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끼어들 될 수 있다는 건 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 정부일 거라고는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We always knew there would be politics involved. We never thought it would be out government."
망치를 잡은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빌 게이츠는 순순히 인정한다. 자신의 망치는 기술이며, 세상 모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 한다고.
하지만 천하의 빌 게이츠도 정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세상을 구하는 가장 중요한 승부처인 기후변화와의 싸움 앞에서. <인사이드 빌 게이츠> 를 3부까지 다 본 후의 소감이다.
3부는 빌 게이츠가 만든 원자력 벤처 기업 테라파워의 홍보 영상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럴만도 하다. 사람들이 워낙 싫어하고, 두려워하면서, 정작 알고자 노력하지도 않는 분야가 바로 원자력이기 때문이다.
테라파워에서 설계한 진행파 원자로는 지금까지 '핵폐기물'로 취급하던 사용후핵연료를 연료로 삼는다. 미 정부가 보관중인 '핵폐기물'을 연료로 쓸 수 있고, 지금껏 저장된 '핵폐기물'을 통해 미국 전체가 125년간 사용할 에너지 전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막대한 가능성 앞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굉장한 일이다.
물론 본인이 개발한 아이템을 세일즈하는 사람의 말이긴 하다. 그러나 1) 인류 전체가 쓰고 남을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2) 이산화탄소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고 3) 사고가 발생한다 한들 원자로가 자체냉각되는 원자력 발전소가 개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빌 게이츠는 온갖 천재들을 끌어모았다. 그 중에는 <모더니스트 퀴진> 시리즈로도 유명한 네이선 미어볼트도 포함되어 있다. 그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직접 검색을 해보시라. 아무튼 빌 게이츠와 테라파워의 입장은 확고하다.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테라파워는 온갖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진행파 원자로의 개념 설계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완료했다. 2015년 시진핑을 만나 중국에 대량 보급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2017년 문재인이 당선되면서 원전 생산의 생태계가 송두리째 파괴되는 중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다른 모든 발전소와 마찬가지로 인프라 건설 사업이다. 여기서 사업성이 맞으려면 생산과 소비에서 규모의 경제를 갖추어야 한다. 빌 게이츠가 생산과 소비를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중국을 찾아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반면 한국은, 중국처럼 막대한 양의 원자력 발전소를 소비해줄 수는 없지만, 지어낼 수 있는 능력은 있다. 테라파워에서 개발한 기술을 얼마나 공유하고 이전할지가 관건이긴 하겠으나, 적어도 현재 표준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경수로의 건설, 유지, 관리 등에 있어서 한국은 독보적인 나라다.
그러나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 '원자력 마피아'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노정태부터 그레타 툰베리까지 모든 인류가 오래도록 안정적인 기후 속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그 가능성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가치를 표방하며 당선된 문재인과, 노동계급의 불만을 들먹였지만 결국 미국 사회의 이주민 혐오를 무기삼아 당선된 트럼프는, 그 점에서 큰 교집합을 그린다.
지난번에 <인사이드 빌 게이츠> 1부를 보고 내놓았던 감상과 이 대목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 많은 문제들은 기술로 해결 가능하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문제는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정치로 수렴한다. 따라서, 천하의 빌 게이츠도, 정치라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류 전체의 미래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탈원전은 철회되어야 한다. 순식간에 많은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집단이 인류의 공존공영을 위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사이드 빌 게이츠>는 우리에게 모종의 자아 성찰의 기회까지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