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성장보다 분배, 조세정의 확립을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장경덕 옮김·글항아리·3만3000원
지난 9월 19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의 경제정책, 이른바 ‘초이노믹스’를 ‘아베노믹스’와 비교 설명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최근 한국의 경제정책은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세계적 경제학자들의 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 빛나는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진보적, 혹은 ‘리버럴’한 경제정책을 대변하는 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옹호하는 폴 크루그먼이 대체 어떤 맥락에서 ‘초이노믹스’의 이론적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일까?
다소 분명하지 않게 경제학자들을 그저 성향에 따라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로 나눈다면 토마피케티와 크루그먼은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진보’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 각각이 현재의 문제를 해석하여 내놓는 답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피케티는 <21>에서 대규모 공공부채에 대해 크게 세 가지 해법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자본에 대한 세금, 인플레이션, 긴축재정이다. 민간자본에 대해 파격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한다면 인플레이션이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최악의 해결책은 지속적인 긴축재정인데, 이것이 바로 현재 유럽이 따르고 있는 방식이다.”(650쪽)21>
이것은 비단 공공부채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공공부채 문제는 “부의 분배, 특히 공공부분과 민간부문 사이의 문제이지 절대적인 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는 부유하지만, 부유한 국가의 정부는 가난하다.”(같은 곳)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소득 하위 50%는 대부분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므로 결국 부유한 국가의 공공부채 문제는 상류층이 민간부문의 자본을 독점하는 문제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세 번째 해답, 즉 공공자본의 민영화를 골자로 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이후 역사적 실패로 판명되었으니, 문제는 과세 정책이냐, 아니면 재정 확장을 통한 경기 부양이냐의 선택이다. 최경환이 자신의 경제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인용하는 폴 크루그먼은 미국 내의 재정 축소론자들에게 맞서 ‘돈 뿌리기’를 주장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아베노믹스에 대해 ‘소득세를 높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제언을 덧붙인다는 점이다. 증세 없이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살리면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가 회복되고 불평등도 줄어든다는 일종의 낙관론이다. <21>에서 피케티가 주장하는 바는 그와 궤도를 달리한다. “공공부채에 대한 이러한 ‘진보적’인 관점은 인플레이션이 오래 전부터 19세기보다 그리 높지 않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재분배 효과가 비교적 불분명한데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161쪽) 피케티는 경제성장보다 분배 그 자체를 목표로 삼고, 더욱 확실한 조세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21>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간접세 중심으로 세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재정 지출을 확대한다. 크루그먼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크루그먼의 말도 듣지 않고, 피케티의 조언에는 등을 돌린 셈이다. <21>에 대한 논의들은 바로 이 각도에서 우리의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21>
<노정태 ‘논객 시대’저자/번역가>
2014.10.14ㅣ주간경향 1096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007111907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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