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7

유발 하라리의 ⟪대담한 작전⟫

리디셀렉트에 있길래 심심풀이 삼아서 읽어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TTS 기능을 이용해 '들었다'고 해야 옳겠지만, 아무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시피 <대담한 작전>은 유발 하라리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세계 속에 우뚝 솟은 신흥 선진국 K-나라, 그곳이 바로 이곳이지만, 아직도 지성계는 글로벌 트렌드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 떴다 하면 유치원때 쓴 그림일기까지 출판하고 있다.

라고 욕하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담한 작전>을 보면 유발 하라리가 왜 오늘날의 '유발 하라리'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글을 잘 쓴다. 하나마나한 소리 같지만 그게 아니다.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탁월하다. 대중에게 팔릴 책을 쓰는 저술가로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둘째, '근대 이후'의 세계를 상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다. 이 내용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할 가치가 있다.

<대담한 작전>은 서양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특수작전들을 다룬다. 흔히 특수작전이라고 하면 근대국가, 즉 정규군/상비군 체제가 갖추어진 이후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유발 하라리는 그런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다.

소수의 인력으로 전략적 요충지 혹은 인물을 점령, 파괴, 납치, 살해하는 것을 특수작전이라 말한다면, 오히려 근대(와 총력전의 등장) 이전이야말로 특수작전의 전성기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기사도 문학과 전설들은 대부분 특수작전의 일종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와 같은 관점은 두 가지의 장점을 낳는다. 첫째, 앞서 말했듯 근대 이후의 세계를 절대적 기준으로 바라보지 않은 역사 서술을 가능케 한다. 둘째,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기사들의 모험담이라는 재미있는 영역에 대한 독점적 해설권을 자신이 가져가게 된다.

학자로서, 또한 저술가로서, 대단히 유리한 포지션을 단번에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큰 영역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 얼마나 짜릿할까? 이런 학생을 학자로서 길러내는 교수는 또 얼마나 뿌듯할까?

'근대 이후 세계에 대한 상대적 이해'. 이것이 오늘의 키워드다. 유발 하라리의 이후 성공작인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유발 하라리를 오늘날의 스타로 만든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서구 문명, 근대 문명을 상대화함으로써, 서양인들에게는 자기 각성의 계기를, 동양인들에게는 '우리도 할 수 있다 아자아자'의 기쁨을 안겨줌으로써, 글로벌 스타 지식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대담한 작전>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말할 게 없다. 나는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원래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하라리가 뭘 제대로 설명하는 건지, 자기 취지에 맞게 부풀려 왜곡하는 건지, 판단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일단 재미있게 쭉 읽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대중교양서로서는 차고 넘치는 일이다.

유발 하라리라던가, 토마 피케티라던가, 몇몇 스타 지식인들이 있다. 그런 사람이 등장하면 한국의 출판계는 그들의 저작을 우르르 번역해서 내놓는다. 물론 그런 모습은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고상하게만 살았던가? 경박한 상업주의에 입각해 여러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출판계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국 출판계가 떳다방처럼 책을 찍어낸다면, 진정한 독자가 해야 할 일은 개탄하기보다는 '똘똘한 한 권'을 찾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지성계'란 그런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 말이다.

댓글 2개:

  1. 하라리의「대담한 작전」, 기억해놓고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군요.

    '똘똘한 한 권'을 찾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노력 속에 지성계가 만들어진단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직도 한국 출판계는 자잘한 지식들을 정크푸드처럼 유통하는 뜨내기 장사꾼 행세를 한다."고 익명 게시판에 헛기침을 하며 지성인 행세를 하긴 쉽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지知를 성省찰하는 일군의 집단은 개개인의 일회성 푸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여담이지만 '근대 이후 세계의 상대적 이해' 하니 전 거꾸로 만화「원피스」의 하늘섬 파트의 서사가 떠오르는군요.
    풍습에 따라 신으로 섬기는 거대 뱀에게 딸을 내놓게 된 원주민이 '운명은 어쩔 수 없다. 그에 순응하며 사는 게 자연의 이치다. 인간의 힘으로 그에 역행하는 건 죄를 짓는 것이다'는 식으로 말하자, 그 거대 뱀을 죽인 학자가 "자신을 섬기는 인간을 해하는 신 따위 인정할까보냐! 너희들의 그런 태도는 인간의 문명과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며 반박하죠.
    이건 거꾸로 동양인 만화가가 '근대 이전 사회의 신비성에 대한 맹목적 추종의 반박'을 주제의식으로 담아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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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친김에 '극한의 경험'도 보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빈 깡통 같은 사람들이 스타 지식인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고 실은 적지 않지만, 스타 지식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빈 깡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요.

      말씀하신 부분은 맞는 말씀 같습니다. 종교가 인간의 사회 생활을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이었던 시절에는, 종교에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마련인 희생에의 강요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인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점점 그런 걸 거부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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