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9

[북리뷰] 광장의 불꽃은 백년 넘게 타오르고 있다

1898, 문명의 전환
전인권·정선태·이승원 지음·이학사·1만8000원

정치학자 전인권에게는 꿈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기원을 정치사상사의 관점에서 밝혀내고, 이 나라가 직면한 제반 상황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젊은 나이의 그를 병마가 덮쳐왔고, 전인권의 미완성 원고를 그의 동료인 정선태와 이승원이 이어받았다.

<1898, 문명의 전환>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왕조의 신민이 아닌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거듭났던 그 순간이 언제인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헌법 전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건국한 주체는 3·1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대한국민이다. 그렇게 새로운 나라를 만든 주권자들은 부정과 독재로 얼룩진 이승만 정권을 쫓아냈고, 빈 틈을 노리고 들어온 군부에 잠시 권력을 내줬지만, 기어이 승리를 거두어 대통령 직선제 민주 헌법을 이룩해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대한국민은 3·1운동을 통해 이 나라가 독립국가임을 천명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런데 갑오개혁이 시작된 것은 1894년이고, 3·1운동은 1919년이다. 불과 25년 만에 조선의 신민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우리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전인권은 역사학계의 통념에서 벗어나 한 매체와 그 매체로 인한 정치 운동에 주목한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후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고문 자격으로 돌아온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과 독립협회의 주도로 시작된 후 자체적인 생명력을 얻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만민공동회가 바로 그것이다.

최초의 순한글신문으로 띄어쓰기를 도입하여 혁신적으로 가독성을 끌어올린 <독립신문> 덕분에 새로운 공론장이 탄생했다. 말하고 읽고 쓰게 된 조선왕조의 백성들은 광장에 모여 밤을 새가며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한 끝에, 상호 간에 평등하며 근대적인 정치 체제의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으로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협회의 주체가 비교적 소수의 엘리트였다면, 만민공동회는 대중들이 이끌어간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정치운동”(169쪽)이었다. 하지만 기존 역사학계는 민중주의 사관에 집중한 나머지 동학농민운동을 주요 사건으로 되새기면서 만민공동회를 다소 소홀하게 다루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새로운 매체와 광장에서의 모임을 통한 새로운 정치의식의 출현. 전근대사회의 신민에서 근대사회의 시민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그 중대한 의미를 병상에 누워 정선태와 이승원에게 남길 유언을 녹음하던 전인권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역시 문명의 전환이 왜 1898년이냐, 1876년 개항일 수도 있고, 김옥균이 쿠데타 한 때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근대의 출현이라고 하는 것은 ‘대중의 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대중들이 집단적인 의사 표현을 하고, 과거 백성들과 신민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새롭게 호명되면서, 균질화된 혹은 동질화된 그 자격을 가지고 공론장에 참여하고 있는 이 형태.”(304쪽)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광장’의 체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성공하고, 가끔은 실패했지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정치적 주체화의 도저한 흐름 말이다. 우리의 문명은 바로 지금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한다.

2016.11.29ㅣ주간경향 1203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11221050471&code=116

2016-11-27

20161120 - 20161126: 앙겔라 메르켈 4선 도전, 박근혜 탄핵 추진, 크리스 패튼의 홍콩 독립주의 비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4선에 도전한다. 2005년 이후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현지시각으로 11월 23일 연방하원 정책 토론회 연설에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해도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총리직에 다시 도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현재, 메르켈은 자유무역과 관대한 이민 허용의 마지막 수호자가 되었다. 그는 연방하원 정책 토론회 연설에서 TPP 탈퇴를 천명한 트럼프를, 이름을 거론하지 않으며 비판했다.

지난 해, 시리아 난민을 대거 수용하기로 한 결정 이후 난공불락이었던 메르켈과 기독민주당의 지지율이 큰 하락세를 보였다. 트럼프의 당선이 보여주고 있다시피 반 이민 정서는 기존 정치권 바깥의 극우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경향이 있다. 메르켈은 구 동독에 임대주택을 확충하는 정책을 펼쳐 지지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 야권에서 이번 회기 중으로 탄핵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빠르면 12월 2일, 늦어도 12월 9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국민의당은 최대한 빨리 탄핵소추안을 가결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9일까지 여유를 갖고 최대한 비박계 의원들을 포섭하며 표 단속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새누리당에 탄핵을 구걸하지 않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이기도 한, 부역자 집단의 당 대표를 지낸 분이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한다"는 등의 공격적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민주당에도 부역자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며, 지금은 탄핵안 통과를 위해 집중해야 할 때라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현재로서는 탄핵안을 통과시켜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지 않는 한, 검찰 뿐 아니라 특검의 수사 역시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비박계가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는 일에 앞장섬으로써 '면죄부'를 얻는다는 식의 비판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거야(巨野)의 지지자들이 곧잘 말하던 '차악'과 공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 1997년 퇴임한 마지막 홍콩 총독인 크리스 패튼(Chris Patten)이 두 명의 홍콩 입법회 선거 당선자인 식스투스 바지오 렁과 야우와이칭에 대해 "일종의 학생 놀음"을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식스투스 바지오 렁(좌) / 야우와이칭(우)

식스투스 바지오 렁(梁頌恒)과 야우와이칭(游蕙禎) 당선자는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입법회 선서에 임했다. 게다가 그들은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고 중국을 야유하는 내용으로 선서문을 바꿔 읽었다. 홍콩 법원은 11월 15일 두 당선자의 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크리스 패튼은 중국의 홍콩 자치권 침해에 대해 침묵하는 영국 정부를 비판하지만, 홍콩의 독립 그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파이넨셜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진지하게 조언하건대, 당선자들은 통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대화에 복귀하고, 독립과 관련된 것들은 멀리해야 한다. . .  독립은 실현될 수 없으며 홍콩 주민들은 독립이 가능한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내의 언론은 홍콩에 대해 놀라우리만치 관심이 낮다. 특히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으로 인식하거나 그에 동조한다고 여기는 언론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지속적으로 추적해볼 사안이다.

