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주류 교체? 꼰대 교체!

이번 총선을 ‘주류 교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꼰대 교체’가 더 맞는 표현입니다. 왜 꼰대냐고요?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시죠. 1992년 총선,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역감정을 유발시켜서 총선에서 이겨먹겠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민주자유당이 이겼죠. 왜냐? ‘우리편’이니까 옳건 그르건 찍어준다는 꼰대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운하, 김남국, 최강욱,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울산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이라던가, 팟캐스트 여성 모욕 발언이라던가, 이런 게 국민들에게 다 알려진 상태에서도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올드 꼰대들이 주춤한 사이, 뉴 꼰대들이 묻지마 투표를 해서 아니겠습니까?

왕년의 꼰대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빨갱이들은 안 돼, 김대중이는 안 돼, 뭐 그런 것 말이죠. 그들은 그런 소리를 찍찍 내뱉고는 다짜고짜 1번을 찍으러 갔습니다.

지금의 꼰대들과 다를 게 없죠. 새누리당은 안 돼, 쟤들은 수꼴이니까 안 돼, 안철수도 안 돼고 심상정도 안 돼고 다 안 돼, 아 몰라 나는 청와대가 선거개입했다는 증거가 수두룩해도 문재인한테 힘을 실어줄 테야…

한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째 나라 수준이 1992년과 다를 바 없을까요. 황운하가 국회의원 당선되는 2020년이, 정형근이 국회의원 당선되던 1996년과,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저는 제가 이런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힘을 가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줄 알았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최근 뼈저리게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웃으며, 힘내서 살아봅시다.

2020-04-18

인류를 위한 일회용품

가령, 한 여고생은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문제를 인식했지만, 같은 반의 친구들 중 같은 문제를 인식한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E-Participation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만남을 통해 통해 사실은 플라스틱 빨대를 만드는 기업들이 2~30년 전까지만 해도 단순 이익을 창출하려는 기업가가 아니라 소셜 기업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B형 간염의 바이러스가 대만의 큰 고민거리였고 ,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해 플라스틱 식기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사라졌고,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강현숙, 오주영, "[인터뷰] 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2)", 2020년 4월 10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뉴노멀’이 도래했다는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이것은 ‘뉴’도 아니고 ‘노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존재를 잊고 살았던 최근 수십년간이 비정상이었을 따름이다.

투표장에서 비닐장갑을 나눠주는 것이 환경오염이라고 근심하던 분들이라던가, 스타벅스의 종이 빨대(주여…)라던가, 온갖 이슈들 속에서 문득 이런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재미있어서 적어두고 혼자 보기 아까워서 블로그에도 올린다.

오드리 탕: 공무원의 역할

우선 공무원이 책임져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첫번째는 확실성이다. 상수도와 인터넷이 끊김없이 제공되도록 하는 것도 확실성이다. 두번째는 정의와 균등함이다. 모두는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며 사회정의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한다. 세번째는 민주주의 의지에 대한 반영이다.

공무원의 역할은 민주주의 의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뀔 것이다. 10년 뒤에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대신 직접적으로 민주주의적인 행동을 할 것이며 더이상 디지털 장관 같은 역할이 필요없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머신러닝과 자동화 등이 공무원들이 하는 업무 중 ‘확실성’과 관련된 업무들을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10년 후 공무원의 역할은 공공의 가치를 찾아 사회정의가 유지되도록 하는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지위가 다르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공공의 가치를 구성원들이 찾아내고 관련 규범을 만드는 데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역할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강현숙, 오주영, "[인터뷰] 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 (3)", 2020년 4월 10일.

‘디지털 시대와 공무원의 역할’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텍스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축에 속한다. 공무원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며 왜 해야 하는가? 기술 발전에 따라 그 일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며 어떤 식으로 존속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을 품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

2020-04-16

아직 개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2004년 총선, 노회찬이 소수점 차이로 김종필을 꺾고 국회에 입성했던 그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이 급성장하여, 마치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리버럴 파티를 압도하고 보수당과 양당 구도를 이루는 미래를 꿈꿨다.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아무리 원숙했다한들, 정의당이 된 민주노동당이 NL 주사파 주류가 떼어준다고 꼬여낸 비례 의석 몇 개에 눈이 팔려, 원칙이고 뭐고 다 갖다바치며 공수처같은 악법에 동의할줄은 몰랐을 것이다.

