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0

[6.4 지방선거] 우리는 어떻게 선거를 신뢰할 것인가

원래 이렇게까지 거창한 제목을 달고 써내려갈 글은 아니었다. 4월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개최한 블로거 초청 행사인 "6.4 지방선거, 선(選) 보러 오세요"에 참석했던 나는, 그저 간단한 후기를 하나 쓸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공개된 신형 투표함이나, 뒤에서 봐도 보일 리가 없는 신형 기표소라던가, 기타 여러 장비들을 소개하고 사전투표제에 대해 홍보하는 선에서 이 일을 마무리지을 요량이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우리는 잔인한 봄을 보내고 있다. 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왜 선거관리위원회가 개표 부정 등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필요가 없는가', 혹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혹의 눈길을 던질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방향에 쏟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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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 선(選) 보러 오세요"는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블로거들과 선관위 직원 및 사회자 김미화 씨가 함께 식사를 했고, 6.4 지방선거에서 새롭게 도입된 설비 및 제도 등에 대한 설명의 시간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그 장비들을 실제로 만져보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선관위에서 블로거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선거에 대한 불신 여론이 특히 온라인에서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선관위 직원에게, 블로거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지적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사람들은 선관위가 초래한, 혹은 선관위에 대해 품고 있는 통상적인 불신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행사에 참여한 블로거들은 논외로 하고,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는 의혹은 전자식 집표기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이 찍은 표를 분류하여 주는 그 기계가 '조작'되어 있기에, 터무니없이 높은 비율로 '보류'된 표들이 등장하며, 그것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것 말이다.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분들은 대체로 수개표를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향하곤 한다.



하지만 전자직 표 분류기를 실제로 보면 그런 조작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런 것이다. 일단, 표 분류기는 말 그대로 표를 '분류'할 뿐이다. 기계로 분류된 표를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최종적인 결과를 공표한다. 따라서 기계의 오류는 선거 조작 그 자체와는 무관하다. 각 정당마다 파견한 참관인이 존재하는 가운데 선거를 조작하려면, 현행 체제 속에서는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투표함마다 표시하게 되어있는 서명과 봉인 때문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투표 조작 의혹의 핵심에 서 있는 그 기계, 전자식 표 분류기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이것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욱 신뢰할 수 있게 수행해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전자식 표 분류기는 사람에 비해 훨씬 빠르다.
2. 전자식 표 분류기는 사람에 비해 훨씬 정확하다.
3. 전자식 표 분류기는 사람보다 기억력이 좋다.

1과 2는 그렇다 치고, 3은 무슨 뜻일까? 이번에 초청된 다른 블로거들은 아마도 가지고 있지 않을 사진 한 장을 꺼내보도록 하겠다.


이번 6.4 지방선거에 투입될 신형 표 분류기의 모니터 화면이다. 왼쪽에 투표 용지 사진이 보일 것이다. 저것은 기계에 투입된 모의 투표용지를 순간적으로 스캔한 사진이다. 표가 어떻게 분류되건, 표 분류기는 개별적인 표의 이미지를 저장한다. '무효' 혹은 '미분류'로 표시되는 표 가운데 하나가 저렇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선거 진행자들은 이렇게 미분류 처리된 표를 따로 모아 실물을 두고 육안으로 판독한다. 그 중에는 유효표로 간주되어야 할 것도 있고, 무효 처리되어야 할 것도 있을 터이다. 중요한 것은 그 개별적인 과정 하나 하나가 감시되고 있고, 심지어 기계를 통한 표 분류의 경우, 순간적으로 기록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손으로 표를 분류한다면 너무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수행할 수 없는 절차다.

"6.4 지방선거, 선(選) 보러 오세요" 행사에 참여한 소득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의 선거 관리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해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뜨거운 정치 열기, 그리고 선거가 끝날 때마다 선관위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 덕분에, 한국의 선거관리위원회는 세계 최첨단의 선거 관리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현장을 실제로 목격하는 것은 즐거우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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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전된 선거 관리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이번 6.4 지방선거부터는 사전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5월 30일, 5월 31일, 이틀에 걸쳐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국 읍, 면, 동에 설치된 주민센터 등을 찾아가시라. 본인의 사진이 박혀 있고 국가에서 발급된 신분증만 있으면, 남쪽 끝 마라도에서도 파주 시장 선거에 투표할 수 있다.

이것은 투표의 일대 혁신이다. 전국이 하나의 단일한 선거구인 양 투표할 수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사전투표제가 널리 확산되면, 특히 대선의 경우, 선거를 위해 부랴부랴 자신의 주민등록지로 되돌아올 필요가 없어진다. 전국 어디에서나, 심지어 해외에서도, 신분증으로 본인임을 확인한 후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전투표제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최초로 실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들었다. 왜냐고 물어보았더니,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부재자 투표의 정당성, 혹은 공정함에 대한 의혹 제기가 워낙 많았던 탓이 클 것으로, 나는 추측한다. 아무튼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전국 어디에서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역설이다. 국민들이 선관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선관위가 더욱 노력했고, 그래서 선거 절차가 간편해지고 편의성이 증진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선관위를 불신하는 현상 그 자체가 바람직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선관위를 불신하는 일반적인 여론이 확산되어 있는 한, 설령 '이쪽'에서 선거를 이기더라도 '저쪽'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쉽게 높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거 그 자체의 공정성을 문제삼는 것은, 심지어 일종의 선거 전략으로서도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공정하고 편리한 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관위는, 그들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 채, 개별적인 정당 및 그 지지자들이 각자의 의제를 생산하며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선다면, 한국의 정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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