2016-11-20

[별별시선]트럼프 당선과 ‘진보’의 가치

미국 대선 결과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반응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마치 페이스북을 통해 조작된 뉴스를 보고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미국인들처럼, 특히 일부 진보 인사들은 잘못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해 엉뚱한 방향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트럼프는 미국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틀렸다. 현지시간으로 11월17일 현재, 힐러리 클린턴의 총득표는 6282만5754표, 반면 트럼프는 6148만6735표에 그치고 있다. 약 130만표 차가 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500만표가량 개표되지 않은 표가 남아있다.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당선은 민주주의적 원칙보다 연방주의적 원칙이 우선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트럼프 지지층은 분노한 노동자들이다?’

천만에. 트럼프의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들이다. 숫자를 보자. 미국인의 중위소득은 5만6000달러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약 6만1000달러의 중위소득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중위소득은 7만2000달러로, 클린턴 지지층에 비해 1만달러가 높을뿐더러 평범한 미국인들에 비해서도 1만6000달러나 더 높다. 이것은 평균이 아니라 중위값이므로 ‘슈퍼 리치’들이 공화당을 지지해서 왜곡된 통계가 아니다. 주요 트럼프 지지층이 ‘가난하고 분노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샌더스가 나갔다면 이겼을 것이다?’

어림도 없다. 샌더스는 클린턴에게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다. 특히 민주당의 ‘미래 지지 기반’인 히스패닉 및 소수자 집단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경선 패배의 원인이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전국 득표력이 필요하다. 샌더스는 백인 밀집 지역인 ‘러스트 벨트’에서만 상대적 우위를 갖는 약한 후보였다. 게다가 샌더스가 트럼프와 1 대 1 토론에서 어떤 처참한 꼴을 당했을지 상상해봐야 한다.

미국 대선 관련 주요 이벤트를 모두 시청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샌더스는 트럼프의 상대가 못된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잽 부시를 문자 그대로 짓뭉개버렸다. “닥쳐”(You shut up)라며 손가락질을 해대고 목청을 높이는 트럼프를 부시 집안의 세번째 대통령 출마자는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트럼프는 온갖 부동산 거래뿐 아니라 리얼리티 쇼와 프로레슬링 무대 등으로 단련된 ‘미디어 인파이터’다. ‘남자 대 남자’로 맞대결해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점잖게 나오면 말을 안 들어먹고, 똑같이 진흙탕 싸움을 하면 이쪽이 더 손해를 본다. 클린턴처럼 소수자에 속하는 누군가가 품위 있는 태도로 맞서는 것만이 해법이었다. 샌더스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었다.

정리해보자.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최소 130만표 뒤졌지만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해 승리했다. 게다가 트럼프 지지자들은 평균적인 미국인뿐 아니라 클린턴과 샌더스의 지지자들보다 잘사는, 교외에 거주하는 겉보기에 점잖은 백인 중산층들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키워드는 ‘분노한 민중’이 아니라 ‘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득권층’인 것이다.

그런데 왜 미국 대선을 ‘가난한 노동자의 반란’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을까? 한국식으로 치자면 여성, 세월호 희생자,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외국인 노동자, 중국계 동포 등을 모욕하며 증오를 선동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베 스타’가 바로 트럼프다. 일부 인사들은 그러나 승자에게 감정이입하여, 트럼프의 승리에 어떤 ‘진보적 가치’를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입력 : 2016.11.20 21:16:01 수정 : 2016.11.20 21:18:55

2016-11-19

20161113 - 20161119: 미 연준 금리 인상 예고, 박근혜 대통령 피의자 신분

*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현지시간 11월 17일 의회에 출석해 남은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그가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비방 때문이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중 연준이 민주당 정권을 돕기 위해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그래서 달러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공격했던 것이다.

옐런은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임기를 모두 채울 것임을 천명했다. 2018년 2월까지는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를 유임시킬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므로, 이후로는 미국의 통화 정책이 크게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옐런 의장은 의회에서 "현 시점에서 볼 때, 나는 경제가 우리의 목표를 향해 대단히 훌륭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연준이 11월에 도달한 판단 역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기준금리 인상은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에"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한 이유로, 견실한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의 경제 외에도, 지나치게 낮은 금리로 인해 투자자들이 위험한 자산(가령 부실한 주택 담보 대출)으로 향하게 될 우려가 있음을 덧붙였다.


* 11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중 이루어질 것처럼 이야기되었던 검찰 조사를 거부했다. 검찰에서 그를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려 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고 언론과 법조인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러자 11월 18일 늦은 시각,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라고 적시하지 않은 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특수본 관계자는 18일 “박 대통령에 대해 ‘형제번호’를 땄다(기재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신문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형제번호’는 검찰이 입건된 피의자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사건번호다. 참고인은 입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형제번호가 기재됐다면 피의자라는 의미다."

