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3

"모든 사회적 불평등은 길게 보면 수입의 불평등이다."

안도현이라는 사람이 '강남 건물주가 되고 싶은 욕망'을 옹호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내세우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는 '강남 건물주가 되고픈 것은 경제에 대한 것이고 민주주의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니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버트런드 러셀이 1945년에 쓴 책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시피, 부동산을 통해 지대수익을 올리려는 욕망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은 결국 민주주의를 배반하게 되어 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세습 귀족은 토지가 부를 획득하는 거의 유일한 원천인 곳을 제외하면 권력을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모든 사회적 불평등은 길게 보면 수입의 불평등이다." 버트런드 러셀, 서상복 옮김, 『러셀 서양철학사』(서울: 을유문화사, 2019), 전면개정판, 266쪽.

이 대목에서 생각을 좀 더 이어볼 수 있다. 토지가 부를 획득하는 거의 유일한 원천인 상태를 파괴하는 것, 즉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경제성장을 하는 것은, 세습 귀족을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고상한 도련님들이 '개나 소나 사업하는' 분위기에 현혹되어 집안 재산을 들어먹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민주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게 세습 귀족을 파괴하고 돈을 번 자본가들은 추후 지대추구에 몰두하며 세습 귀족의 자리를 대체하려 들 것이다. 그것을 막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닐까?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활기를 유지하면서, '쌓인 부'가 언제나 새롭게 파괴되고 또 다시 생성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

나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봉건적 압제를 파괴하는 무기로서 작동할 때, 오직 그럴 때에만 지지한다. 사회를 고착시키고 사람들을 주저앉혀 종속시키고자 하는 권력의 의지와 맞서는 도구가 될 때, 그럴 때에만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돈 가진 자가 건물 사놓고 떵떵거리며 타인에게 모멸을 주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저 강남좌파들의 '민주주의'에, 나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며 자본주의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 6개:

  1. 1) 건물주 그중에서도 강남의 모든 건물주는...
    당연히 '아무것도 안하고 떵떵거리며 살고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인간' 일까요?

    2) 설마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그리도 일천하지는 않을텐데..
    그렇다면 역시 모든 인문학은 애써 순진무구한 척하며 인간의 본질을 모르는 듯
    코스프레하면서 대중을 선동하는 걸까요?

    모르겠는데 너무 궁금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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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강남의 모든 건물주'가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람은 아니죠. 하지만 강남의 건물주 되는 게 목표라던 정경심 씨는 아무렇지 않게 타인에게(가령 경비원) 모멸감을 주더군요. '수위아저씨 혼나는 꼴 보고 싶어요?' 라면서.

      2)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면, 남편은 청와대에서 반일 선동할 때 부인은 반일 테마주 차명 구입하는 등의 행동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나요?

      저는 리플 남기신 분의 속내가 너무 뻔히 보입니다만, 수사학적으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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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찌보면 강남 좌파들의 한계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그들만큼 관념론으로 무장한 유물론자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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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물론은 인간의 동물적인, 물질적인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고, 그런 식으로 해석되어서도 안 되죠. 하지만 한국의 강남좌파들은 그걸 '먹고 사는 이야기'라고 단순화한 후, '그러므로 내가 나 잘 먹고 잘 살자고, 내 새끼에게 물려주자고 하는 짓은 모두 정당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들의 위선 이면의 철학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독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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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의합니다. 철학의 문제지요.

      노파심에 첨언하자면 '관념론으로 무장한 유물론자'는 '위선적인 탐욕꾼' 이라기보단, 소싯적에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마르크스와 루카치의 유물론을 탐독했다가, 나중에는 그들의 언어 자체만 암송구절처럼 외우며 '자본주의 돼지' 가 되는 걸 비꼰 표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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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러니까요. 그나마 자신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반대했다가 따르고 있다는 걸 인식하면 나름 윗길이고요, 많은 경우는 '이렇게 되어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향한 자기연민에나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어쩌면 좋은 문학이나 기타 서사 창작물의 역할은 바로 그런 꼴을 연출하고 있는 스스로를 돌이켜볼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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