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6

[별별시선]세월호 침몰, 음모인가 사고인가

[별별시선]세월호 침몰, 음모인가 사고인가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원인’을 찾느냐 아니면 ‘범인’을 찾느냐에 따라 근대인과 전근대인의 경계선이 나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적인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파악하고 제거하려 한다. 반면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문제와 맞닥뜨리면 원인이 아닌 ‘범인’을 파악하고 솎아내는 일에 골몰하게 마련이다.

세월호 침몰 이후의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세월호가 왜 침몰했느냐 하는 것, 사고의 ‘이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가’ 세월호 침몰을 만들었는가, 침몰 원인이 아닌 ‘범인’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비난의 화살이 날아다니는 경로가, 적어도 이번 사건에서는 눈에 띄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박근혜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이 사고 현장에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를 공유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침몰하는 거대 함선 속에 뛰어들어 승객을 구조하지 않은 것은 해경의 명백한 직무 태만이라는 책임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것은 대중적 차원에서 보자면 온 국민이 격양된 상황 속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세월호 침몰의 이면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 채, 국가정보원부터 청와대까지 온갖 주체가 개입한 음모론을 만들고 유포하는 사람들이다. 마치 1987년 항쟁 이후 첫 대선을 앞두고 KAL기 폭파 사건이 터졌듯, 그렇게 국민들의 시선을 정치로부터 특정 사건으로 돌려놓기 위한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 가운데 특히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진행하는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이런 입장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정작 세월호 사고가 난 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되는 국가정보원에서 이렇게 대통령에게 불리한 조작 사건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둘째, 비행기가 폭파되자마자 폭파범 ‘마유미’를 체포해 국민 앞에 사냥감처럼 전시하였던 1987년과 달리, 지금은 멀쩡히 국내에서 도피 중인 것으로 여겨지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도 잡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면 일단 유병언의 신병을 확보한 다음 ‘거사’를 치렀어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국가정보원이 지금처럼 막대한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만약 세월호 침몰이 어떠한 종류의 정치 공작이라면, 이런 공작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은 김어준뿐 아니라 세월호 침몰에 관한 음모론을 이야기하는 모든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세월호 침몰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주장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것은 언론인의 의무라는 말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한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국정조사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그런데 과연 세월호 침몰은 어떤 사고였는지, 우리는 최소한의 합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누군가 단원고 학생들을 해치고자 음모를 꾸미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으며,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은폐하고 있는 사고인가? 아니면 어떤 대단히 큰 규모의 해상 운송 사고인데, 그것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대단히 많을 뿐인가?

전자를 택한다면 우리는 ‘범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후자를 택하면 우리는 ‘원인’을 밝혀야 하고, 그 과정과 결과는 그리 후련하고 속 시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범인’보다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모든 세월호 승객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또한 우리는 사방팔방으로 ‘범인’이 누군지 묻고 따지는 그런 식의 음모론에 대해, 성숙한 시민사회의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비극을 비극으로, 사고를 사고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올바른 대응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062042245&code=990100&s_code=ao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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