그러나 검찰은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박근혜 대통령이 피의자라고 밝히지 않았다.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바는 어디까지나 '관계자'의 말일 뿐이고, 아직 공식적으로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에 대한 소환장이 발부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통신사인 교도통신은 검찰 관계자가 박근혜 대통령을 '중요 참고인'으로 지적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한국갤럽에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5%, 부정 평가는 90%, 의견 유보는 6%로 지난주와 유사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16-11-15

'클린턴의 패배에 대한 오바마의 분석'에 대한 코멘트

클린턴의 패배에 대한 오바마의 '분석'은 밥을 꼭꼭 씹어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 같은 원론적인 소리일 뿐. 그거 모르는 정치인도 있나? 문제는 클린턴 캠프가 '왜' 위스콘신 등을 동선에 넣지 않았느냐임. 내 추측은 인구 구성표를 믿고 도박을 했다는 쪽.

카운티 단위의 순회 일정을 감당하기에는 클린턴의 건강이 안 받쳐줬을 것이고, 백인 남성 노동자들이 '재수없는 년'과의 휴먼 터치를 좋아할지조차 미지수이니, 플로리다와 (심지어) 텍사스 등 인종 구성이 다양한 대도시가 있는 주에 캠페인을 집중하고 망함.

이 가설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음. 1)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 문제가 실제로 영향을 미쳤다. 2) 백인 남성과 가정주부들의 미소지니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클린턴 캠프에서 알고 선제적으로 포기했다. 아무튼 숫자를 놓고 보면 해볼만한 도박이었을듯.

문제는 막판에 FBI가 선거에 개입하면서 안그래도 투표율 낮은 마이너리티들의 투표 의지를 떨어뜨리고, 원래 투표율 높은 백인들을 반 클린턴으로 결집시키는 효과를 불러왔다는 것. 클린턴 캠프에서 패인을 FBI로 짚는 것을 왜 비난하는지 모르겠음...

이 가설이 맞다면, 클린턴 캠프가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패인은 당연히 FBI 뿐임. '클린턴이 건강 때문에 카운티 단위 방문이 불가능했다', '우리는 판세를 보고 러스트 벨트를 버렸다' 같은 소리를 공개적으로 할 수야 없을 테니까.

* 2016년 11월 15일 오후 3시경 작성한 트윗들을 모은 것.

[북리뷰] 늑대왕 로보와 시튼, 그 문제적 관계

커럼포의 왕 로보
윌리엄 그릴, 찰리북, 1만5천원

영국 태생으로 캐나다로 이주한 동물학자 어니스트 시튼은 자신이 관찰하고 겪은 일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커럼포의 왕 로보'다. 미국 뉴멕시코의 커럼포는 로보라는 이름의 늑대가 지배하고 있다. 로보는 수백, 수천 마리의 양, 염소, 개 등을 물어죽이고 사냥하며 커럼포의 목장주들의 골칫거리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에게 초청받은 시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로보를 추적한다. 강력한 독약을 정성스럽게 만든 미끼에 설치하고, 비싼 덫을 놓았다. 하지만 로보는 시튼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보다 영악해서, 그 어떤 미끼도 물지 않고, 덫도 피하며, 오히려 사람을 조롱하듯 그 위에 똥을 싸놓기까지 했다.

시튼은 사냥꾼이면서 동시에 동물학자였다. 그는 로보의 무리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감히 로보를 앞서나가는 어떤 늑대가 있다는 것. 암컷이었다. 시튼은 그 늑대가 로보의 짝임을 직감한다. 흰 털을 가진 아름다운 암컷 늑대 블랑카. 블랑카를 잡으면 로보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적중했다. 블랑카의 시체를 찾기 위해 로보는 평소라면 절대 빠지지 않았을 함정으로 달려들었고, 결국 시튼에게 붙잡혀, 물과 음식을 모두 거부한 채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영국의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인 윌리엄 그릴은 너무도 잘 알려진 이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주로 색연필을 이용한 따스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필치로 로보와 블랑카, 로보의 무리, 사냥당하는 동물들, 그들을 추적하는 시튼의 모습을 담아냈다.

단지 그림만 다시 그린 게 아니다. 그는 시튼이 로보를 사냥해낸 후 늑대 보호 운동가로 변신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맞이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튼이 깨달은 바, 로보가 가축을 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이 늑대의 먹잇감이 되어야 할 다른 야생동물의 씨를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윌리엄 그릴의 로보 이야기는 시튼의 원작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그것을 오늘날의 맥락에 맞게, 야생의 피 냄새를 파스텔톤으로 지워내면서 환경과 생명에 대한 고민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커럼포의 왕 로보>는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며, 고전의 리메이크라는 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몇 개의 고민이 뇌리에 남는다. 시튼은 로보를 죽이고 나서야 늑대의 '보호'를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윌리엄 그릴은 그 이야기에 다시 한 번 현대적 맥락을 부여했다. 그런데 그것은, 늑대의 야생성을 이미 거세한 후에 벌어지는, 안전한 '애도'의 행위가 아닌가? 우리는 이미 정복한 자연만을 '보호'하며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어네스트 시튼의 로보 이야기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시대적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수많은 갱스터물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바, '남성미를 뽐내는 마초가 짐덩어리밖에 안 되는 철없는 여자를 사랑해서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죽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의 몰락을 위해 종종 포르노적으로 학대당하는 여성 캐릭터의 원형을 암컷 늑대 블랑카가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맥락 속에서 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처음부터 '불편한' 이야기이며 우리를 고민하고 사색하게 만든다. 바로 그런 면이야말로 <커럼포의 왕 로보>를, 윌리엄 그릴의 것이건 그 원작이 되는 어니스트 시튼의 것이건, 두고두고 되짚고 곱씹어야 할 걸작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016.11.15ㅣ주간경향 1201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11090916411&code=116

탄핵 역풍? 노무현을 모욕하지 마라

노무현은 왜 탄핵을 당했을까? 대통령이기 이전에 변호사였던 노무현은, 본인의 발언이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 왜 공개적인 경로로 자신이 속한 신생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던 것일까?

