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1

文정권이 손 놓은 암호화폐, 나라를 투전판으로 만들었다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哲] 미다스 신화와 마르크스로 본 암호화폐와 투기 심리

일러스트=안병현
미다스는 신들의 사랑을 받는 현명한 임금이었다. 특히 디오니소스가 그를 총애했다. 디오니소스의 양육자이자 스승인 사티로스 실레노스를 잘 대접했기 때문이었다. 소원을 들어주겠노라는 디오니소스의 말에 미다스는 ‘내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문자 그대로 그와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차라리 저주였다. 음식을 먹으려고 잡으면 황금이 되었다. 물이나 술을 마시려고 잔을 들어도 모든 게 황금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사랑하는 딸을 쓰다듬었더니, 딸 역시 황금으로 변해버렸다.

미다스는 고통으로 절규하며 디오니소스에게 간청한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에게 팍톨로스 강물에 가서 목욕을 하면 축복, 아니 저주가 풀릴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미다스는 지시를 이행했고 정상적인 몸을 되찾았다. 그 후로 팍톨로스강은 오늘날까지도 터키 최대의 사금(沙金) 산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미다스왕과 관련된 고대 그리스 신화 중 하나다.

신화는 인류의 집합적 지혜의 소산이다. ‘탐욕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좀 더 깊이 있는 독해가 가능하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 경제 철학의 핵심 개념인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구분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온갖 것을 만들고 또 소비하며 살아간다. 원시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물물교환으로 경제활동을 해나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인류는 화폐를 발명했다. 금이나 은처럼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귀금속을 매개체로 삼아 가치의 저장과 교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상품이 지니는 가치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물건 자체를 직접 사용·소비의 대상으로 삼을 때 발생하는, 말하자면 쌀이나 물고기를 직접 먹을 때 누리는 가치. 그것을 사용가치라고 한다. 반면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 때 매겨지는 가치가 있다. 이를 교환가치라 부른다.

모든 재화는 각기 다른 사용가치를 지닌다. 당연한 일이다. 농부에게는 쌀이 남고 어부에게는 생선이 남는다. 농부는 생선을 먹고 싶고 어부에게는 쌀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낮은 사용가치가 상대방에게는 높은 것이다. 그러니 농부와 어부는 화폐라는 중간 매개체를 이용해 서로의 사용가치의 합의점, 즉 교환가치를 찾는다.

여기서 화폐의 독특한 성격이 문제가 된다. 미다스왕의 고초가 잘 보여주다시피 우리는 황금을, 즉 돈을 입거나 먹을 수 없다. 화폐는 오직 교환가치만을 갖는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스스로 앞장서 ‘미다스의 손’이 되고자 한다. 진정 쓸모 있는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신 돈으로 돈을 벌 궁리만을 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으로 인해 무너지고 공산주의 혁명을 맞이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그의 주저 <자본론>에서 이 과정을 수학 공식과 현란한 수사학을 동원해 설명한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의 기준을 놓고 보더라도 ‘경제학’이라 보기 어렵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던 모든 시도가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은 경제에 대한 철학적 담론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다스왕의 전설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용가치를 ‘내적 가치’로, 교환가치를 ‘외적 가치’로 넓혀서 이해한다면, 이는 우리의 경제생활을 돕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무언가가 가치 있는 재화라면, 그것은 그 자체에 사용할만한 가치가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릴 것이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시끌벅적한 ‘암호 화폐’는 어떨까. 일단 개념의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암호 화폐는 ‘화폐’가 아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도 비트코인이나 그 외의 알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재산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그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다. 사용가치를 지니는가? 만약 암호 화폐가 화폐라면 그 개념 정의상 암호 화폐는 사용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반대로 화폐가 아니라고 해도 암호화폐는 복잡하게 짜여진 디지털 암호문에 불과하다. 컴퓨터 자원을 소모하고 저장 용량을 차지할 뿐이다. 유의미한 사용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없다.

결국 사용가치는 없고 교환가치만 있다. 내가 구입한 것보다 다른 사람이 더 높은 가격으로 사줄 것이라는, 그래서 ‘돈 복사기’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그 기대만이 남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참여자가 거래 대상의 내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시장, ‘폭탄 떠넘기기’를 꿈꾸고 있는 시장을 일반적으로 ‘투기 시장’이라고 부른다. 암호 화폐 시장은 투기 시장이다.

문제는 왜 투기판에 20대와 30대가 대거 뛰어들고 있느냐일 것이다. 암호 화폐를 거래하는 젊은 층이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유심히 살펴보면 ‘졸업’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돈을 벌 만큼 벌거나 다 잃어서 판에서 나간다는 뜻이다. 좋은 의미에서 ‘졸업’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말을 한다. ‘집 샀습니다! 성투(성공한 투자) 하세요!’

문재인 정권을 향해 묻고 싶다.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사는 것이 왜 나쁜가. 적어도 집은 실체가 있는 물건이다. 대출을 못 갚으면 집을 팔면 된다. 가격이 떨어져도 그냥 그 집에서 살면 그만이다. 사용가치가 있는 재화라는 뜻이다. 반면 암호 화폐는 사용가치가 0으로 수렴한다. 집을 사는 것은 투자일 수도 있고 투기일 수도 있지만, 암호 화폐를 사는 것은 100% 투기다.

내 집 한 채 마련하여 빚을 갚으며 천천히 자산을 키워나가는 정상적인 경로를 끊어버리니 온 나라가 투전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책 실패다. 그러면서도 암호 화폐에 대한 과세 유예 카드를 만지고 있다. 이제는 부동산으로 세금 폭탄 맞는 사람들과 암호 화폐 투자자들을 ‘갈라치기’할 셈인가.

미다스왕은 아들과 딸이 황금으로 변한 후에야 자신이 걸린 저주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가 원한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이었던 것이다. 충혈된 눈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젊은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을 얻기 위해 가장 위험한 도박에 뛰어드는 모순적인 광란. 그것을 진정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문재인 정권에 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댓글 2개:

  1. 비트코인이야말로 불법토토와 더불어 21세기형 노름장인데 정부에서 어떤 대책도 안 내놓는 건 신기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굳이 무게를 두자면 저는 사람들의 인식이 느슨한 게 더 업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래의 오락형 노름은 적어도 이게 노름이란 걸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었고, 어떤 식으로 미화해도 본질은 판 벌린 주인만 이득 보는 치킨게임임을 분명히 했었습니다.
    근데 이건 사람들이 처음부터 '투자'라고만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노름 호구들의 단골레파토리인 "난 빙신이 아냐"란 확증편향까지 장착하고 있으니 답이 없습니다.

    비단 코인판 단투주식판뿐 아니라 청년들 사이 인식이 이미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몇갑절인데 직장에 헌신짝하는 건 하수지" 하는, 그야말로 마르크스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 동앗줄이던 주택시장이 손쓸 도리도 없이 치솟은 지금, 그들이 애써 유지하던 경제 윤리가 금이 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를 착취하는 회사 사장에 대한 노동자로서의 증오와 내가 쥔 코인이 떡상해서 언젠가 건물주가 되고 싶은 욕망은 동반될 수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칭송하는 마르크스든 피케티든 그 누구의 경전에서라도 그걸 용인하는지는 각자가 깨우쳐야 할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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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건 노무현 정권 시절의 바다이야기를 연상케하는 수준인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 어이가 없죠.

      한편 말씀하신 주제는 저도 한참 생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는 '어서 빨리 투자해라'는 일종의 처세술 책처럼 읽히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지경이니까요. 그러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본소득도 부족하고 기본자산을 주자' 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거죠. 참, 한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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