개표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찌되건, 이미 내 피는 식었다. 내가 현실 정치에서 희망을 보던 나날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2020-04-13

중국 자본주의와 코로나 19

2003년 사스도 그렇고 이번 바이러스 대란은 중국이 무책임한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개방을 시작할 당시 이미 경제적 기반이 있는 부농들이 일반적인 농업을 선점하자 빈농들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그 대책으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아무 생각 없이, 현존하는 모든 동식물을 천연자원으로 간주하여 채집 수렵 매매를 원천적으로 허가합니다.

그래서 특히 내륙의 밀림과 맞닿은 우한시 등이 야생동물 밀렵(도 아니죠 사실) 거래의 천국이 되었고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겁니다.

이건 제 뇌피셜이 아니라, 중국계 미국인 학자를 인터뷰한 미국 언론 Vox의 보도 내용입니다.

"How wildlife trade is linked to coronavirus", Vox, 2020년 3월 6일.

중국이 '서구 자본주의' 국가처럼, 야생동물 밀렵을 금지하고 매매를 엄금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10여년 단위로 새 바이러스가 퍼지는 일은 없었겠지요. 공산주의를 빙자한 극단적 자본주의의 인류적 민폐라고 봅니다.

좋은 시장경제, 바람직한 시장경제라면 시장에서 매매해도 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후자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자칭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는 양자의 구분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그냥 돈이면 다 되는 아수라장인 셈.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이런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아무거나 영리활동의 대상으로 만들어주니, 온갖 야생동물을 잡아서 비위생적으로 유통하는 시장이 생겨버린 겁니다.

저는 이번 판데믹의 전개를 보며 '인간의 탐욕'과 '자연의 회복 능력'의 대립 구도를 상정하는 논의가 매우 불편합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건 2년 후면 인류 전체 인구의 60%가 감염되면서 끝납니다. 스페인 독감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 경우도, 최악이라 해도, 그렇게 끝납니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지배할 것이고, 인류는 화석 연료를 활활 태울 것이며,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의 작동 원리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일부 한국인들은 '바이러스 앞에 죽어나가는 선진국 시민들'을 보면서 뒤틀린 만족감을 느끼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정리해보겠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는 자연의 복수가 아닙니다. 통제되지 않은 중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더 잘 제어되는 시장질서와 경제 윤리, 그리고 원시림과 야생동물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 하는 '서구적 자연 관리' 개념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2020-04-12

21대 총선 과정에서 확인된 몇 가지

  • ‘소수 정당을 우대하는 제도’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도 결국 정치 지형은 정치인과 유권자가 만든다.
  • 우리가 잊고 있던, 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을 둔 소선거구제의 장점.
    1.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유권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2.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후보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3. 유권자에게 ‘저 인간 떨어뜨리기’의 권리가 주어진다. 반면,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는 무슨 수를 써도 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떨어뜨릴 수 없다.
  • 애초에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촉진하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부터 물어봐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왜 당위적 선으로 여겨지는가? 어차피 국회에 보내놓으면 거대 여당/야당 따까리 짓이나 하는데?
  • 소선거구제이며 비례대표 따위 없는 영국의 정치.
    • 한국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 UKIP이나 스코틀랜드 국민당 같은 소수 정당이 출현하여, 대중을 설득하고, 민심을 움직여, 소선거구제를 뚫고 의석을 얻어낸다.
    • 그 역동적 과정 속에서 영국은 새로운 정치적 의제와 대립 구도를 얻었다(그 의제가 좋은 의제라는 뜻은 결코 아님).
  • 반면 한국은, 제도만 신나게 뜯어고쳤지, 5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대립 구도 속에서, 현재의 국면에 걸맞는 정치적 의제를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
  • 왜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가? 왜 ‘제도’ 탓이나 하는가?
  • 이것은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2020-04-06

2000년대 초, 인터넷과 페미니즘에 대한 단상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촬영자와 모델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전문가이든 아마추어 동호회원이든 ‘촬영을 거부한 모델’이라는 소문이 나면 사진 업계에 발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관계를 악용해 모델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공개 촬영회가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곽씨의 증언이다.

