 잘 이해가 안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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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영란은행의 신용은 영국에 대한 신용이 아니었습니다. 영란은행의 지하에 쌓여있는 금괴의 가치에 대한 신뢰였죠. 지금도 (미국)연방은행 등에서 지하 창고에 금괴를 엄청나게 쌓아두고 있기는 합니다만, 달러를 들고 간다고 해서 그걸 꺼내서 주거나 하지는 않아요. 거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금으로 태환될 가능성을 보유한 화폐가 가치척도로 사용되는 모습을 발견한 마르크스는 금이 사용가치를 잃어버리고 다만 교환가치만을 간직하고 있다고 기술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에서 인용되는 바에 따르면, "황금이 상품의 질서를 장악하는 일반적 등가물(화폐)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용가치를 버려야 했다. 스스로 상품의 자격을 부정하는 조건에서만 황금은 상품 일반의 척도로서, 등가적 교환의 질서를 정초하는 형이상학적 실체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19p]는 거죠.

    하지만, 금태환제를 폐지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발생했던 수많은 우려와는 달리, 화폐의 '화폐성'은 포기되어버린 사용가치에도 잠재되어있는 교환가치에도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저 사회적 신용의 한 표현일 뿐이었죠. '황금이 사용가치를 포기함으로써 화폐로서의 신성을 획득하였다'는 마르크스의 해석, 혹은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철학자들의 자본주의 해석이 타당하지 않은 지점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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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른 가치설은 어떤가요. 제가 대충 들은 건 한계효용설밖에 없는데(이게 수요만 설명하는건지 가격까지인지도 잘 모름) 이건 노동가치설보다 나을까요?

    노동가치설에서 노동은 어디까지를 말하는건가요. 책마다 다를까요. 토지 노동 자본 경영이라고 구분하지만 토지 자본은 과거노동결과, 경영도 노동 그래서 모두 노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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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통고품격서비스2007년 9월 28일 오전 1:08

    냐~올만.
    금태환제를 사실상 대체했다고 평가되는 원유-달러 태환제에 대한 언급이 없네열. 현재의 갱재는 각국 통화는 달러로 보증되고 달러는 원유로 지급 보증되는 구조인데열. 이런 구조는 맑스적으로 어뜨한 거실까열. (저두 몰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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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익명/ 가치론은 경제학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거든요. 노동에서 가치가 발생하건, 자본에서 가치가 발생하건, 그 자체만으로 이론적 차이가 생기지는 않아요. 고등학교 경제교과서 수준에서는 그냥 '토지 노동 자본 기술 등에서 가치가 발생한다'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엄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정통고품격서비스/ 오랜만. 원유-달러 태환제라는 것은 일종의 수사학적 표현이죠. 달러가 원유로 지급 보증되고 있지 않아요. 현실을 볼 때 그렇게 움직이는 것 같아도, 금태환제처럼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거나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현대 경제는 그냥 불환화폐에 기반하여 움직이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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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정통고품격서비스2007년 9월 28일 오후 1:03

    냐..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열.
    대략, 세간에서 리야드-워싱턴 밀약이라고 부르는 것, 내용인즉슨 사우디의 원유결제는 모두 달러로 한다는 것. 이것이 지급보증의 역할은 한다고들 하지열. 사우디가 하고 나서 OPEC의 모든 나라가 원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게 되었고, 사실 지금같은 끝없는 달러 약세 수렁에서 산유국들은 금이나 유로화 결제를 선호하게 되지만, 누구도 나서서 그렇게 하지 못하지요. 원유의 유로화 결제를 선언했던 후세인이 즉시 미사일맞고 목이 잘린 지금에는 푸틴 정도만이 유로화 결제를 고려하겠다 정도만 말할 뿐이죠.
    경제적으로 원유 달러 태환은 유로화 경제권 따위의 비달러경제권에서 원유 수급을 위해 달러를 환전하도록 하는 역할이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을 지지하는 레버리지의 역할을 합니당. 이게 달러의 가치 평가에 얼마나 기여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원유의 비달러 결제는 미국 패권이 해체되었다는 마침표역할이 되지 않을까 갠적으로 생각합니당.
    불태환화폐이긴 한데, 정의 그대로의 선언 화폐는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원유의 교환 가능성을 달러로 한정했다는 세계 정세 때문이예요. 선언화폐라면 사회적 신용 자체여야 할텐데, 달러의 사회적 신용은 사우디와의 협약을 지렛대로 사용하는 것이라서... 사실상 선언화폐로서 위기에 처해있는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여전히 동작한다는 것은 세계가 불태환시대로 이행했다고 말하기에 조낸 찝찝하다는... 아나...잘 모르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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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정통고품격서비스2007년 9월 28일 오후 1:06

    그런고로, 원유-달러 태환제는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대신, 더 강력한 정치 동맹과 핵미사일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고 생각이 되네열. 아마 석유 재벌 일족인 빈 라덴이 살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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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원유와 달러 사이의 공고한 결합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걸 '원유-달러 태환제'라고 규정할 수는 없어요.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성격을 지켜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강력하고 튼튼한 국내시장과 생산 소비력입니다.

