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민주주의는 평등을 달성해야 한다
2014 02/25ㅣ주간경향 1064호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로버트 달 지음·김순영 옮김·1만원·후마니타스
민주주의에 대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대체 민주주의의 목적은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인류 보편의 선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적어도 남들에게 보란 듯이 “나는 반민주 세력이오”라고 떠벌리는 정치 세력이나 개인을 찾아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둘째,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성립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민주주의’와 비교한다면 훨씬 민주적이라고 우리 모두는 동의할 수 있다. 그 차이는 궁극적으로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인가?
올해 2월 5일 세상을 떠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1915년에 태어나 1940년에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의 대표적 석학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체격이 크고 힘이 셌던 그는 12살 소년이었지만 어른이라고 남들을 속이고 부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과 대학원 학비를 미리 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대학을 나온 로버트 달은 예일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딴 후 정부에서 일하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충동적으로 자원 입대했다. 무사히 살아 돌아온 후 학계에 안착하여 예일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때부터 그가 숨을 거두던 2014년까지 그는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1946년부터 시작된 학자로서의 커리어는 1960년대에 만개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파워 엘리트>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C W 밀즈의 논의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어올린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허상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파워 엘리트’들이 쥐락펴락하는 과두정에 가깝다는 것이 밀즈의 입장이었다.
로버트 달의 생각은 달랐다. ‘보통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모든 사안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그런 ‘이상적 민주주의’는 이론적 사고를 위해 필요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는 다양한 엘리트들이 상호 견제 및 이익 추구를 통해 균형을 찾아나가는 ‘다원주의’(polyarchy)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은 현실 속에서 영원히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 또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모아 ‘파워 엘리트’들의 게임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신의 뜻이야 어떻건, 밀즈의 급진주의는 환멸과 냉소로 향하는 비탈길 노릇을 더러 수행했다. 반면 달의 현실주의는 오히려 작은 실천의 가능성을 남겨주는 것이었다.
현실주의자로 출발한 로버트 달은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비판자에 가까워졌다.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기업들의 전횡으로 민주주의가 침해되고 있음을 고발하는 책이다.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에서 그는 미국의 헌법이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장치가 아님을 역설한다.그리고 만년의 작품인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에서 그는 우리가 이 글을 시작할 때 던졌던 두 개의 질문에 대해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며, 모든 사람의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 체제다. 노학자는 날로 심해져 가는 경제적 양극화와 신분제 복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지적 도구를 우리에게 남겨준 셈이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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