허정헌, ‘모델이 신었던 스타킹 나눠 드려요’ 도 넘은 촬영회, 한국일보, 2018년 5월 21일.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5211066365076

2000년대 초반. 디씨 부흥기. 월드컵 하고 세상 다 ‘우리 거’라고 믿던 때. 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것이던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을 ‘흑미추녀’ 같은 식으로 조롱하는 영상을 만들고 유포해도 ‘진보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던 시절. 여자니까 박근혜를 지지할 수도 있다던 최보은을 김규항이 두들겨 패놓은 탓에, ‘젖녀오크’ 같은 언어 성폭력에 감히 반발하지 못하던 시절. 다함께 여혐하던 시절.

발기탱천한 진보남들의 부랄발광에 여성들이 장단맞춰주고 남성적 언어의 외피를 둘러쓰고 같이 놀았던, 혹은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 그게 존나 쿨한 줄 알았던 시절. ‘우리’가 이 시점에 ‘힘을 몰아주지’ 않으면 수꼴들이 부활한다는 협박이 날아오던, 그런 시절에 만들어진 여혐 템플릿들.

우파 남자들은 국가의 개입이 싫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라서, 좌파 남자들은 시장주의가 싫지만 가난한 여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면서,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이대 부르주아 꼴페미’를 욕하던 시절. 성매매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좌파 남자’들이 진보 사이트에서 히죽대던 시절.

* 일러두기: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기록 및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예전에 썼던 트윗 타래를 블로그에 적어둡니다.

2020-04-05

코로나의 불똥? 국민국가(nation state)가 귀환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대국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불필요한 이동과 사회적 접촉을 삼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연거푸 전달한 그에게 한 기자가 던진 질문.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은 과연 잘 통제될 수 있겠습니까?’

CNN으로 그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국경 문제, 이른바 ‘백스톱’은, 브렉시트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다수의 영국 언론은 검문소와 담장 등 물리적 국경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영국의 국경은 튼튼한가’를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코로나-19가 뒤집어놓은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국가(nation state)가 귀환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국경 없는 세계주의’를 선으로, ‘자국 중심주의’를 악으로 단정짓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중국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되고 있음에도 중국발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러한 도덕관념에 기댄 것이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슬로베니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에서 의료진이 운전자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이날 슬로베니아 정부는 이탈리아와의 국경을 차단한다고 발표했다./게티이미지

하지만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어도 바이러스 대응에는 국경이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외교 논평가인 기드온 라흐만(Gideon Rachman)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여분간 이어진 대국민 연설에서 단 한 번도 유럽연합(EU)을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은 EU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 독일마저 코로나-19 앞에서 오직 독일 자신만을 챙기는 중이다.