    워싱턴-리야드 밀약으로 인한 체계가 이후로도 공고히 지속된다 한들, 그것을 '제도'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어불성설입니다. 국가가 행하는 정책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을 제도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금태환제를 포함한 통화 제도들은 전부 시장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서 고심 끝에 채택한 방안들이죠. 반면 현재 석유를 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는 것은,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는 비시장적 거래규칙에 불과합니다. 그것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속성 자체가 제도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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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가장 약한 고리라...맑스는 이런 말도 했었죠 아마. 나폴레옹 전쟁등으로 인해 금태환이 일시적으로 정지되자 전쟁의 진행을 보고하는 것보다 더 많은 화폐이론이 생겨났다고.

    비상시에 태환이 중지되고 그것이 국가의 신용에 의해 유지되는 것을 모르는 경제학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제도'에 입각해 화폐법정설을 주장하게 되는 경우 지니게 되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습니다. 화폐라는 건 경제학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예를 들어 케인즈)

    닉슨의 금태환 포기 선언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계신 것 같군요. 파운드를 지탱했던 금의 신뢰와 달러의 금태환 포기는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 게 아니라 같은 경제학적 현상이라고 해야 오히려 맞습니다. 왜 금태환이 정지됐습니까?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죠.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죠. 달러의 기축통화화는 금의 유출을 막은 결과이지 그 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건지.

    마르크스가 '경제학자로써는 유효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달러-오일에 대해서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군요. 이거, 심하게 말해 너무 조악한 화폐법정주의자의 궤변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정말 경제학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불환화폐가 제도이므로 만사 오케이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제도를 뛰어넘어 경제적으로도 안착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죠. 모르긴 해도, 성공하시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일 듯.

    결국 님의 말씀은 오늘날 국가들은 마르크스적이지 않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틀렸다라는 해괴한 논리 구조가 된다는 것. 이것은 상당히 무비판적인 태도이고, 그 무비판성속에서 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성격을 지켜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의 강력하고 튼튼한 국내시장과 생산 소비력입니다.' 이 얘기는 너무 길어지니까 생략.

    또한 마르크스의 화폐론이 폐기돼야 하는 우화적인 예로 조폐공사 노동자들의 노동이 하루에 수십억원을 가치를 지니게 되는 모순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논리는 마르크스의 시대에 돌아가서 지폐화폐를 들이대며 똑같이 말할 수 있는, 그러나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성격의 이상한 비판에 불과합니다. 마르크스가 금을 대신해 유통되는 지폐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일반적 등가물도 상품이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물론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긴 합니다.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도구로는 유용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마르크스의 화폐론, 나아가 노동가치론이 '결정적인 오류다'라고 말하는 근거로써는 아닙니다. 이를 테면 불환화폐가 금에 대한 경제적인 태환성, 실질적인 태환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등의 질문만 던져봐도 마르크스는 여전히 유의미하니까요. 오히려 화폐법정설의 입장에서는 화폐의 구매력 (시장에서의 금의 가격을 포함한), 인플레이션 같은 질문에 대해 기껏 화폐수량설 정도밖에 못내놓겠죠.

    '제도'가 곧 경제인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리고, 신용카드 빚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일수록 마르크스 얘기가 맞다고 직감적으로 느낄 걸요. 문제는 저임금이다라고 얘기해주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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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현재 운영되는 제도 하에서는 '비상시에' 태환이 중지되는 것이 아니라, '화폐를 들고 가면 금으로 바꾸어준다'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불환화폐의 개념적 정의입니다.

    닉슨이 금태환제를 폐기하게 된 경제적인 이유는 금괴의 유출이 아니라, 그보다는 경제규모 성장에 화폐 발권량을 맞추기 어려웠다는 실질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편이 보편적인 입장에 더욱 부합합니다. 달러는 이미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순간 기축통화가 되어 있었고, 경제체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오직 달러만을 금으로 바꾸어주는 브레튼 우즈 체계를 운영하고 있었고요. 님의 이해가 잘못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서부터입니다.

