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28

[북리뷰] 시신이 사라져도 사람은 남는다

장성택의 길
라종일, 알마, 1만6천원


김정일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였다. 3대 세습이 시작되자 감히 1인자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2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은 전격적으로 장성택을 숙청해버렸다. 4신 기관총을 난사하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버린 탓에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시신까지 말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장성택이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남겨진 두 토막으로 부러진 볼펜 조각뿐이었다."(267쪽)

이 죽음이 너무도 황망한 탓이었을까. 그날 이후 장성택과 그를 숙청한 김정은은 가십 혹은 농담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 김정은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장성택과 연배가 비슷한 중장년층은 종편을 통해, '고모부를 살해한 조카'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곱씹는다. 북한을 무조건 악마화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나니, 이제는 덮어놓고 일단 희화화부터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장성택의 길>은 사뭇 다르다. 북한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독재국가에 적용될 수 있을만한 원칙을 놓고 북한을 바라본다.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 다른 나라의 권력 주변인들의 행동 패턴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해본다. 그렇게 라종일은 김정은이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2년 후 장성택이 숙청당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어느 권력 체제에서나 2인자의 위치는 매우 미묘하게 곤란한 것일 수 있다. 특히 권력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 그리고 권력 승계에 관한 공개적인 규칙이 결여된 체제인 경우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당시 장성택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그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거의 교과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했다.(10쪽)

"경제적인 자원 분배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결과였다거나, 혹은 장성택이 김정은과 달리 핵과 경제의 이른바 병진노선에 반대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11쪽), 그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렇게 언론은 점점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인자였기 때문이다. 라종일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쉬운 답, 하지만 정답일 수밖에 없는 답을 제시한 후, 다른 이들이 바라보지 않았던 곳을 들여다본다. 장성택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쩌다가 그러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어째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권력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는가?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세간에 알려진"(14쪽) 사실들을 모으고, 신분을 밝히기 꺼리는 "자문인"들로부터 귀중한 자료를 덧붙여, 장성택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전기로 엮어냈다. "구하기 어려운, 빈약한 단편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처신 그리고 특히 그의 내면세계를 재구성하고, 이것을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15쪽)어낸 것이다.

<장성택의 길>은 장성택이라는 북한의 핵심 인물을 온전히 '사람'으로 그려내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1인 독재체제의 잔인하고 부조리한 측면까지 일말의 악마화나 희화화 없이 바라볼 수 있다.

4월 27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라종일은 "시신을 없앨 수는 있어도 사람을 없앨 수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지워져버린 사람을 기억의 힘으로 되살리면 권력의 잔혹한 실체가 드러난다. 그것이 북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김형욱, 그 외 수많은 의문사 희생자들을 떠올려보자. "과거는 죽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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