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9

통일세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명박의 대통령으로서의 단점 중 하나는 본인이 대단한 아이디어 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나는대로 말하고, 생각나는대로 저지르고, 아랫사람들 혹은 국민들에게 그 뒷수습을 떠맡긴다. 그런데 이명박이 가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의 장점 중 하나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는 뭐가 됐건 본인이 스스로 의제를 생산한다. 좋게 말하면 의제 선점이고 나쁘게 말하면 말실수인데, 어쨌건 그 결과 국정의 주도권을 가져가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튼 ‘통일세’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개념이 8월 15일 이후 대한민국의 여론을 뒤숭숭하게 하고 있다. 4천만 국민의 소원이 통일이던 시절은 지나간지 오래다. 지금 대부분의 국민들은 통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그 통일 대비를 위해 세금을 내라고?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기존 정부에서 쌓아왔던 대북관계를 모두 망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 이명박이, 그게 할 소리인가? 이른바 ‘진보 개혁 진영’의 반응을 요약하면 대략 이와 같은 형태가 될 듯하다.

그런데 어딘가 맥이 빠져 있다. 미디어오늘의 이정환 기자를 포함해 수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재의 부가가치세 세율이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역시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전체 세수 중 직접세 비율이 밑에서부터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멕시코와 터키, 한국인들이 평소에는 결코 자존심 때문에 비교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그 나라들 말이다. 그 외의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소득세나 법인세 등을 더 내면 더 냈지 덜 내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보면 대응법은 간단하다. 어차피 통일은, 어떤 형태가 되었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 혹은 그에 준하는 대격변은 대한민국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그 준비라는 것은 결국 재원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최소한의 현실주의만 가지고 시작하더라도, 결국 통일세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북한의 격변에 대비한 재원 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현실을 어설프게 부인하는 순간 발화자는 책임 있는 정치 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요점은 그 재원을 간접세로 충당하느냐 직접세로 충당하느냐에 달려 있다. 직접세 비율을 더 끌어올려서 통일에 대비하는 것은 결국 부자들의 돈으로 통일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고, 어차피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경제적 강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므로, 큰 틀에서 볼 때 부의 재분배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간접세로 통일 비용을 댄다면 그것은 밑돌 빼어 윗돌 괴는 형국밖에 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진보 정치세력을 자청하는 집단이라면 ‘이명박이 하니까 헛소리다, 표리부동하다’는 식의 단편적 비판을 넘어, ‘부자들이 통일 비용을 내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런 ‘적극적 반MB’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경제 정책의 큰 틀에서는 전반적으로 합의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합의의 내용 중 하나가 법인세 인하, 소득세 인하이며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을 내고 통과시키는 일을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민주당이 직접세 비율을 높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김정일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비단 이번 통일세 논란 뿐 아니라 적잖은 사회·경제적 사안에서 민주당의 ‘반MB’가 공허한 수사에 머무는 이유를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북한 정권은 언젠가 변할 것이고, 그 변화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에 다가올 것이다. 정부 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야당 역시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반MB’에 묶여서 적극적인 통일 담론에 끼어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쓰라린 정치적 손실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틀 안에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 종북주의적인 대북관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민주노동당과, 그 민주노동당을 의식하는 가운데 북한 문제를 완전히 도외시할 뿐인 진보신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은 바로 이런 사안에서 책임감 있게, 모두가 져야 할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정치 세력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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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오피니언 사이트 훅(http://hook.hani.co.kr)에 올린 글입니다. 8월 17일에 게재되었으며,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글루스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논의가 등장하였기에 전문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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