    다른 국가에서는 전쟁 후의 경제성장에 발맞추기 위해 적절히 화폐를 추가 발행할 수 있지만, 금태환제를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죠. 게다가 당시에는 고정환율제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금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령 독일과 미국을 예로 놓고, 마르크와 달러의 환율도 1:1이라고 해봅시다. 그리고 1달러는 1킬로그램의 금과 교환되는 거죠. 1마르크는 1달러이며 또한 1킬로그램의 금입니다. 각 국가에서 운용되는 총 화폐의 양을 편의상 100달러와 100마르크라고 가정합니다.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금과 대응되어야 하기 때문에, 금 생산량이 100밖에 늘지 않은 고로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달러는 총 200달러이며 연방은행의 금고에도 200킬로그램의 금이 있습니다. 한편 라인강의 기적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하며, 그에 맞추어 적절하게 화폐를 발행한 독일의 총통화량은 400마르크라고 쳐봅시다. 이러면 독일인들은, 앞서도 말했듯이 고정환율제가 채택되어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작' 200마르크만을 가지고도 200달러를 손에 넣을 수가 있는데, 그것은 200킬로그램의 금을 당장 내놓으라고 할 수 있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박이죠.

    여기서 님의 이해는 잘못된 지점으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금태환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에서 달러를 마구 구입한 후 그것을 금으로 바꾸어내라고 요구한 것은, 금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시장가보다 훨씬 싸게 대량의 금을 구입하여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을 뿐입니다. 마르크스는 금태환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화폐 제도를 보며 '황금이 상품으로서의 면모를 떨쳐버리고 보편자의 위치에 올랐다'고 평했죠. 하지만 브레튼우즈 체계 하에서 투기꾼들은 오직 미국만이 금태환제를 운영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금을 상품의 위치로 다시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니 화폐의 성격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거의 불가능하고, 해낸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탈 수 있다는 님의 말씀은 전적으로 타당합니다. 하지만 그게 대체 왜 마르크스의 원시적인 경제학을 옹호하는데 논거로 활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르크스는 철학의 옳고 그름을 사변이 아닌 실천에서 찾고자 한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그런 그의 철학이 현실 속에서 경제 제도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마르크스가 금을 대신해 유통되는 지폐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더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에 달려 있는 예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는 지폐를 보며 그것이 교환되는 금에 투여된 노동력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이건 그냥 [자본]에 나와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테면 불환화폐가 금에 대한 경제적인 태환성, 실질적인 태환성에 의해 규정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등의 질문만 던져봐도 마르크스는 여전히 유의미"하시다는 말씀도 그런 면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화폐란 금을 구입할 수 있는 종이'라는 뜻이 되는데, 이건 진지한 논의에 앞서 웃음을 불러오는군요. 금모으기 운동을 떠올려보세요. 한국 내의 금값은 일시적으로 폭등했고, 국제적으로는 미약한 하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화의 가격은 어디까지나 외환시장에서 결정되었죠. 아, 조금만 웃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가 지적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임금이 낮고 높고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체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을 탐구하는 것이 마르크스의 과제였죠. 그러니 신용카드 빚에 시달리는 현대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마르크스의 이론에 찬성하라는 법도 없고, 반대로 마르크스가 현대 경제를 해설해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다소 모험적인 일일 뿐입니다. 모험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그러한 성향을 말릴 생각은 물론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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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어우 이게 뭡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진짜 엄청난 무지네요. 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군요.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금과 대응되어야 하기 때문에, 금 생산량이 100밖에 늘지 않은 고로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달러는 총 200달러이며 연방은행의 금고에도 200킬로그램의 금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복구 비용과 베트남 전쟁으로 뿌린 달러가 얼만데 금의 양과 달러의 양을 일치시킵니까. (님의 무지는 '달러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에..미국에서 돌아다니는 달러는' 이라는 표현법에서도 드러납니다. 기축통화는 국제통화의 측면이니까 이때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라고 표현을 해야 맞죠.) "달러과잉"으로 인해 달러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그래서 골드러쉬가 일어나고 닉슨은 어쩔 수 없이 예상된 '제도'를 실행한 게 브레튼우즈 체제 종말의 실제 국면인 겁니다. 달러값 바로 똥값된 이유가 그것 때문이고. 어떻게 이걸 정반대로 알고 있을 수가 있는 건지.

