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5

[별별시선] 출산율 대책, 여성이 먼저다

아닐 미(未), 죽을 사(死).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을 담아 은퇴 후 고령층을 국가에서 '미사자(未死者)'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대중매체는 '미사자 과잉 사회, 잉여 인구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식의 여론몰이를 일삼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행정자치부에서는 '대한민국 미사자 지도'를 만들더니 지자체별로 순위를 붙여서 공개한다. 인터넷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늙은이들 잡으러 가자', '우리 도시를 고려장 특화 도시로' 같은 '농담'이 횡횡한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가정법이다. 하지만 위 문단을 읽는 내내 아마도 독자인 당신에게는 강한 불쾌함과 거부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국가 경제'를 앞세워 멀쩡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쾌적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고령의 시민들을 '아직 안 죽은 짐짝' 취급하는 내용이 한가득 담겨있었으니 말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대한민국 출산지도'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의 공론장에서 발언하는 그 누구도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장을 부활시키자' 따위의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취급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대신 은퇴 연령 조정이라던가, 연금 정책, 그 외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고령층을 보호하고 그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령층은 '인구(人口)이기에 앞서서 '인간(人間)'이다. 인간의 주체성을 박탈하는 사회 정책은 용납될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이 왜 출산율 문제 앞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일까? '대한민국 출산지도'가 공개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남자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듯이 여성들도 출산의 의무를 지고 애를 낳도록 해야 한다'는 칼럼이 버젓이 개제되었다. 인간을 강제로 죽이는 사회 정책이 용납될 수 없듯, 인간을 강제로 낳게 하는 사회 정책 역시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나 정책에서 인권의 기준치가 확 낮아진다. 나치 독일에서나 시행했었던 '의무 출산' 정책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거론되는 그런 나라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2017년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은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니라 인구로, 인구를 재생산하는 도구로만 바라보고 있다. '가임기 여성'들은 단지 자신들의 숫자를 세어서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한 게 아니다. 그 숫자, '빅데이터'를 취급하는 방식부터가 모욕적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여성을 '주체'로, '주어'로 존중한다면,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 '도와주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가임기 여성들의 숫자를 지자체별로 공개한다면 동시에 육아 시설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성별 임금 격차가 어떠한지 등을 함께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가임기 여성들이 어느 곳에서 아이를 낳고 기를지 결정할 때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자료를 공개한 방식은 그와 정 반대였다. 지자체별로 '순위'를 매겼다. 여성을 '목적어'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여성들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지자체를 향해 '출산율을 높이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 순위 경쟁을 위해 여자들이 아기를 '낳게 만들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단순히 통계를 제시했을 뿐이지만 그 숫자가 제시되는 맥락과 방향 속에 너무도 많은 여성혐오와 멸시가 드러나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절실한 것은 '출산율 대책'이 아니다. 여성을 온전히 주어의 자리에 놓는, 한낱 목적어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는 여성 정책이 먼저다. 여자들이 볼 때 이 나라가 아이를 낳아도 되는 나라라면, 아이를 낳을 것이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온갖 여성혐오적 발언을 내뱉는 것이 별 문제 아니라는 듯 받아들여지고 있는 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출산율이 아니라 여성 인권이 문제의 본질이다.

입력 : 2017.01.15 20:54:01 수정 : 2017.01.15 20:55:47

댓글 7개:

  1. 이쯤되면 노정태씨가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았길래 이렇게 젠더의식, 공감능력이 뛰어난건지 궁금할 정도.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보다 가정적이고 수평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젠더의식이나 여성에 대한 이해가 훨씬 열린 편이라는건 대충 알겠는데 아무리 수평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해도 한국 사회에서 자랐다면 이 정도까지 뛰어나기는 힘든데.. 글 볼때마다 정말 신기함. 남들과 매우 다른방식으로 사고하는 분인가? 날때부터?... 아니면 젊을때부터 책읽고 글쓰고 공부하는 사고과정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고대법대..) 저절로 깨우쳐진건가?....이글루스 보니까 2008년 2007년 이때도 인권의식 높았던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건지 궁금합니다. 학창시절때도 성평등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이러셨었나요? 글에서 일체 자기얘기를 안하기로 유명하시니 알길도 없고 참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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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그리고 혹시 강연이나 뭐 그런거 안하시나요. 아님 나중에 책 내시게되면 작가와의 만남 이런거라도 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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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녕하세요.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경기도 부천에서 초중고 모두 공립 교육을 받았습니다. 성장 배경이나 환경 등에 특별한 요소(가령 장기간에 걸친 해외 체류 경험 등)는 딱히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여느 남자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답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보고 있는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진보누리였나 깨끗한 손이었나, 2000년대 초, 아무튼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모이던 사이트에서 성매매 합법화 관련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자유시장경제를 악마처럼 여기던 진보 남성들이, 순식간에 '성판매 여성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합법적이고도 완전한 시장경제'를 옹호하기 시작하던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혀서 싸웠던 기억이 문득 납니다. 제가 왜 여성차별에 대해 발언을 열심히 해왔는지, 그리고 다른 남자들은 왜 '좋은 말씀'을 여성차별과 관련해서는 하지 않거나 이상하게 논의를 비트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철이 들고 사회 문제에 발언을 하기 시작하던 시점부터 저는 좀 그런 분들과 이질적이라고 느끼고 있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유가 '이것이다'라고 딱 짚기는 어려운 것 같네요.

