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1

[북리뷰]대한조선공사 민주노조의 기록들

[북리뷰]대한조선공사 민주노조의 기록들

2014 02/11ㅣ주간경향 1062호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남화숙 지음·후마니타스·2만3000원

배는 인류와 대단히 친숙한, 아마도 가장 큰 움직이는 인공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특히 어떤 집단이나 단체를 비유할 때 ‘누구누구호’라는 식의 화법이 종종 쓰이곤 한다.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히딩크호’가 되고, 감독이 홍명보로 바뀌면 ‘홍명보호’로 불리는 식이다. 그렇게 본다면, 1960년대를 살았던 모든 한국인은 ‘박정희호’에 원하건 원치 않건 탑승해야만 했다.

‘박정희호’는 근대적 선진 강국 건설이라는 확고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 박정희가 가진 자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국토의 7할이 산인 나라에서 결국 살 길은 공업을 육성하는 것뿐인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팔아야 한단 말인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중공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새 정부로 이관되었고, 1950년 1월, 법령에 따라 대한조선공사로 재조직”되었다. 당시 해방 한국에는 그 정도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만한 자본이 없었기에 대한조선공사는 정부가 주식의 80%를 보유한 국책회사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까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내부 비리 등으로 도리어 비틀거릴 뿐이었던 대한조선공사는 4·19 이후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노동조합 지부장을 선출하면서 오늘날의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를 써내려가게 된다.

1960년을 오직 ‘학생 혁명’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1987년을 ‘민주화 투쟁’으로만 되새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오류일 것이다. 87년 6월의 직선제 쟁취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른바 ‘789 노동자 대투쟁’을 벌여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이루어냈다. 만약 789 노동자 대투쟁이 없었다면 한국 사회는 성장한 경제규모에 걸맞은 소비력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60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업 기반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고 나라 경제는 갓 일어나고 있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60년 4~12월 사이만 해도 356개의 신규 노조가 5만9186명의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는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날 한진중공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대한조선공사의 1960년대에 주목한다. ‘유신’이라는 이름의 친위 쿠데타를 저지르고 명실상부한 독재자로 거듭나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박정희에 대해 특별히 적대적인 감정을 품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정부 또한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봉건적’, ‘인습적’인 사 측에 맞서 ‘근대적’이고 ‘민주적’인 주체로 거듭나고자 최선을 다했다.

대한조선공사 민주노조의 역사는 시대를 한 바퀴 돌아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이어진다고, 저자 남화숙은 담담한 어조로 설명한다. 그 벅차오르는, 패배하지만 결국은 승리하게 될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에서 성실하게 모아놓은 자료집 덕분이었다.

부당한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고자 했던 노동자들이 남겨둔 손때 묻은 기록들. ‘박정희호’는 박정희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배를 만들고 노를 젓고 새는 물을 퍼낸 수많은 이들을 이제 우리는 온전히 알아야 한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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