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6

필립 풀먼에게서 배우는 글쓰기 수업

작가 필립 풀먼은 새로운 3부작 <먼지의 책>(The Book of Dust) 가운데 첫 번째 편을 깜짝 발표하면서 리라 벨라쿠아(Lyra Belacqua)의 세계로 돌아왔다.

<아름다운 야수: 먼지의 책 1권>(La Belle Sauvage: The Book Of Dust Volume One)은 풀먼의 71번째 생일에 맞춰 목요일에 출간되었다. 그가 앞서 내놓은 3부작의 후속작으로는 17년만이다.

<황금나침반> 시리즈의 리라는 중요 인물 중 하나로, 이야기는 리라가 생후 6개월이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수녀들 틈에 숨어 있는 리라의 삶에 11살 소년 말콤 폴스테드가 끼어들어, 그의 카누인 아름다운 야수에 리라를 태우고 보호해주게 된다.

풀먼을 이토록 성공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 갓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그가 건낼 조언은 무엇일까?

BBC와 마주 앉아, 풀먼은 그의 행운의 펜에 대해, 그리고 전동드릴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일할 수 있지만 왜 절대 음악은 안 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1. 캐릭터가 스스로를 드러내게 하라.

그것은 신비로운 과정이다. 물론 나의 일부는 그들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만들어내든 것과는 다른, 발견하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더 나은 단어를 찾아 종이 위에서 펜이 움직일 때까지 책상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이 과정을 신비롭게 포장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느낌은 발명보다는 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마치 이야기가 이미 그곳에 있고, 내가 그것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말하는 최선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과 같달까.

이 희한한 일에 대해 내가 모든 것을 확실히 안다고 할 수는 없고, 실은 어떤 식으로 장담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의혹에 빠져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2. 언제나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황금나침반> 시리즈를 끝내고 난 후,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황금나침반> 시리즈에서 말한 리라의 이야기는 결말로 향하고 있었고, 끝났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이 늘 존재한다. <황금나침반> 시리즈가 끝날 때 리라는 고작 12살이었을 뿐이다. 성장하고 어른이 될 것이다.

리라에게는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무언가를 해낼 것이다.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말하자면 내 시각의 바깥에서, 내 눈이 닿는 구석 너머에서, 나는 내 흥미를 끄는 다른 캐릭터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점점 내 펜이 그 이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 퍽 많은 일들을 해오고 있었지만, 이 새로운 이야기의 설득력과 재미가 너무도 강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캐릭터들이 너무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3. 자신에 차 있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음악을 듣지는 마라.

나는 (내 글이)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 이 정도면 되겠네" 정도다.

글을 쓸 때 나는 사실 의미보다는 소리를 더욱 의식한다. 어떤 단어가 문장에 들어갈지에 앞서 문장이 어떤 리듬으로 흘러갈지를 먼저 알게 되는 편이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방식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음악이 틀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글을 쓰지 못한다.

어떤 작가들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나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고요한 상태는? 좋다. 전동 드릴 소리는? 괜찮다. 교통 소음? 문제 없다. 하지만 음악은 절대 불가다. 그러므로 나는 고요한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리듬을 들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4. 어조(tone)가 구조보다 더 중요하다.

글이 흘러가는 방향이라면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글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 그렇다, 나는 그런 식이다. 하지만 나중에 구조가 잡힌다. 종종 구조를 어떤 근본적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

구조는 피상적인 것이다. 책에서 근본적인 요소는 어조, 말하는 어조이며, 그것을 바꾼다는 것은 모든 문장을 바꾸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구조는 최후의 순간에 바꿀 수 있다. "중간부터 시작하겠다"라던가, 그런 비슷한 말은 가능하다. 구조는 존재하는 것이지만 뒤따라온다고 할 수 있다.


5. 가장 좋아하는 펜을 골라라.

일단, 나는 볼펜과 종이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이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행운의 펜을 가지고 있다. 몽블랑 볼펜이다. 무게와 크기가 완벽하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리고 잘 작동한다. 그 볼펜으로 여러 책을 썼다. 이제는 그 볼펜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만약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단 글을 쓴다. 그리고 한 챕터나 두 챕터를 쓸 때마다 컴퓨터로 옮긴다. 지금껏 발명된 편집 도구 중 최고의 것이기 때문이다.


6. 자신을 위해 써라.

글을 쓸 때는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다른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란 누군가에게 읽힐 때까지는 온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그 상호작용에서 독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읽고 싶은 것을 읽어야 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쓴다. 지금껏 있어온 모든 '나 자신들'을 위해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나부터, 처음으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던 나, 50년 전에 옥스포드에 있었던 나, 학교 선생으로 일했던 나, 교실에서 이야기를 해주던 나.

