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우리는 어린이 인격을 존중하나
어린이 문화 운동사
이주영 지음·보리·1만3000원
‘어린이’라는 단어는 1923년에 만들어졌다.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1899년 11월 9일 태어난 소파 방정환이 3·1 운동을 겪은 후 조선 민중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어린이들을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 <어린이 문화 운동사>의 저자인 이주영은 그 뜻을 이렇게 설명한다. “식민지배 아래에서 억압받는 민중을 부모로 두었는데, 거기다 그 부모한테 또 억압을 받으니 어린이는 이중으로 억압받는 민중이라는 것이다.”(19쪽)
1923년 5월 1일 오후 3시,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가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치러졌다. 참여자들은 12만장에 이르는 어린이날 선언을 종로와 전국에 배포하였다. 그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기에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당시의 조선 사회에서 농촌의 어린이들은 말귀를 알아듣고 두 손 두 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그 때부터 한 사람의 농사꾼이 되어야 했다. 도시의 어린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노동에 시달리는 것뿐 아니라 어린이들은 일상적인 폭력과 박해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린이를 동등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라면, 당연히 그 어린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1923년의 방정환이 벌인 혁명이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 그리하여 보편적인 인간 해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말이다.
“지금은 어린이날이 5월 5일이지만 처음에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 어린이 운동가들은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을 왜 어린이날로 했을까? 어린이 운동가들은 어린이도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민중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이들도 오전에는 노동자의 날 행사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어린이날 행사를 했다.”(21쪽)
5월도 아닌 7월에 갑자기 웬 어린이날 타령인가, 왜 <어린이 문화 운동사>라는 책을 꺼내들었는가.
7월 2일, 대전지법 형사법원 제1형사부는 친딸을 목검으로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즉 살인죄로 기소된 강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는 자신이 새로 사귄 여자친구가 싫다며 가출한 딸을 찾아 집으로 데려온 후 1m 길이의 목검으로 한 시간 반 동안 때렸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 당일의 폭행은 설득과 훈육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으며, 강씨가 딸을 살해할 만한 다른 동기가 없다는 점을 참작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시간 반 동안 목검으로 14세의 어린이를 때리는 것을 과연 ‘설득과 훈육의 연장선’상의 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라고 외치던 소파 방정환은 조국과 어린이들의 해방을 목격하지 못한 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러나 과연 얼마나 어린이들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2014.07.15ㅣ주간경향 1084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07071727351&code=116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