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편견일 수 있겠지만, 품성 좋은 놈 치고 알맹이가 꽉 찬 놈을 본 적이 없다. 여기서 품성 좋다 함은 오옹 님이 "친서민정당 진보신당이라..."
에서 말한 것과 같은 바로 그런 덕목이다. 괜히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인사 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말 절대 하지 않고,
친목질에 능하고, 뭐 그런 것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뚜렷한 자기 주관이 없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대세를
잘 따른다.
알맹이가 꽉 찬 놈 없다는 건 무슨 뜻인가? 방금 다 말했다. 자기 주관과 신념이 없다는 것이다.
이재오도 김문수도 민중당 할 때에는 콧대 높았다. 그들의 콧대가 낮아진 것은 그들이 한나라당에 투신한 다음부터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접어둔 채, 그저 권력을 얻겠다는 목적 의식이 그들의 삶을 지배할 때, 비로소 그들의 콧대는
낮아졌다.
즉 콧대와 권력 의지는 반비례하는 것이다. 정치집단이 권력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권력욕만 남은 정치집단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신당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전자가 문제겠지만, 한국의 정치 지형
전체를 놓고 본다면 후자가 더 문제다. 어떤 구체적인 정책과 가치를 지향하지 않는 대부분의 보수정당들은, 오옹 님 같은
영세상인들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는다. 그리고 뒷구멍으로는 그들의 생존권을 말려죽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진보신당이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말은 자신들이 일종의 '소비자'라는 의식 하에서 성립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그러한 소비자로서의
요구가 과연 바람직한 결과를 낳고 있느냐이다. 가령 한국 소비자들은 '손님은 왕'이기 때문에 왕처럼 대접받고 싶어한다. 대형
마트에 가보면 그렇다. 1+1 행사가 난무하고, 마트 입구부터 출구까지 굽신거리는 점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저렴하고
안전한, 믿을 수 있는 쇼핑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당신들을 왕처럼 대접하는 그 비용은 결국 당신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굽신거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게 앞에서 데모 같은 것은 안 하고, 대신 찾아와서
인사드리고 부주 팍팍 꽂아넣는 그 돈이 과연 어디서 나오겠는가? 당신이 낸 세금, 당신이 누려야 할 복지가 정치인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온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대접' 받는 게 너무 좋고 행복하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라고 말할 수 없어서 참으로
비극적이다. 그따위 대접 받는 것이 너무 좋고 행복한 사람들이 '유권자=소비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형 마트가 소비자를
우롱하듯 한국의 정치판은 유권자를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자체만 놓고 본다면 좀 더 정치적으로 변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판이 더 '정치적'으로 닳고 닳아야 할 필요는 없다. 즉, 진보신당이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방식
역시, 오옹 님이 갈구하는 그런 방향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국민과 정치인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정직하게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그런 방향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서로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욕하는, 그런 '친서민'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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