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주변 사물들 요모조모 뜯어보기
사물 유람
현시원 지음·현실문화·1만6500원
<사물 유람>의 저자 현시원씨는 현직 독립 큐레이터다. 독립 큐레이터란 기존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작가들을 만나고 작품을 선별하여 관객에게 제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를 모아, 작년 11월 인왕산 자락에 살짝 닿아 있는 종로구 자하문로에 ‘시청각’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을 열었다. 이 기사가 나가는 현재 두 번째 전시 ‘HOME/WORK’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 지면은 북리뷰이지 미술 전시 소개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사물 유람>을 소개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책이라기보다는 어떤 전시로 독자들을 잡아 이끄는 것과도 같다. <사물 유람>이라는 책이 바로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를 자극한 사물들’이라는 부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큐레이터의 눈으로 저자는 일상적인, 혹은 일상적이지 않더라도 친숙한, 아니면 생소하지만 적어도 우리 모두가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는 사물들을 요모조모 뜯어본다. 꼬마 눈사람·붕어빵·과일 행상 천막처럼 익숙한 사물, 국회 의사봉처럼 다소 생뚱맞게 보이는 물건, 헬륨이 들어 있어서 붕 떠오르지만 하룻밤만 지나도 금세 쭈글쭈글해지는 비둘기 풍선 같은 것들 말이다. <사물 유람>은 그러니까 총 32개의 사물이 배열되어 있는,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의 또 다른 전시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읽는 책’보다는 ‘보는 책’에 가까울 것이다. 눈에 힘을 팍 주고 저자가 사물들에서 캐어내는 의미가 얼마나 정확한지, 가끔 등장하는 미술평론가나 이론가 등의 말이 얼마나 잘 인용되고 있는지 등을 캐묻는 일은 가능하겠지만 그다지 부질없다. 개별적인 문단과 문장들은 신선한 시각과 순수한 경탄을 드러내곤 하지만, 각 문단들은 논리적이거나 서사적인 연결을 부러 추구하지 않는다. 저자는 사물들을 독자와 저자 사이에 존재할 어떤 몽상적 공간 속에 띄워놓은 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가며 조잘거린다.
<사물 유람>의 태도는 미술관 입구에서 빌려주는 작품 해설 이어폰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물론 각 사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작품의 연혁과 의미를 진지하게 설명해주는 도슨트가 아니라, 같은 그림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와는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속삭이는 친구 같은 인상을 준다.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기에 몰랐던 일상적인 사물들을, 도리어 잘 모르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새롭게 알도록 해준다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디자이너 홍은주와 김형재가 책의 만듦새를 다져 놓았고, 그 중에서 홍은주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물들의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다. 사진가 김경태가 찍은 독특한 질감의 사진들까지 더하고 나면 <사물 유람>은 더더욱 분류하기 애매한 책이 된다. 물론 이 책은 일러스트 모음집이나 사진첩이 아니다. 본문에는 분명 우리의 독서 행위를 요구하는 텍스트가 곱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사물 유람>이라는 사물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야 마는 것이다. 책은 읽는 것인가, 아니면 보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 앞서 책이란 무엇인가?
<사물 유람>이라는 책, 사물에 대한 책, 어떻게 분류해도 애매하지만 적절한 이 책을 읽으며 적어도 나는, 책이라는 사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나만 혼자 고민할 수는 없어서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 / 자유기고가 >
문화&과학
2014.04.08ㅣ주간경향 1070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331163408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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