물론 일각에서는 그가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일부러 대통령 탄핵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선거 개입'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도전이었음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간과하는 듯하다. 그는 대통령이 한 사람의 정치인이자 정당인으로서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이다.

우리는 1987년까지, 그리고 어쩌면 그 이후로도, 지속적인 정권의 선거 개입을 목격해왔다. 그러므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무조건적으로 막아야 할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만들어진 공직선거법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얼마 전 치뤄진 미국 대선에서 전례 없이 높은 임기 말 지지율을 자랑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유세장을 찾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연설을 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라고 클린턴을 소개하고, 상대편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면서, 클린턴의 약점인 '인간적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이다. 심지어 영부인 미쉘 오바마까지 동원해가며 말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의 경우, 권력 기관의 '선거 개입'은 오히려 야당 후보를 돕기 위해 벌어졌다. FBI 국장 제임스 코미가 이른바 '이메일 게이트'에 대한 재조사를 거론하면서 막판 부동층이 투표를 포기하거나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클린턴이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 예상되었던 모든 경합주를 빼앗기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제를 택하는 민주 국가의 경우, '선거 개입'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FBI, 경찰, 국가정보원, 기무사, 기타등등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이루어지는 그런 '선거 개입'이 첫번째다. 우리의 헌정질서는 바로 그런 '선거 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두 번째의 '선거 개입', 즉 여당의 당원인 대통령이 공개적인 발언 등을 통해 여당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선거 개입'도 있다.

노무현의 의지는 첫 번째의 '선거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대신, 두 번째의 '선거 개입'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노무현은 자신이 탄핵당하게 된 사유 그 자체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또 대통령의 신분으로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이유다.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대통령은 '공직자'이기 이전에 '정치인'이므로 정치적 활동을 금지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발언'에 대한 제약이 존재한다면 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활용하여 선거에 개입할 유인동기를 갖게 된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개선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발상이다. 국민에게는 결사의 자유가 있고, 대통령 또한 국민이며, 따라서 선출직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헌법적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을 제외한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통령의 선거 개입 '발언'을 허용한다. 다만 권력기관을 동원한 음성적 '개입'을 철저히 금지할 뿐이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

노무현의 선거법 위반은 이렇듯 그 자체가 헌법적,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판단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설령 노무현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자체가 논쟁할만한 사안이라는 것만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은 '다른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었을 뿐, 민주적 헌정 질서 그 자체를 부정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의 국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민주주의인가'의 문제지, 민주주의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안이 아니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발의될 때부터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았던 것이다. 탄핵안이 발의된 2004년 3월 9일 당시의 신문을 인용해보자. "조선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9일저녁 전국 성인 714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한 결과 탄핵반대가 53.9%, 찬성이 27.8%였다."(링크)

심지어 국민들은 그 탄핵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같은 기사를 더 읽어보자.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의 통과를 전망하는 답변자는 24.4%이며 부결을 전망하는 답변자는 50.3%였다." 왜냐하면 애초에 대통령을 탄핵할만한 '깜'이 되지 않는다는 게 누가 봐도 명확한 경우였기 때문이다. 다만 "노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은 60.8%이며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은 30.1%로 조사됐다." 그는 사과하지 않았고, 발의된 탄핵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어 헌재로 향하게 되었다.

탄핵 불가론 등을 운운하는 야권 내 주류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박근혜-최순실-우병우 국정 농단 사건과, 노무현의 '선거 개입' 논란이, 당신들의 눈에는 동등하게 보이는가?

전자는 두말할 나위 없는 국정 농단이다. 최대한 빨리 그들을 처벌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후계자에게 합법적으로 넘겨야 하는 사안이다. 반면 후자는 '지금과는 다른 민주주의'를 꿈꾸던 이상주의자가 대통령 당선 이후 새 당을 만들더니 기존의 민주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 외 보수 세력을 자극하면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특히 구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대북송금특검에 뒤이은 열린우리당 창당과 대통령의 입당은 굉장히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그것은 어쨌건 최순실-우병우-김기춘 일당의 국정 농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말이다.

실제로 국민들은 현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매우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정치권 내부의 갈등이 오작동하고 불거졌던 2004년의 경우와 달리, 현재 국민들의 60퍼센트 가량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당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탈당하고 여야 합의 총리에 국정을 이양해야 한다는 의견은 18.4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며,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병준 국무총리 임명자가 중심에 서서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14.1%에 불과하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제1차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던 10월 25일 조사에서는 ‘자진 사퇴 및 탄핵’ 의견이 42.3%를 기록했고, 1주일 후인 최순실씨가 긴급 체포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던 11월 2일 조사에서는 55.3%로 10%p 이상 더 늘어난 데 이어, 역시 1주일 후인 이번 9일 조사에서는 60.4%를 기록하며 25일 조사 대비 20%p 가까이 ‘자신 사퇴 및 탄핵’ 여론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링크)

놀랍게도, '이 탄핵'과 '저 탄핵'이 뭐가 다른지, 왜 다를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그저 '탄핵 역풍'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다름아닌 노무현의 이름과 이상을 내걸고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과 그 정치인의 지지자들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다가 탄핵을 당했는데, 그의 유지를 받든다는 세력은 누가 봐도 잘못된 짓을 하다가 탄핵을 당하게 생긴 악당들과 노무현을 등치시킨다. 그들에게 '이 탄핵'이건 '저 탄핵'이건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아니라 그저 '탄핵 역풍'을 안 맞는 것 뿐이라는 뜻이다.