EU는 미국처럼 내전을 치러가며 국방, 치안, 행정 등을 통합하는 대신 그저 같은 화폐를 쓰고 인구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만으로 연방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상주의적 기획이었다. 좋을 때는 좋았지만 힘든 시절이 오니 어림도 없다. <포린 폴리시>의 보도에 따르면, 3월 현재 이탈리아의 발병 건수가 중국을 넘어서고, 성당마다 시신이 넘쳐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EU 회원국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EU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초국가적 공동체의 이상이 무너지고 나니 국민국가의 모습과 개성이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앞서 말했듯 독일은 위기가 닥쳐오자 감정을 배제하고 국민의 60% 이상이 감염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질병과의 총력전에 나섰다. 흔히 프랑스를 ‘시위할 때 자동차를 불태우는 나라’, ‘왕의 목을 자른 나라’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자 마크롱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대국민담화를 통해 친구들과 만나 파티를 벌이는 국민, 특히 청년들을 꾸짖었다. 부르봉 왕가와 나폴레옹, 드골을 거쳐 오늘날까지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의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국가가 아닌 도시나 마을 단위로 귀속감을 느낀다. 최근 화제를 끌었던, 한 이탈리아 시장이 시민들을 향해 조깅하지 말고 개 산책시키지 말라고 화내는 영상을 떠올려보자.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돈 까밀로와 뻬뽀네(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가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가톨릭 신부와 공산주의자 시장의 힘싸움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방국가로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특성 또한 이번 일을 통해 도드라졌다. 지난 3월 27일, 지나 레이몬도 로드아일랜드 주지사는 주방위군을 배치해 뉴욕주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량을 멈춰세우고 격리 조치에 대해 상기시켰던 것이다. 미국은 각 주가 무장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연방국가이며, 남북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그 틀을 지켜냈음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힘은 표준화와 대량생산에 있다. 그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와 일부 언론은 한국의 코로나-19 검사 속도를 소위 ‘국뽕’의 소재로 삼아왔다. 이는 민간 기업이 신속하게 내놓은 5종의 키트를 임상병리사들이 수작업으로 비교하여 만들어내는 결과다. 반면 미국은 3월 31일 현재 자동화된 과정을 통해 엄청난 속도와 정확도로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포드 모델 T처럼 전차를 찍어내고, 돛단배나 요트처럼 군함을 띄우던 저력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영국은, 마치 처칠의 그 유명한 연설처럼,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이 ‘피와 땀과 눈물’뿐임을 천명하고 단결과 희생을 호소하는 중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보리스 존슨이 보좌관들과 설명한 바, 코로나 사망자는 세 종류다. 건강한데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경우, 기저질환이 있고 코로나 때문에 죽는 경우, 의료 과부하로 치료를 못 받아 다른 병이나 사고로 죽는 경우. 코로나-19의 치료제가 없는 현실 속에서 병원에 온다 한들 첫째 경우는 공공의료체계 NHS가 해줄 일이 없다. 아파도 집에서 참아야 한다. 그래야 세 번째에 해당하는, 대구 17세 소년 같은 환자가 제때 필요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집에 있자, NHS를 지키자, 생명을 구하자. 본인도 확진자가 된 후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존슨 총리는 본의 아니게 솔선수범하는 지도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바이러스의 대공습 앞에 국제주의와 탈국가주의의 이상은 온데간데없이, 각국이 뿔뿔이 흩어져 대응하는 경향이 도드라진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수석 경제평론가 마틴 울프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에 ‘윤리적 과제’를 던진다고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기드온 라흐만은 이 사태로 인해 극우 민족주의자와 극좌 환경주의자라는 양 극단이 기승을 부리게 될지 우려한다.

하지만 대만처럼 선제적으로 중국발 입국을 차단한 뉴질랜드는 노동당 출신의 1980년생 여성 총리 저신다 아던의 지휘 하에 사망자를 한 자릿수로 묶어두고 있다. 2015년 완전한 남녀동수 내각을 출범하며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또한 해외 입국을 차단한 상태다. 차이잉원 대만 총리의 진보적 성향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진보 정권들이 선제적으로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국민국가를 절대악도 필요악도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코로나-19가 퍼지기 이전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 걸맞는 삶의 조건과 윤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조선닷컴 | 입력 2020.04.04 12:00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3/2020040303118.html

2020-04-04

코로나 바이러스와 페미니즘의 위기

COVID-19 사태는 여성주의와 그 성과마저 위협하고 있다. 재택근무 혹은 자가격리가 일상화되면서 당연하다는 듯 여성에게 가사노동이 떠안겨지고 있는 현실에서 논의를 시작해보자.

