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시대 1~5
세키가와 나쓰오 지음·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미콜론·각권 1만1000원
일본은 전쟁에서 이겼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공허함을 느꼈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를 꺾으며 일본은 일약 신흥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듯했지만, 일본인들은 러시아로부터의 배상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전쟁을 앞두고 억눌러져 있던 국민들의 불만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비어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쓰메 소세키가 <도련님>을 구상하고 집필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고독한 미식가>를 통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등산 만화인 <신들의 봉우리> 등으로도 탄탄한 열성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 그가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작가인 세키카와 나쓰오와 손을 잡았다. 전후 고도성장기를 제외하면, 일본인들이 가장 ‘좋은 시절’로 떠올린다는 메이지 천황 시대를, 나쓰메 소세키 및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문인들을 주인공 삼아 다섯 편의 만화 속에 담아낸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이라는, 불쑥 등장해버린 타자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서양은 우선 배우고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었다.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에게 ‘안’과 ‘밖’이 철저히 나누어진, ‘프라이버시’가 존재하기에 역설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서구식 생활 공간은, 신경증을 안겨주었다. 근대화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을지언정 ‘영국인’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뿐 아니라,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치던 모든 메이지 시대 사람들이 겪었던 공통의 딜레마였다. 산업화를 통해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당연히 그 성장의 과실은 고루 분배되지 않았다. 가난한 국민들을 바라보며 의식화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을 의식화하기 시작했고, 메이지 정부는 앞뒤 가리지 않고 ‘주의자’들을 단속하고 나선다. 급기야 간노 스가코 등 무정부주의자들이 천황을 살해하려 모의했다는 혐의로 처벌되면서, 일본은 엄격한 군국주의적 통제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민간 개혁, 혁명세력에는 철권과 쇠사슬 그리고 죽음으로 대답하겠다고 결의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마침내 메이지 천황에게 그 뜻을 아뢰기 위해서 온 것이다. 메이지 42년(1909년) 5월 중순의 맑은 아침, 일본은 조용히 회전했다. 그리고 고토쿠 슈스이 등 28명이 죽을 운명도 이때 결정되었다.”(4권 208쪽)
한국인인 우리는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따져 묻기 시작하면, 그 답변의 목록은 실로 빈곤하기 짝이 없다. 고대의 일본, 중세의 일본, 근대와 현대의 일본이 각각 어떻게 다르고 구분되었는지, 어떤 시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종지부를 찍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하기 어렵다. <도련님의 시대>는 바로 그 점에서 훌륭한 교과서가 되어주는 책이다. 물론 여성들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의존한 묘사라든지, 안중근 의사를 등장시키고 다루는 방식 등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그러나 근대 일본의 사춘기가 끝나갈 무렵을, 그 사춘기를 빼곡히 적어낸 작가들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텍스트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메이지 시대를 이해하려면 이 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정태 ‘논객시대’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511175635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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