국민들은 '이 탄핵'과 '저 탄핵'이 다르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과거의 그것에는 정당성이 없었지만, 현재의 국정 마비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는 한이 있더라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양자를 혼동하는 세력은 오직, 과거에 '탄핵 역풍'으로 재미를 본 바 있는 사람들 뿐이다. 이 역설은 너무도 받아들이기에 괴롭다. 노무현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사람들이, 노무현을 박근혜와 같은 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에게 2004년의 탄핵은 '떡고물'이 떨어지는 정치적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노무현에게 그것은 끝까지 '쪽팔려'가며 싸워야 할 어떤 민주주의의 싸움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팔아 정치 생명을 이어가는 세력이 본인의 이상을 이토록 진흙탕에 처박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과연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 탄핵'과 '저 탄핵'은 분명히 다르다. '탄핵 역풍'을 걱정하며 똑같은 범주로 싸잡을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의 뜻을 받든다는 이들이 더 이상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2016-11-13

2016/11/06 - 2016/11/12 : 미국 대선과 100만명의 시위

* 현지 시간으로 2016년 11월 9일, 미국에서 제45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졌다. 거의 모든 언론은 여론조사에 기반하여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낙승을 예상하였으나, 결과는 정 반대였다. 경합주에서 모두 패배하였을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등을 빼앗겼다. 11월 13일 현재, 도널드 트럼프는 290명, 힐러리 클린턴은 22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함으로써, 승리를 확정지은 상태다.

2000년 앨 고어가 조지 W. 부시에게 패배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후보는 전체 득표수에서 앞서면서도 선거인단 숫자에서 밀려 백악관을 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간선제 및 승자독식 룰은 연방국가로서의 미국이 택하고 있는 대선의 규칙이며, 수백년에 걸쳐 내려오는 그 규칙을 준수하는 것 자체에서 미국인들의 모종의 숭고함을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민주당측에서 정권을 잡고 있을 때에도 수정하지 않고 동의하였던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이민자 뿐 아니라 장애인까지 거리낌없이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에게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고발이 선거 운동 기간 중에 빗발쳤고, '그랩 바이 푸시' 녹음이 공개되었으며, 탈세 의혹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요컨대 그는 미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미국적 가치'의 거의 모든 것을 배반했다.

투표율이 50%선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전체 득표수에서 클린턴이 더 많은 표를 얻었으므로, '미국인 전체'가 트럼프에게 동의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치 역시 독일연방의회의 과반 의석을 단독으로 점유해본 적이 없다. 선거는 특정 집단 내의 절대 다수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 다수가 의사결정권을 가져가기 위해 치러진다. 트럼프의 발언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더라도 묵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의사결정권을 적어도 4년간 가져가게 되었다.

이에 대한 분석은 단번에 끝날 수 없다. 특히 미국 대선이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나는 계속 관찰하고, 분석하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부정적 영향과 맞설 것이다.


* 1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최순실 등 비선들의 국정 농단을 규탄하는 제3차 촛불시위가 개최되었다. 경찰은 늘 그렇듯 참가 인원을 수십만명 선으로 낮게 추산하였으나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120만여명 가량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기존의 그 어떤 도심 집회보다 많은 숫자다.

토요일의 초대형 집회 이후 정치권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비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안철수, 이재명, 박원순 등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이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상태이며, 여권의 움직임이 보이자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역시 조금씩 하야 요구 쪽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한편 더민주의 주류 세력은 대통령 탄핵 요구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위 후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실상 하야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정치권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2016-11-12

박근혜를 사면하라

한 가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사임하지 않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의 뒤를 이어 대권에 도전하고 안위를 보호해줄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노태우가 있었기 때문에 직선제 개헌 수용이라는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대중적 인기와 후광이 돌아오게 한 후 퇴임했고, 노태우는 대통령이 된 후 3당합당을 통해 김대중과 '재야'를 제외한 반대파를 모두 흡수했다.

물론 여당의 일원이 된 김영삼이 결국에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으로 보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5공 세력에게는 나름의 탈출 전략이 존재했으며 그렇기에 직선제 개헌을 수용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넓게 잡아 친박에게 주어지지 않은 정치적 선택지가 바로 그것이다. 친박(이라는 게 뭔지 현재로서는 대단히 아리송하지만)은 마치 박근혜라는 텅 빈 인물을 데려다놓고 대통령으로 만든 후 권력을 잡았듯, 반기문이라는 또 다른 텅 빈 인물로 그 자리를 채워넣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기름장어는 박근혜의 지지율이 거덜나자 재빨리 손을 떼는 모양새이다.

박근혜에게는 퇴로가 없다. 단지 정치적 수명의 문제가 아니다(애초에 박근혜라는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정치적 야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 듯하고). 지금 하야하면 곧장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아주 원초적인 공포심이 박근혜의 결단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야권의 대선주자들 중 일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조건으로 사면을 약속해야 한다. 특히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일수록 그러한 유화책을 내걸 때 박근혜의 사임을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가 잘 지적하고 있다시피, 1) 박근혜는 헌법적 정당성을 가진 대통령이며 2) 시민사회는 불법적 쿠데타를 저지르지 않는 한 그를 끌어내릴 수 없다. 다시 말해 3) 박근혜가 임기를 끝내지 않고 조속하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가 스스로 사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뿐이다.