이 모든 나 자신.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나는 넓은 독자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운이 좋았다. 그 독자들 속에 어른과 아이가 모두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원문: "Philip Pullman: Rules of writing from man behind His Dark Materials", BBC, 2017년 10월 19일.

개인적으로 4번이 가장 인상적이다. 소설 뿐 아니라 기타 분야의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저 구절을 갈무리해두려는데, 혼자 보는 자료 모음집에 담아둘까 하다가, 전문을 번역하여 블로그에 올려둔다.

댓글 6개:

  1. 저는 1번. “마치 이야기가 이미 그곳에 있고, 내가 그것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말하는 최선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과 같달까.”
    글을 쓰다보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자꾸만 더 발견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죠. 오감이 작동하면서 더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느낌. 그런데 1번과 4번은 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나요?
    댓글을 쓰기 전에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더 좋은 방식을 찾는 것과 어조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고. 더 좋은 방식에 더욱 적절한 동사, 형용사 등의 어휘 선택이나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전개할까와 같은 고민이 포함된다면 이것은 정말 글의 voice tone 과 떼어놓을 수가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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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듣고 보니 1번과 4번이 퍽 가까운 이야기이군요. 말하는 방식이 어조를 결정하거나, 어조가 말하는 방식을 좌우하게 될테니 말입니다.

      요즘은 글쓰기에서 구조를 강조하고, 플롯과 인물 구성과 설계 등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데, 그런 통상적인 분위게와 거리가 있는 방법론이어서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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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현재 미국 중부에 사는데 제 아이들이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 네러티브 라이팅과 실험보고서 쓰는 법 등 글의 종류에 따라 어떻게 쓸 것인지 이곳의 서적을 참고해서 제 아이들의 글쓰기를 봐 준 적이 있습니다.

      계획서를 작성하고 쓰는 방법을 적용해서 글을 쓰면 아이들이 너무 지루해서 오히려 진행하길 힘들어 했습니다. 그럼에도 각자 두번 정도는 계획서를 작성해 보았었죠. 예를 들어 짧은 이야기를 쓴다면 무슨 이야기를 쓸지, 그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을 어떻게 가져갈지, 등장하는 캐릭터는 어떤 성격인지 등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 – 예컨데 마치 내가 지금 보거나 듣거나 만지는 것 같이 느껴질만한 단어를 동원할 수 있을지 등 표현에 대해 얘길 나누기도 했었죠.

      그런데 좋은 평가를 받는 글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글쓰기가 아닌 자유롭게 쓰면서 여러번 다듬은 글이었습니다. 계획 작성의 경험은 이런 훈련의 초반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다음 수준에서는 그 계획조차 일정 정도는 무의식 아니면 대략적으로 구상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내가 쓰려고 하는 주제가 표현하려는 게 무엇인지를 파면 팔 수 록 더 좋은 글이 나왔습니다. 그 사실을 인지한 후엔 계획에 매달리기 보다 주제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자유롭게 쓰면서 더 좋은 구조와 표현을 찾아갔고 그것이 더 효과적이었어요.

      직업적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은 한편의 글에 대해 기승전결 계획을 어느 정도 세우신 다음에 쓰실 것이라 추측합니다. 안그러면 인쇄되기까지의 부담감이 많이 클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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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필립 풀먼이 자신의 글쓰기 인생을 회고할 때 하는 말도 그런 거더라고요. 본인은 '소설'을 쓴다기보다 '이야기'를 한다고. 옥스퍼드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수업 시간이 진도를 다 나갔거나 해서 아이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온갖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그럴 때 사용하는 어휘 어조 전달 방식 등에서 집중도가 확확 달라지는 게 보였고 본인은 그렇게 훈련을 했다고 말입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그의 그런 경험 내지 작가로서의 본인 캐릭터 설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을 '계획형'과 '서술형'으로 거칠게 나눠본다면, 사실 저도 서술형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공들여 구조를 잡아놓아도 제가 쓰는 글의 흐름에 제가 끌려가는 일이 더 많더라고요. 역사가 E. H. 카도 좀 그런 유형이었다고 하고요. https://basil83.blogspot.com/2017/05/e-h.html

      반면 극단적인 '계획형'의 사례로는 영국 역사가 토니 주트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재미있어서 이 블로그에 옮겨놓았었어요. 심심하실 때 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ㅎㅎ https://basil83.blogspot.com/2016/07/blog-post.html

      사실 숫적으로 보면 '계획형'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이지만 딱히 증거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사례도 제 가설에 부합하는 것 같지만 말이에요. 뭐, 결국 방향이야 어찌됐건, 많이 쓰는 게 가장 중요할테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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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즉각 "좋아요!" 를 누를 수 없어서 정말 아쉬운 댓글이예요. ㅎㅎ
      이전에 쓰신 글들은 찾아서 읽진 못했는데 이 기회에 링크 타고 가서 읽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그럼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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