    님이 이런 이상한 얘기를 하는 이유는 어제도 말씀드렸듯, '제도가 곧 경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데 오늘은 여기에 보태 뭐낙 기본적인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혐의까지 보탤 수 밖에 없겠네요. 죄송합니다.) 화폐과잉으로 인해 인플레가 발생하고 금본위가 흔들렸던 건 브레튼우즈 체제 이전에도 서구가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에요. 국제무역관계에서 금 다량 보유국을 중심으로 금태환을 실시했던 것도 마찬가지. 브레튼우즈 체제는 금태환이었는가 아닌가라는 측면보다는 국제환율의 조절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게 경제학적으로는 더 맞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님은 브레튼우즈가 제도적으로는 마지막 금본위-금태환이었다는 이유로 '결정적인 차이'를 주장하는 식이에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차라리 고정환율이냐 변동환율이냐 하는 점인데도 말이죠.

    아 물론 상품화폐 비상품화폐의 측면에서 브레튼우즈 체제 이전과 그 이후를 구분짓는 게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정확하게 인지하기 위해서는 '비상시'에 (님은 아마 웃어버리겠지만, 경제학적으로 비상시라는 건 수십 년간 지속될 수도 있는 겁니다.) 금태환이 중지됐던 역사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 국제통화계의 논의들을 같이 살펴봐야겠죠. 그래야 제도라는 건 경제상의 문제들을 일부적으로 반영한 글자 그대로 제도일 뿐이다 (말이 좀 이상하긴 해도) 라는 것도 알게 되겠죠. 왜 많은 (아마 모든) 경제관계자들이 금태환-고정환율제로의 복귀를 원하는가 하는 것까지.

    마르크스가 어떻고 하는 얘기는 다 생략합시다. 님이 혼자서 가장 약한 고리라 믿는 건 님의 자유니까 제가 말릴 일이 아니겠죠. 다만 님이 반복하고 있는 것만 지적하겠습니다. '그의 철학이 현실 속에서 경제 제도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안 커요. 사회주의 경제 제도들의 평가라는 측면에서는 말하나마나 의미가 있겠지만, 님의 맥락에서는 전혀 안 커요. 어제 말했죠. 결국 님의 말씀은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들은 마르크스적이지 않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틀렸다라는 해괴한 논리 구조가 된다는 것.

    금모으기 운동, 금값 폭락 이거는 저도 웃고 넘어가겠습니다. 가격과 가치는 다른 겁니다. 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겠지만요.

    참고로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굳은 머리들도 1989년인가, 금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졌다고 인정했죠. 일반적 등가물의 상품성에 대해서는 연계적 분석법을 주장하는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도 있고요.

    제가 먼저 댓글 달고 이렇게 말하긴 미안하지만,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불환화폐제도가 안착해 있음을 증명'하는 건 '화폐의 성격을 추가적으로 논의'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눈앞에 다가왔던 노벨상이 달아나버렸네요. 아쉽습니다.

    아 참, 신용카드 빚에 시달리는 현대인. 이거 힌트를 줬는데도 여전히 동어반복을 하는군요. 그런 거 없습니다. 심하게 말해 '제도'적인 망상일 뿐. 모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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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가격과 가치를 굳이 분리하려 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별도의 가치론을 이론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이 점을 자꾸 회피하시니 동일한 경제적 사태를 바라보는 인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과 가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비유하자면 원시 물리학의 에테르와 같은 개념적 허구니까요. 헌대 '가치론'을 포기하면 대체 어디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논할 수 있습니까?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골드러쉬의 결과 금의 투기 현상이 벌어졌죠. 고정환율제와 연동된 금태환제, 그리고 금의 독점적 지위 붕괴가 낳은 결과입니다. 달러가 월남전으로 인해 증발되었다고 해서 그 투기의 구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은 세계의 금은방으로 전락하였고, 태환에 필요한 금을 확보하느라 더 많은 달러를 지불하는 악순환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도가 곧 경제라는, 님이 말씀하시는 저의 도그마와, 가치와 가격이 별도의 것이라는 님의 도그마 중, 그나마 현대 경제학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저의 것이겠죠. 그래서 님의 '힌트'나, '노벨상 기회'등은 접수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경제를 알고 싶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해석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아무튼 나름대로 생산적인 논의였습니다. 저도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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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약간의 인상비평적 댓글이니 이해바랍니다.

