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 편집부, 프로파간다, 8천5백원.
2012년 대선의 후폭풍은 심각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 두 후보의 표를 합치면 99%가 넘었다. 다시 말해 '이탈표'가 존재하지 않는 양자구도의 진검승부였다. 투표율은 75%를 넘겼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에게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100만표 차이가 났다. 일부 지지자들은 속된 말로 '멘붕'에 빠졌고, 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수개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개표 조작 논란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던 제16대 대선 이후에도 같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헛소동에 지나지 않은 '수개표 논란'과 달리,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남겼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야당 후보를 비난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 온갖 혐오발언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음지'의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독립 출판사인 프로파간다가 '편집부'의 이름으로 엮어낸 책이다.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사이버 여론전이 초래한 부정선거 시비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금, 민주주의 제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 부정선거를 척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과제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9쪽) '편집부'는 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 이래 등장한 온갖 부정선거 방식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고, 이승만부터 좌익효수까지 다양한 주요 인물들을 검토하며, "부정선거 고사 문제지"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복습의 시간까지 갖게 한다.
이 책은 건국 이후 대한민국에서 나타난 여러 부정선거 기법과 사건 등을, 그림을 곁들여 알기 쉽게 정리한 도감이다. 대부분은 어느덧 희미해진 오래된 부정선거 사례들이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한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대한 교육 자료, 부정선거 기법의 세부에 대한 해설서로서, 필요한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로 소용되길 기대한다.(10쪽)
그렇게 소개되는 부정선거의 기법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악랄하고, 때로는 노골적이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보성의 야당 참관인에게 '누군가'가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였다. 참관인이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표를 바꿔치기(전문 용어로 '환표')했다. 그나마 수면제를 먹은 경우는 점잖은 것이었다. 다른 투표 참관인은 자유당이 동원한 폭력배에게 얻어맞고 쫓겨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닭죽 사건'이다.
'피아노표'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개표원이 몰래 숨겨둔 인주를 손가락에 묻힌다. 자신이 떨어뜨리고자 하는 후보의 표가 나오면,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인주를 발라서 무효표를 만드는 것이다. 어린애 장난처럼 들리지만 불과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기도 하는 총선의 경우 특히 그 효과가 크다. "피아노표는 한국 부정선거 역사상 손꼽히는 '아이디어'이며 '가성비' 측면에서도 탁월한 수법"(39쪽)이라고, 프로파간다 편집부는 경탄을 내뱉는다.
공정한 선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결의를 다지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투표할 것이고, 정당하게 승리할 것이다.
2016.04.26ㅣ주간경향 1173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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