      강연이나 기고 등은 요청이 있다면 대체로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요청이 들어온 것도 없고, 글 한 편을 쓰더라도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주제로 책을 펴낸다면 블로그 및 그 외 경로를 통해 알리고, 피드백을 받아서 제 생각도 교정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리플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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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렇군요. 그냥 노정태씨가 타고나시길 똑바른 눈과 정신을 가지고 나신거네요. 이렇게 사회현상의 이면에 대해 깊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과 또 그걸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게 참 부럽습니다.
      말씀하신 그 사이트에서의 논쟁은 제가 자주 했던 생각과 일치하는 현상이네요. 뭐 (비유가 맞는진 모르겠지만,) 자칭 진보에 야당성향을 자처하시는 분들은 자기가 말콤x 버금가는 인권운동가인냥 행동하면서 왜 유독 젠더문제(여성,동성애자 등)에 대해선 많은것을 차단해버리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또래 애들과 이런 문제에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다가가면 '페미니즘' 이라는 말 자체에 급성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고, 여자들에게 물어보면 제 눈치를 보며 최대한 남자입장에 동의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씁쓸하더군요.
      암튼 친절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논지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한가지 의견을 여쭙고 싶은것이 있는데, 혹시 '은교' 라는 영화나 책을 보셨는지요. 일부에선 그냥 예술로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노정태님 의견이 궁금합니다. 아동성애와 17~19세 정도의 여고생에게 느끼는 성적욕망은 아예 다른부류다(=둘 다 미자이지만 여고생은 성인에 가까우므로 후자는 '그리'악질은 아니다, 때로는 사랑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은교가 만약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었다면 분명 여지없이 논란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질문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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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가 특별히 뭐가 잘났다기보다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패턴이 있는데 저는 그 패턴을 따라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연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미성년자 여성을 다루는 태도는 여성차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바와 달리 한국 사회는 심지어 초등학생 여성도 '자발적'으로 성행위를 할 수 있고 그러므로 남자가 법의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늘 배려하고 있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812369

      초등학생 여아가 20대 남성의 애를 낳았는데 거기서 '자발성'을 논하고 '가족의 행복'을 운운하는 사회. 다시 말해 보호의 대상이어야 할 아동/청소년의 경우에도 일단 '남자의 부속물로서의 여자'가 되고 나면 사회적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사회, 그게 한국 사회입니다. 아직도 근대적인 연령 개념, 개인의 성장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보호,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뿌리내리기는커녕 이렇게 제도적으로 짓밟히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만 보고 소설은 읽지 않았습니다만, 같은 작품이 10대 여성들이 처한 취약한 처지를 강화하는데 일조해왔다는 점을 부정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편 의 주인공이 고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이었다 해도 그 작품을 두고 '예술' 운운하는 분들은 계속 '예술'이라고 우겼을 것이며, 논란도 똑같이 발생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링크한 기사에서 잘 드러나듯, 한국 사회는 하이틴 뿐 아니라 로우틴 여성들 역시 성적 대상화를 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현실은 반드시 바뀌어야만 할 것입니다.

      좋은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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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와; 저 기사는 굉장히 충격적이네요. 십대 후반의 여성만 성적 대상화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간과한 듯 하네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에대한 잣대나 편견, 대상화가 미성년자에게도 차별적 잣대로 그대로 들이밀어진다는게 씁쓸하군요. 여성과 사람을 따로 규정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근대적인 연령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뿌리내려지지 않았다는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십대 여성을 두고 옛날이었으면 벌써 애를 몇명나았을 나이다, 옛날이었으면 그리 어린나이 아니다 하면서 성적대상화 합리화하는 말 많이 봤는데 여기에 딱 들어맞는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사실 누나가 읽어보래서 노정태님 글을 접하게 됐습니다.(누나가 노정태님의 열렬한 지지자입니다;) 꽤 전에 쓰신 평가 당하는 자의 괴로움 이라는 글 보고 정말 반성 많이했습니다. 누나가 왜 그렇게 노정태님 글을 찬양했는지 좀 이해가 됐습니다. 제가 참 간과하며 살고있는 점들이 많더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시면 꼭 챙겨 읽고 싶네요. 유치한 댓글에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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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네, '여성'을 '사람'으로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것이 이 모든 문제의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러니 살인사건이 나도 남자가 여자를 죽이면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할 요소를 찾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를 혹은 다른 여자를 죽이면 가해자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없이 신상털이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위에 링크된 기사의 소녀도 '학생'에서 '(이미 임신하고 애를 낳은) 여자'가 되자 청소년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당위가 여자니까 그런 일을 겪어도 된다는 야만적 경향성에 묻혀버린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언론에 보도되었고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말입니다.

      방문자의 누님께서도 제 글을 즐겨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일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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