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참견만 하고 도움은 외면하는 사회
단속사회
엄기호 지음·창비·1만 5000원
엄기호 지음·창비·1만 5000원
책 제목에 사용된 단어 ‘단속’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일단 첫 번째 의미로서의 단속(斷續)은 끝없이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메시지를 확인하지만, 정작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와 혹은 형제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청소년의 모습을 연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접속과 단절이 사실상 동시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이 두 양태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본 것이다.
단속(團束)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스스로의 행태, 몸가짐, 주변으로부터의 평판, 기타 대외적 요소를 신경쓰며 잡도리한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단속(斷續)하는 것은 그가 스스로를 단속(團束)하고 있다는, 그래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는 말이 된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을 잘 단속(團束)하려면, 흔히 하는 말로,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해야 한다. ‘내 편’은 화끈하게 챙기고, ‘남’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단속사회’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서로의 사생활을 다 알고 간섭하는 듯하지만, 정작 이웃으로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심심풀이 땅콩 삼아 ‘뒷담화’를 깔 때에는 남의 일에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싶으면 각자의 스마트폰을 켜고 SNS에 접속하며 귀로 들려오는 정보를 차단한다.
저자 엄기호가 다양한 사례를 들어 그려내고 있는 ‘단속사회’의 풍경은 적어도 지금까지 시도된 온갖 ‘XX사회’ 시리즈들을 놓고 볼 때, 단연 발군의 해석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 책은 본래의 주제의식만을 투견처럼 물고 늘어지는 작품이 아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례와 이론들은 더러 ‘단속사회’라는 주제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나를 바라보는 ‘눈’은 너무도 많지만, 나를 도와줄 ‘손’은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모순적 좌절과 절망을 제대로 묘사해준 표현은 ‘단속사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떤 저서가 지니는 설명력을 실컷 예찬한 후 ‘하지만 그 후 따라오는 대안이 아쉽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비겁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서평은 그렇게 마무리지어져야 하겠다. ‘곁’을 만드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서로를 향해 ‘귀를 여는’ 것이 해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면, 문득 드는 공허함을 감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면, 한국이라는 ‘단속사회’에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단절과 그로 인한 개인의 탄생이 더욱 절실한 게 아닐까.
요컨대 농업에 기반한 근대화 이전 시대의 향수를 머금고 있는 ‘공동체’로의 회귀를 아예 가능성에서 배제한 채 반대로 철저하게 계약과 객관적인 도덕률에만 의존하는 사회를 추구한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사회학자이며 문화인류학 연구자인 엄기호의 좋은 책을 읽고, 괜한 군소리를 붙여 보았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 / 자유기고가>
2014.04.22ㅣ주간경향 1072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414172356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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