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5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김상환의 '겨울밤' 분석에 관하여

한윤형으로부터 건내받은 김상환 교수의 논문, "An Essay on Culture: Through the Darkness of Winter Nights"를 읽었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라는 가사의 동시 '겨울밤'을 화두로 삼아, 그는 추위/따스함, 동물의 울음/인간의 대화, 고독/사회, 아동/성인(원문의 순서를 바꿈)의 이분법을 찾아내고, 각각의 항목을 통해 그 시의 안팎을 넘나들며 문화의 의미를 설명한다. 논의의 초점은 결국 '옛날 이야기'로 향하고, 김소월의 '부모'를 통해 '동양 전통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도약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도약은 포스트모던 철학이 탈근대 시대의 겨울밤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되었다는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이 모든 과정은 미려한 영어로 서술되어 있고, 두 편의 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솜씨는 여느 문학평론가가 따라오기 어려운 흡입력을 보여준다. 즉 이 논문은 놀라운 감수성의 표현이자 동시에 지적인 작업의 결과물로서도 탁월하다. 하지만 추출된 이분법에 너무 의지한 나머지 '할머니 곁에'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인간 가족의 (엥겔스적인?) 기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이 글에서는, 구전사회의 '이야기'와 현대의 '담론'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간극이 다소 간과되고 있다. 고대의 이야기가 재서술이 아닌 그저 전승을 위한 것이었고, 그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분질서 및 소유관계를 포함한 이른바 하부구조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구술문화의 '이야기'는 현실의 변화를 추동하지 않고, 심지어는 반영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러한 전통이 종교적 열망과 맞물려 가장 성공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유대교 사회의 경우, 그들의 랍비들이 암송하고 있던 구약이 기원전에 작성되어 1947년에 발견된 사해 쿰란문서와 거의 일치하는 기적을 창출해내기도 했다. 구술전통의 '이야기'가 근대의 '담론'과 이리도 다르다면, 탈근대의 서사가 계승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디지털 언어의 세계가 모든 이분법적 체계, 즉 정신과 육체, 인간과 동물, 음성과 형상, 현실과 가상 등의 그 모든 것들을 유효하지 않게 한다는 마지막 문단의 현대 문명 진단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모든 맥락을 서술할 수는 없으나, 철학적으로 볼 때 컴퓨터의 발전은 이상적인 인공언어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비트겐슈타인의 애제자 앨런 튜링의 영향 하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개별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의 차이를 기술하는 용어는 '효율성', '작성에 용이한 스타일'등이지 '문화적 맥락' 따위가 아닌 것이다. 컴퓨터 안에서 모든 언어는 결국 0과 1로 치환된다. 그곳에는 바벨의 언어가 이미 존재한다-우리가 손으로 들고 다닐 수도 있는 그 네모난 상자 안에서는.

모든 정보가 전기 신호로 분해되어 순식간에 복사되고, 원본과 사본의 구분이 불가능하거나 의미를 상실하는 현상에 대한 고찰은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컴퓨터일 뿐이고, 그것은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그 자체를 표상하는 어떤 상징이 될 수는 없다. 그러한 시각은 일종의 우상화를 낳을 뿐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의 일부일 뿐이며, 실로 인터넷 공간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년간 싸워온 인간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는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 하지만 철학이 고민해온 문제가 디지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전부 뒤흔들리고 있다는 말은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 거듭 반복하지만, 컴퓨터는 오직 이분법적 체계로 완벽하게 환원될 수 있는 언어만을 이해한다. 디지털 체계는 현대의 문명을 지탱하는 한 축일 뿐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과제는, 고대로부터 이어온 메타 학문의 위상을 되찾고, 미시화되어가는 학문 세계를 종합할 수 있는 그 어떤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아닐까? 방금 나는 '한 발자국을 내딛다'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술어의 사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또한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성찰을 하는 이만이 타인의 정신적인 건강을 지켜줄 수 있듯, 자신의 본질 그 자체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온 학문만이 후기산업사회의 목적 없는 표류로부터 인류의 방주를 아라랏산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겨울밤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우리들은 할머니 곁에
모두 옹기종기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지요.





부모

-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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