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노다 마사아키 지음·서혜영 옮김·펜타그램·1만7000원
사건 발생 후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적잖은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있고, 대한민국이 더 안전한 나라가 된 것도 아니며, 일각에서는 세월호 침몰의 진짜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연안여객선들의 위험한 항해는 계속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의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가 지은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꺼내 들어 보자. “1985년 8월 12일 JAL 점보기가 군마 현 우에노무라 산중의 오스타카 산등성이에 추락하여 520명이 사망(4명 생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3쪽)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세월호 참사보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세상을 떠나게 된 그런 사건이었다. 고속으로 날아가던 항공기가 추락했기에 총 탑승자 중 살아남은 이들은 고작 4명뿐이었다. 더 끔찍한 것은 희생자들의 시신을 온전히 수습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조난자 520명 중 오체가 다 갖춰진 시신은 177구였고, 그 밖의 시신은 모두 이단(離斷)된 상태여서 2065부분으로 분리되어 수용되었다.”(28쪽)
JAL과 일본 사회는 이 문제를 그저 대충 수습하고 싶어했다. 주인을 못 찾은 조각난 시신들을 사고 발생 후 반년 만에 한꺼번에 화장하기로 결정했다. “합동 화장은 서둘러 진행됐다. 그것은 죽은 사람과 유족의 시간이 아니라, 일상의 업무 속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진행된 것이다.”(83쪽)
저자는 해당 사고 희생자들의 유족들을 만나며 그들이 어떻게 슬픔을 극복해왔는지를 기록한다. 그중 눈에 띄는 사례를 꼽아보자. 평범한 주부였지만, 남편이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었던 덕분에 의학계의 맥락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K씨는, “혼자서 시신 확인 투쟁―그것은 적과의 싸움이라기보다 자신의 견디기 힘든 운명과의 싸움이었다―을 하는 과정에서, 시신 확인을 맡았던 의사 대부분이 법의학 지식이 없는 내과나 외과의 임상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48쪽) 그는 사람들을 조직하여 법의학자들을 파견하도록 JAL과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그렇게 법의학 전문의 파견 약속을 얻어낸 것이 1985년 12월 1일. 하지만 JAL은 미확인 시신을 모두 화장하겠다고 발표해버렸다. 화장 예정일은 12월 13일. 실제로 화장이 집행된 것은 12월 20일이었다.
‘일본도 그랬듯 한국에서도 사건을 덮는 데 급급했다’는 식의 결론을 내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부는 세월호 실종자들을 수색하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잠수부들을 투입하여, 현재 수많은 현장 인력들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비용이 얼마가 들건 세월호를 인양하기로 정부는 공식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정부와 JAL에 비교해보자면, 한국 정부는 훨씬 더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를 둘러싼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는 작별에 대한 책이다. 불현듯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되찾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 책을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도 그들처럼 떠나보내면서 우리의 삶을 되찾고, 올바른 정치적 방향을 회복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50428145948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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