이 시점에서 시민사회와 대통령의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대통령과 청와대가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직도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인사권이 있고, 국정원과 일베 같은 초특급 정보 기구들도 그의 수중에 있으며, 길거리에서 덜덜 떨면서 시위해야 하는 시민들과 달리 대통령은 따뜻한 청와대에서 눈 감고 귀 막고 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명박도 그런 식으로 '소나기가 지나갈' 때까지 버텼다. 박근혜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가 잔여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경찰과 검찰은 그냥 청와대의 편을 드는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최근 몇 주 동안 경찰의 태도가 눈에 보이게 유순해졌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권력기구이며, 청와대의 편이다. 단지 지금 여론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시위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개인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과, 그를 청와대에서 끌어내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박근혜는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최대한 청와대에서 버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를 감옥에 보낼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여기서 누군가는, 적어도 '정치인'이라면, 박근혜에게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면 사면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물론 수많은 이들에게 비난받겠지만, 현재 '쪽팔려서' 여당을 지지하지 못하는 부동층들의 여론을 수습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우병우와 최태민 일가 및 김기춘의 비위를 최대한 밝혀내고 처벌할 수도 있다.

박근혜를 사면하라. 그리고 그를 청와대에서 쫓아낸 후, 박근혜 외의 모든 악인들을 처벌하라. 이러한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치인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지지하겠다.

2016-11-10

박근혜, 클린턴, 정치인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볼 때 놀랍게도 박근혜와 힐러리 클린턴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박근혜는 클린턴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성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독특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영애' 시절을 넘어 정계에 재입문한 이후의 박근혜에 대해 생각해보자. 박근혜는 '여성스러움'을 무기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박정희가 낳은 삼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사회적으로 활동 가능한'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딸'임을 굳이 강조할 이유가 없다. 그는 중성 명사인 '후계자'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성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 여부를 놓고 9말0초의 진보진영은 한바탕 뜨거운 '논쟁'을 했다. 그런데 그걸 논쟁이라고 불러도 될까? 실상은 '여자로서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말한 최보은에 대한 인간사냥에 가까웠다.

그 인간사냥이 문제였던 것은 최보은의 '지지 선언'의 반어적 맥락을 무시했다는 것 뿐만이 아니다. 최보은을 몰아가던 자들, 대표적으로 김규항 같은 사람들은, 2002년 당시 정치인 박근혜가 지니고 있던 중요한 페미니즘적 함의를 도외시했던 것이다.

얼마 전까지 유효했던 상황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여성의 성 역할'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그러한 역할의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박정희의 생물학적 후계자 중 주류 정치권에서 활동 가능한 유일한 소실이라는 정치적 역할이 박근혜에게 할당되었을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성 역할을 밀어내버렸다.

그러므로 박근혜가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비판을 부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성으로 태어나고 살고 있지만 박근혜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두고 '섹스는 여성이지만 젠더는 남성이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박근혜는 여성의 성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남성'이 되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박근혜가 자의건 타의건 수행하고 있었던 '여성의 성 역할 거부'는 '남성 되기'와 동일시될 수 없다. 힐러리 클린턴의 역사적 대선 도전이 실패로 끝나고 나니 너무도 뚜렷하게 보인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비난과 검증을 당한 대선 후보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얼마나 거센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나긋나긋한 굿 와이프' 따위의 역할을 거부했다. 빌 클린턴의 불륜은 힐러리 클린턴의 '성적 매력'에 대한 온갖 종류의 시시덕거림을 낳았지만, 애써 '사랑으로 결합한 부부'의 모습을 연출해서 보여주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본인의 성별로 인해 남자들이라면 받지 않을 검증과 비난과 모욕을 당한다는 사실을 힐러리 클린턴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비난은 그가 '스마일링 맘' 같은 태도를 취하면, 요컨대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익숙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사회적 태도를 보여주면, 어느 정도 줄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은 언제나 단호하게, 중성 명사로서의 '정치인'의 태도를 고수했다. '정치인'으로서 페미니즘적 의제를 선언하고 또 실천했다. '굿 와이프'로서의 자신을 연출하면서 가부장제와의 타협을 도모하는 대신, 가부장제 사회가 '여자 정치인'을 받아들일 때까지 모욕을 참고 견디며 자신의 일을 하는 편을 택했다.

그렇게 백악관 시절 이후 뉴욕 상원 의원으로서의 경력이 쌓였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이 대단한 정치인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어떤 사회적 역할을 뒤틀어서, 가령 '남자들이 어질러놓은 정치판을 뒤치닥거리해주는 엄마' 같은 역할을 감내하지 않고서, '여성이면서 워싱턴 정가를 주무르는 정치인'이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박근혜가 본의 아니게 도달한 지점도 사실 그와 같았다. 박근혜는 '아줌마'도 '아가씨'도 '엄마'도 아니었다. 한때의 '영애'였지만 성인으로서 정치인이 된 후에는 줄곧 '박근혜'였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물려받은 정치적 상징 자산에 힘입은 것이지만, 사실 정치권 내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모든 여성들이 누려야 마땅한 너무도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박근혜는 '중성 명사로서의 정치인'의 자리를 그냥 획득했고, 그에 딱히 미련을 갖지도 않았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2차 대국민담화에서 그는 '대통령'의 표정을 버리고 '죄송하다고 울먹거리는 중년 여자'를 드러냈다.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고, 실은 멍청하고,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한 게 아니라며 푸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높은 자리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둘러대는 모든 종류의 부정적 성 역할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의 정치적 수명은 바로 그 시점에 끝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중성 명사로서의 정치인'이라는, 그가 평생에 걸쳐 싸워 얻어낸 위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를 수십년에 걸쳐서 사냥했던 적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 전리품만은 절대 내어주지 않은 것이다. 힐러리 로뎀 클린턴이 선거에서 졌다고 눈물을 흘린다면, 다른 여성 정치인들이 '울지 않을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박근혜와 클린턴 모두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되, 사회적으로는 '여성'이 아닌, 어떤 중간지대에서 자신의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정치 경력은 반드시 이 시점에서 끝장이 나야 한다. 다른 한 사람의 가장 높은 유리천장에 대한 도전은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성 역할을 거부하면서 정치적 커리어를 쌓는 여성은 앞으로 더욱 늘어나야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선거는 끝났지만, 나는 여전히 힐러리 로뎀 클린턴을 지지한다. 여성의 사회적 성 역할에 갇히지 않은 채 정치인으로서 이력을 쌓아나가는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의 출현을 두 손 모아 소망하면서 말이다.

