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자신의 어휘를 섬세하게, 내면의 음조에 맞춰 장인처럼 조율했던, 그는 위대한 작가였다. 그는 글쓰기의 체계적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모두 같은 방법론에 의해 작성되었는데, 심지어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그가 병에 걸리고 전신마비에 시달리던 무렵[1] 쓴 글들 역시 그러하다. 첫째, 그는 한 주제에 대해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 노란색 유선 리걸패드에 손으로 노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개요로 넘어가 색깔별로 A, B, C, D를 분류하고, A1i, A1ii, A2iii 등으로 이어지는 하위 분류를 (더 많은 리걸패드에) 작성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식당 테이블에 수도사처럼 몇 시간씩 앉아 노트의 모든 문장들, 모든 사실들, 날짜, 요점, 개념 등이 개요 속에 배치되도록 정렬했다. 다음, 가장 중요하고 충격적인 단계에서 그는 자신의 원래 노트를 전부 개요의 순서에 맞게 옮겨적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 앉을 때쯤이면 그는 자신이 알아야 하는 것들 중 대부분을 베끼고, 또 베끼고, 외워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문을 걸어잠근 후 (마마이트 샌드위치와 진한 에스프레소를 곁들인 짧은 휴식을 제외하면)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고쳐쓰고 또 고쳐썼다. 끝으로 "광내기"를 했다.
병에 걸렸을 때에도 이 과정은 바뀌지 않았고 다만 힘들어졌을 뿐이다. 누군가가 손을 보태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자료들을 수합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타자를 쳐야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되면서 그는 가장 사적인 일이라 할 수 있는 생각하기와 글쓰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재교육해야 했는데, 이는 그의 특출난 지성의 유연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조수와 함께 작업했지만, 대부분의 작업은 보통 밤에 그의 머릿속에서 기억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렇게 작성, 분류, 색인, 재서술된 그의 정신적 노트는 아침에 A, B, C, D의 개요 순서에 따라 나, 우리의 아이들, 간호사, 그의 조수의 손을 통해 타자로 옮겨졌다.
이것은 단순한 방법론이 아니라, 그의 정신 세계의 지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논리, 인내력, 밀도 높은 집중과 주의 깊은 논변의 구축, 사실 및 세부사항에 대한 군인같은 경계심, 대부분의 작가와 달리 최초의 구상안에서 빗겨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스스로의 신념에 대한 확신 등. 어려움은 "지상 위의 사실"이 아닌 "내면의 사실", 그의 내면에 배치된 가구마냥 그저 거기 있을 뿐인 것, 자기 자신도 완전히 보거나 알지 못하는 내면의 무언가와 부딪칠 때 발생했다. 그중 가장 명백한 난제는 그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 Jennifer Homans[2]의 서문. Tony Judt, When the Fact Changes(New York: Penguin Press, 2015)
[1] 토니 주트는 2008년 루게릭병이 발병하여 투병하다가 사망하였다. 루게릭병에 걸리면 몸의 근육이 마비된다.
[2] 토니 주트의 부인. 1993년 결혼하여 2010년 토니 주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다.
참고: 같은 역사학자지만 E. H. 카의 글쓰기 방법론은 완전히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