외신도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아시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는 8일 재택근무와 함께 가사노동·자녀돌봄노동을 해야 하는 여성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어린이집과 학교들이 문을 닫으면서 특히 일하는 여성의 육아 고충이 커지고 있다. 성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가연, “”코로나 때문에 일이 두배” 육아·가사노동에 피로 호소하는 여성들”, 아시아경제, 2020년 3월 10일. https://www.asiae.co.kr/article/2020031009205389640

이는 단지 집에서 밥을 더 자주 해야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 등이 여성에게 편중되게 떠넘겨진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가령 말레이시아의 경우 SNS를 통해 재택근무중인 여성들을 상대로 ‘남자를 위한 직장의 꽃’ 역할까지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가 빈축을 산 바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여성부는 앞서 이동제한령에 따른 봉쇄 기간 중 아내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들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 현재 삭제된 게시물에서 여성부는 여성들에게 남편에게 잔소리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여성들이 집에서도 편하게 입기보다는 옷을 단정히 입고, 화장도 하라고 권했다. 평상복 차림의 여성 그림에는 금지 표시를 하고,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PC작업을 하는 여성을 포스터에 등장시켰다. 여성들이 가사일에 도움이 필요할 때 ‘비꼬는’ 태도를 남편에게 취하지 말라고도 했다.

조재희, “”아내들, 잔소리말고 화장해라”가 봉쇄 기간 정부 지침?”, 조선일보, 2020년 4월 1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1/2020040101974.html
/말레이시아여성부 인스타그램·호주 ABC | 조선일보 기사에서 재인용

여기서 우리는 경제 영역에서 페미니즘이 추구한 두 가지 목적이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라는 명분 하에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아무런 사전적 사후적 제약 없이,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일할 권리
  2. 여성이 직장에서 일함에 있어서 소위 ‘여성적인 역할’에 묶이거나 그러한 역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보다 근본적인 문제 또한 발생하는 중이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된 주말, 영국의 가정폭력 상담 핫라인에 걸려오는 학대 신고 건수가 65% 증가했다. BBC는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아버지로부터 도망가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살고 있던 여성이, 직장이 문을 닫으면서 월세를 내지 못해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들어가 살게 된 경우도 보도한다. 여성의 경제적 생활과 권리 이전에 직접적인 생존과 안전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퇴행은 COVID-19가 최초로 터져나온 중국에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마치 그 동쪽에 있는 어떤 나라처럼) ‘우리가 코로나 대응을 정말 잘한다 최고다’ 따위 프로파간다에 매진했는데, 그 주요 소재로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동원되어 왔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환자에게 헌신하기 위해 삭발한 간호사의 눈물겨운 사연이라던가, 뭐 그딴 것들. 인터넷의 반응을 살펴보면 일부 한국인들은 그런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하기까지 하는 것 같았지만, 중국인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여성의 신체를 정권 홍보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는 위챗 기사가 1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올린 후 검열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말이다.

중국의 의료 현장에서 여성들은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홍보를 위한 성적 이미지의 대상으로 착취당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남자들보다 더 열등한 급식을 받아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한 바 있다. (“Covid-19 has revealed widespread sexism in China”, The Economist, 2020년 3월 7일) 여성을 헌신적이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이상화하면서, 대상화하고, 뜯어먹는 것이다.

The propagandists’ portrayals of women during the epidemic—as self-sacrificing, brave or beautiful—“basically all follow the playbook”, says Zoe, the blogger. But she was surprised to see a state-run charity follow the volunteers’ lead and donate sanitary pads. People’s Daily has condemned “feudal” attitudes to menstruation and eulogies to “extreme behaviour” such as returning to work right after a miscarriage. Only fierce and widespread anger, she reasons, could have spurred the party’s mouthpiece to say such things.

“Covid-19 has revealed widespread sexism in China”, The Economist, 2020년 3월 7일. https://www.economist.com/china/2020/03/07/covid-19-has-revealed-widespread-sexism-in-china

아직 사태가 종식되려면 멀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잠잠해진다 해도 언제 다시 발병자가 솟구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러한 재앙을 기회로 여성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권력의 움직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