2016-11-08

거국중립내각은 최순실의 꿈을 꾸는가

최순실-박근혜-청와대 스캔들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탁한 권력이 엉뚱한 곳에서 휘둘러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권력을 이용해서 무슨 '갑질'을 했건, 어디에서 얼마를 '해먹었'건, 나머지는 모두 부수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문제의 핵심은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도 않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듣도 보도 못한 누군가에게 국가의 핵심적 권력 행사를 위탁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정치권 내에서 무슨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번 스캔들이 터지기 전이라면, 내게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서 이런 저런 계산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 교주에게 빠져 그 딸에게 국정 전반의 전권을 위탁했다'는,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사실로 확인되었으니, 현재로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거국중립내각'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가 야권에서 추천하는 인물인지 아닌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내가 가진 시민사회 및 법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거국중립내각'이건 '편파치중내각'이건 '최순실 내각'이건, 모든 내각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내각을 해산할 권리 역시 대통령이 가지고 있다. 이것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통령의 수많은 권한 중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 중 하나다. 국무총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86조를 살펴보자.

제86조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③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

국무총리가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명을 받아" 이루어진다. 설령 그 '명'이 국정 전반에 대한 포괄적 위임이라 하더라도, 대포폰을 쓰건 비선실세를 만나건 최태민에게 정신과 육체를 모두 지배당하건,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무총리에게 '명'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국무총리는 그 '명'을 거역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다.

'거국중립내각'의 구성요소인 다른 국무위원들은 또 어떤가?

제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②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③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④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국무총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국무위원 임명에 대한 제청, 그리고 국무위원의 해임에 대한 '건의' 뿐이다. '거국중립내각'의 법무부장관이 우병우의 혐의를 유야무야 덮으려고 하는 것을 총리가 파악했다 한들, 그 총리는 자신의 권한으로 법무부장관을 해임할 수 없다. 역시 이 경우에도, 최종적인 결정권은 대통령인 박근혜가 갖는다. 가령 문재인이 총리가 된다 한들, 박근혜가 거부한다면, 조윤선 문체부장관을 해임시킬 수 없다. '책임총리'란 이토록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현행 헌법상 '거국중립내각'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책임총리'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이 총리의 편에 서서 그에게 국정을 일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헌법적 개념이 아니라, 노무현 정권 당시 이해찬 총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통령으로부터 포괄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총리가 누릴 수 있는 한시적이며 임의적인 특권에 불과하다. 박경신 교수의 말을 인용해본다. "우선 새로운 총리가 누가 되었든 그가 권한이양을 얼마나 받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어야 하고 그 총리는 국회의원들이 뽑는 총리 즉 내각제 하의 총리와 유사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된다." 지금 국민들이 야당에 요구하는 것이 고작 '박근혜를 잘 모시는 총리'인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박근혜를 지지했고, 투표했다. 나머지 국민들은 그 결과에 승복했고,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민주적 절차를 통해 주어진 권한을 박근혜는 엉뚱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준 상태였다. 이 모든 상황은 대통령제의 실패도 아니고, 내각책임제를 시작해야 할 이유도 되지 못하며, '거국중립내각'을 통해 유야무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남으로써 해결될 수 있고 해결해야만 하는, 대통령제가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처리해야 하는 '비정상적' 상황일 뿐이다. 대통령제의 원조격인 미국에서도 이미 겪었고, 심지어 대한민국 역시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는, 흔하다면 흔한 대통령 하야 요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하야 요구를 하지 않는가? 왜 하야 요구를 하지 않으며 어영부영 시간을 끌다가, 국회에 띡 방문한 박근혜가 '야 니네가 추천해'라고 띡 던지고 가는 상황을 만들어서 주도권을 뺴앗기는가? 야권은 '최순실 게이트'에 진정으로 분노하긴 했는가? 최순실 일당에게 국정 농단을 허락한 박근혜를 몰아내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 합법적 권력을 획득하는 대신, 박근혜를 식물대통령으로 만들고 자신들이 '비선실세'가 되고 싶어했던 것은 아닌가? 선출되지 않았으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정작 책임져야 할 때에는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낸 후 차지하고 싶어서 '거국중립내각' 타령으로 세월을 허비한 것은 아닌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일개 비리 사태가 아니다. 헌정 질서의 위기다. 국민에게 선택받은 이가 헌법상 주어진 권력을 올바로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주판을 튕기며 스스로를 또 하나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자리에 놓기 위해 골몰하는 야권을, 국민들은 절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정 총책임자는 대통령이지 '책임총리'가 아니다. 정치권은 헌정질서 농단 사건을 두고 또 다른 헌정질서 농단을 모의하는 짓을 당장 그만두고, 헌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을 정상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2016-11-05

2016/10/30 - 2016/11/05: 두 번째 사과, 주필리핀 미국 대사, 파리협정

* 지난달 25일 이른바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와 대통령 취임 전 연설문 개입 등을 시인한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4일 두 번째 대국민담화를 통해 필요하다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하루 전 취임 의사를 밝힌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의 '냉장고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누군가에 의해 현 상황이 조율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여온 국정과제들까지도 모두 비리로 낙인찍히고 있는 현실도 참으로 안타깝"다며, 현재 수사의 대상으로 오른 사안들과 그 외의 비리 의혹 사이에 선을 긋고 있다.

