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28

[북리뷰]무차별 ‘인터넷 사찰’의 막전막후

[북리뷰]무차별 ‘인터넷 사찰’의 막전막후
2014.10.28ㅣ주간경향 1098호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글렌 그린월드 지음·박수민, 박산호 옮김·모던타임스·1만5000원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처음 ‘사이버 망명’ 이야기가 나왔을 때 비교적 무덤덤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가 있는데, 그것은 국내 서버에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이후 텔레그램을 설치한 사람들은 대략 200만 명을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이렇듯 대중들이 인터넷과 사이버 프라이버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은 반대로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정보를 추적하려 드는 오늘날을 일컫는 용어가 있다. ‘포스트-스노든 시대’(Post-Snowden Era)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국가안보국 NSA의 전산시스템 관리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글렌 그린월드와 접선하여, 자신이 빼온 고급 정보를 전달하고, NSA가 무차별적으로 인터넷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바로 그 사건 이후, 인터넷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더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바로 그 역사적 폭로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글렌 그린월드가 스노든의 폭로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행동의 전후 맥락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킨키나투스’라는 익명으로 그린월드에게 스노든이 이메일을 보냈지만 처음에는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제보를 받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던 일화에서 출발해, 그린월드는 스노든의 폭로가 이루어진 과정, NSA의 무차별적 도·감청이 수행된 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더 안전하고 개방적인 인터넷을 만들 수 있을지 등 다양한 주제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사실 NSA의 감청과 현재 우리가 처한 문제는 사뭇 다르다. NSA는 적법하게 영장을 발급받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이라 예상하여 국민들의 메시지를 기술적으로 뚫고 들어갔다. 반면 한국의 검찰과 경찰은 수사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감청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그러한 청구를 받아들여 ‘영장 자판기’ 노릇을 한 듯하다. 미국의 법원이 한국처럼 영장을 남발했다면 NSA는 굳이 스노든 같은 IT 전문가를 끌어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문제는 IT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법적 절차의 작동방식 그 자체다.

하지만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국민을 사찰하는 ‘정보기관’이 움직이는 방식은 동일하다. NSA가 수집한 정보는 테러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수집한 정보 중에는 적어도 ‘미국인’ 한 명의 온라인 성생활과 인터넷 상에서의 ‘방탕한 행위’, 예컨대 포르노 사이트 방문과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의 은밀한 채팅 섹스에 관한 세부 내용이 있었다. NSA는 목표 대상의 명성과 신뢰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런 정보를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다.”(244쪽) 사생활을 수집해 반체제인사, 혹은 반정부인사를 물밑으로 협박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검찰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말에, ‘왜 위축되나, 아무 문제없는 글을 쓴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NSA가 미국인들의 성생활까지 감시하는 데서 알 수 있다시피, 어떤 글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그들’이 정한다. ‘사이버 망명’이 아닌 민주주의의 회복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해법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41021142121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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