    노정태님의 글과 다른분들의 댓글 잘 봤습니다. 그리고, 노정태님의 논의를 해주시는 태도도 열린 모습이라고 생각되어, 우연히 들른 저로써는 기분이 좋더군요

    머 중간에 두분의 의견중에 끼어들고 싶은내용들도 물론 있으나, 과감히 그냥 포기하고 한 가지만 얘기하고자 합니다 ^^~

    노정태님께 가장 아쉽게 느낀 것은 마지막 단락에서 님이 한 얘기들...'그나마 현대경제학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저의 것이겠죠'....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아니 갑자기 왜 논의의 결론을 그렇게 몰아가시는지요. 그 이전의 논의들이 오직 주류(현대) 경제학에서 인정을 받느냐 못받느냐의 문제였나요? 상당수의 주류경제학자들이 범하는 오류들- 항상 나의 이론이 인정받느냐 못받느냐의 문제에 천착하는 경우를 보게 되고, 자신의 생각과 이론이 오직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만 천착하는 것에서, 노정태님 역시, 본인 스스로 한계와 노는물을 인정해 버리는 모습이 썩 아쉽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님께서는 자본주의 수호첨병의 임명장을 받은것도 아닌듯해서 말입니다^^~

    적절한 예일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시대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항상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한 배경을 무시하고, 최근까지 신자유주의의 근거인양 떠드는 사람들과 아주 근본적으로 달라보이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어 버려서 그럽니다.

    오히려, 님과 같은 저력을 가진 분들의 관심은 자본주의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일방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좀 더 좋은 사회를 구성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었으면 하는

    최근의 미국사태에서 보이는 주류경제학의 무기력한 대응모습은 좀 극단적으로 말해 단기땜빵식 아닙니까?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 노정태님의 지속적이고 열린관심과 탐구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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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마르크스의 '경제학' 이론이 과연 현재도 경제학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나마 현대경제학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저의 것이겠죠"라는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누차 강조하는 바와 같이, 저는 한 사람의 인상적인 저자로서 마르크스가 갖는 의의를 절대 폄하하지 않습니다. 숭배하고 있죠. 하지만 자신의 가치론을 이론적으로 완결짓기 위해 금에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했다는 것만큼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격과 가치를 구태여 구분하지 않는 현대 경제학의 조류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고요.

    마르크스의 학문적 업적을 (긍정적인 의미에서) '과거의 유산'으로 바라보는 것은 저만이 아닙니다. 최근 제 블로그에서 이름이 많이 오르내린 에릭 올린 라이트도, 주저 '계급론'에서 마르크스를 일종의 원시 사회학자로 간주하고 있죠. 그는 미국의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마르크스가 화두로 던져놓은 '계급'을 재구성하고 또 그에 걸맞는 실증적 자료 조사를 덧붙였습니다.

    '좌파 경제학'에도 비슷한 방향 전환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제학이 아니라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지만, 특히 한국의 '좌파'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은 안타까울 때가 많더군요. 그 내용을 이 리플에서 말할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의 실증주의와 상식과 예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데 그리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내일 벌어질 혁명을 고대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분배적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동력을 팔아 생활하는 자와 그것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자 사이의 갈등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 정도만 좌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 사태에 대해 말하자면, 'Dr. Doom'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다니엘 루비니 교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또한 엄연히 주류경제학계의 일원입니다. 그 반대로 저는 좌파, 혹은 진보진영에 속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이 경제위기에 대한 해석이 너무도 미진하다고 생각해요.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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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안녕하세요. 어제 제 블로그에 노동가치론에 대한 글을 적고나서 혹시나해서 구글님께 여쭤보았더니 여기를 참고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제 글을 한번 읽어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개입니다.
    http://wrice.egloos.com/4971156
    http://wrice.egloos.com/4394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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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제 생각을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금본위제와 currency 부분의 차이에서 오는 모호함을 노동가치론과 연결 시켜서 노돈가치론을 부정하신것으로 이해합니다.
    제가 상기시켜드리고 싶은 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본위제에서는 화폐가 금의 가치와 연관되어있었는데, 그러면 currency 에서는 금을 사용하지 않는데 무엇과 연관되어있는가?"

    금본위제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화폐가 단지 종이 조각에 불과한것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노동 -> 상품 -> 화폐 -> 금 -> 화폐 -> 상품 -> 노동" 의 순서로 노동과 노동을 교환했는데, 지금은 "노동 -> 상품 -> 화폐 -> 상품 -> 노동"으로 바뀐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 -> 금" 혹은 "금 -> 노동" 으로 "금"이라는 수단을 통해 노동을 간접적으로 교환했던것이, 금본위제 폐지이후 "노동 -> 노동" 으로 좀더 직접적이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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