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김영란, 김두식 지음·쌤앤파커스·1만5000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3월 3일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후 정확히 일주일 후였던 3월 10일, 김영란법에 대해 김영란 본인이 입장 발표를 한 것이다. 김영란은 이미 2013년에 김영란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심지어 그것을 위해 책을 한 권 펴내기까지 했다.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법조인들의 ‘이너서클’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김두식 교수에게 연락을 해 만남을 갖고, 법조계를 포함한 공직사회 전반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김영란법이 지향하는 바에 동의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선 큰 의문을 품고 있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의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주도하여 1997년 만들어진 청소년보호법, 이른바 ‘청보법’이 낳은 폐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보법이 시행되면서 수많은 만화들이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되었고, 당시 IMF로 위기를 겪고 있던 출판만화 시장은 결정적인 철퇴를 맞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도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 할 경우, 그것이 원하는 효과를 이룬다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거나 어쩌면 더 큰 역효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청보법이 한국 만화계에 재앙을 불러왔듯, 김영란법이 어딘가에 무슨 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할 수 없으므로, ‘원칙에는 찬성하나 결과를 우려하는’ 회의적 입장에서 ‘어디 나를 설득해봐라’는 태도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영란 본인은 이러한 비판을 많이 들어봤고, 또 익숙한 듯하다. “저더러 과격하다고 하는데 뭐랄까, 자코뱅(Jacobins) 같나요?(웃음) 그래도 속은 시원하지 않나요?”(167쪽) 그렇다.
비판자들은 ‘너무 과격하다’고 말한다. 마치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단두대로 승화시켜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자코뱅파처럼, 김영란법 역시 수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고. 반면 김영란법에 대한 찬성 의견은 일차적으로 ‘속 시원하다’는 감각적 반응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런 반응은 나 같은 회의주의자들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회의주의자에서 일종의 모험주의자로 입장을 바꾸고 싶어졌다. 김두식은 김영란이 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치기 좋은 공’을 연거푸 던져준다. 김영란은 그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다. 그 설명은 때로 대단히 설득력이 있다. 가령 “이것은 정말 상징적인 법규일 뿐, 이 법 때문에 처벌이 무한정 늘어나리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만, “이건 공무원들을 위한 법, 공무원들이 부담스러운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258)이라는 부연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말이다.
아직도 나는 회의적이다.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보면 더욱 그렇다. 법의 적용 대상을 민법상 규정된 가족에서 본인과 배우자로 축소시킨 것이 가장 뼈아픈 후퇴라고 생각한다. 이해관계 충돌 금지가 빠진 것 또한 그렇다. 이 법이 처벌 이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공직자들의 윤리를 다잡기 위한 것이었다면, 법이 통과되기 전에 좀 더 많은 홍보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김영란법은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이야기인 것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316161008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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