이번 대국민담화의 핵심은 최순실의 혐의를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던 사람의 '개인적 일탈'로 규정지으려 한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권력형 비리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님을 주장함으로써, 대통령직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도. 이것은 검찰의 수사를 통해, 혹은 내부 고발 등을 통해, 뒤집힐 가능성이 충분하다.

또한 "심지어 제가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단언하였다. 이 또한 향후 수사 혹은 내부 증언에 의해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네티즌들은 대국민담화 중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는 구절을 패러디하고 있다.


* 성김 전 대북특별대표가 주필리핀 미국 대사로 임명됐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연이은 공격적 발언 및 그에 상응하는 친중 반미 행보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러셀 국무부 차관보는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는 “작은 난관에 직면했다”며 “양국을 연결하는 우정과 공통의 가치관에 변함은 없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 혹은 태평양 전진 기지였던 필리핀 대사로 성김 전 대북특별대표를 임명한 것은, 미국이 바라보는 필리핀의 지위가 '우방'에서 '불량국가'에 한 걸음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애정, 호의, 동경심을 감추지 못하는 한국의 일부 '진보' 인사들은 미국의 이러한 인사 조치를 보다 진지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 협약인 '파리협정'이 11월 4일 정식으로 발효됐다. 주요 37개 선진국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이 비준을 거부하고 캐나다가 탈퇴하는 등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던 교토의정서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우선 당사국이 총 195개국으로,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미국, 중국, 인도 등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있거나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국가들이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맺었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의 채택이 폭넓게 이루어진 것은 그 어떤 국가도 기후 변화를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평균 기온이 오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안다. 북극의 바다가 여름에 얼지 않고 있다는 것 역시 인공위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투발루 뿐 아니라 뉴욕 역시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다. 위기가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그러나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섭씨 2도씨 내로 제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400PPM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IPCC(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를 비롯한 기후학자들은 그동안 지구의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에 도달하면 지구 생명체의 멸종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파리협정의 준수 및 각계의 노력과 기술적 발전을 통해, 예정된 파국을 지연시키고 막아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2016-11-01

[북리뷰] 만주를 생각한다, 철도를 고민한다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
고바야시 히데오, 산처럼, 1만2천원.

부산에서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유럽의 끝인 지브롤터까지 향하는 꿈.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대륙을 향한 철도의 로망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만주라는 공간, 그리고 그 만주에 철도가 깔리던 그 시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민중가요의 한 구절처럼 '광활한 만주벌판'을 노래하지만, 정작 그 만주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 심지어 몽고인과 러시아인들이 뒤섞이는 점이지대가 되었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의 이해는 아직도 피상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와세다대학 아시아태평양 연구센터 교수인 고바야시 히데오의 책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를 펼쳐보자.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 일명 '만철'은 한때 설립되고 사라져버린 일개 기업이 아니었다.

정식명칭은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南滿州鐵道株式會社). 이 책에서 그 '탄생부터 사망까지' 40년에 가까운 역사를 더듬어보면서 이 회사가 가진 의미를 고찰해보려 한다. 1906년부터 1945년까지 20세기 전반의 반세기를 버텨온 이 회사는 일본 최대의 주식회사로서 중국 동북(東北)지역, '만주'에 군림했다. '만주'의 중요 산업을 지배하고, 철도 인접지역에 '부속지'라는 이름의 '영토'를 가진 이 회사는, 명칭은 주식회사였지만 그 실상은 하나의 식민지 국가였다. 세칭 '만철왕국.' 이 회사는 물론 중국 동북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일본 국내에도 그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15쪽)

마치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영국이라는 국가 이전에 동인도회사라는 한 기업이 먼저 기틀을 다졌던 것처럼, 일본의 만주 지배 역시 일본이라는 국가의 프로젝트였지만 만철이라는 한 기업의 영리 활동의 외관을 빌렸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댓가로 얻어낸 철도 영업권 및 철도 부속지 관할권을 메이지 천황은 만철에 일임했고 야심만만한 일본의 엘리트들이 미개척지를 향해 뛰어들었던 것이다.

만주는 '비어있는 땅'이었다. 청나라가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그 진공에 수많은 세력들이 동시에 빨려들어갔다. 그런 만주에서 철도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기관차와 열차 및 기타 부속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재료를 공급하는 제철소, 그 모든 시설과 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무장 세력까지 포괄하는 준 국가 활동과 다를 바 없었다. 만철의 조사부는 그 모든 과정을 통솔하는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훗날 일본의 대장성으로까지 이어지는 "국가통제와 관려통제를 섞어서 짜낸"(16쪽) 통제경제의 모델을 생산해냈다.

그 여파는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만철 조사부는 1937년부터 '만주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했다. 그것은 30여년 후, 만주에서 관동군으로 군복무를 한 박정희에 의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부활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만주국의 5개년 계획은 안산(鞍山) 제철소와 쇼와(昭化) 제강소를 중심에 두고 중공업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그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 일본으로부터 얻어온 차관과 기술력을 동원해 포항제철소를 건립했던 것이다.

만주국의 관료였던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논의는 이미 몇 차례 등장한 바 있다. 그러나 만주국과 만철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지적 분위기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것 같다. 이 짧고 가벼운 책은 일제강점기 만주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입체적으로 끌어올려주기 위한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해낸다. '광활한 만주벌판', 그곳에는 철도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