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7

루머의 루머의 루머.. '쥴리 벽화'는 폭력적인 여성혐오다

 

[노정태의 시사哲]
[아무튼 주말] 캐스 선스타인 책 '루머'로 본 쥴리 벽화의 진실과 거짓
일러스트=유현호

리버티 고등학교의 공기는 무겁다. 일주일 전 해나 베이커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클레이 젠슨은 더욱 울적하다. 해나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자책과 우울에 시달리던 클레이의 집 현관 앞에 이상한 소포가 배달된다. 주소도 보낸 사람의 이름도 써있지 않은 꾸러미의 내용물은 일곱 개의 카세트테이프. 여섯 개는 양면으로, 마지막은 한 면만 녹음되어 총 13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녕, 해나야. 해나 베이커. 나야. 라이브에 스테레오지.” 어리둥절한 채 플레이 버튼을 누른 클레이는 기절초풍하고 만다. 자살한 해나가 남긴 음성 유언인 것이다. “간식 갖고 와서 앉아. 내 인생 얘기를 해줄 테니까. 더 자세히 말하면 내 인생이 왜 끝난 건지를. 네가 이 테이프를 듣고 있다면 너도 그 원인 중 하나야.” 13면의 테이프, 13명의 원인 제공자. 해나의 목소리와 클레이의 시선을 통해 시청자는 사건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내용이다.

가장 먼저 지목되는 첫 번째 원인 제공자는 저스틴 폴리. 단짝 친구가 전학간 후 적적해져 있던 해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 운동부 남학생이다. 두 사람의 풋사랑은 아름다웠다. 심야의 데이트를 하며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해나의 속옷을 저스틴이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그 영상을 운동부 친구들에게 보여줬다가, 결국 전교생에게 퍼져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해나는 순식간에 ‘걸레’로 낙인찍혔다. 거짓 소문, 루머의 늪에 사로잡힌 채 헤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루머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넛지>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캐스 선스타인의 책 <루머>에서 가장 좋은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선스타인에 따르면 루머는 “사람과 집단, 사건, 단체와 관련해 진실이라고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한 거짓말과 루머는 어떻게 다를까? 누군가 ‘어젯밤에 호랑이가 와서 우리집 소를 물어갔다’고 주장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거짓말쟁이는 가짜 증거를 제시하거나 그럴듯한 설명을 꾸며낸다. 반면 루머꾼은 사실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말한다, 믿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는 거짓말쟁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 그것이 바로 루머인 셈이다.

그래서 루머는 이미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는 동질적인 집단 속에서 쉽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선스타인은 그런 특징을 ‘사회적 폭포효과(social cascades)’라 부른다. 또한 루머는 같은 생각을 지니는 집단 내에서 확산되기에 점점 더 극단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라 할 수 있다.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가 맞물리면 그 해악은 때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아폴로 탐사선의 달 착륙이 조작된 허위라거나, 코로나 백신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로칩을 심기 위한 빌 게이츠의 음모라거나, 힐러리 클린턴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동 성매매 혐의로 FBI에 체포되었다는 따위의 허황된 루머를 믿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삼으며 더욱 똘똘 뭉치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를 조장하고 그것을 통해 편가르기를 하며 이득을 보는 사람들, ‘가짜 뉴스 공장’을 운영하는 자들이, 루머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를 향한 악의적인 루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마크 로스코 전’ 등 대형 전시를 기획하고 흥행시킨 성공한 문화사업가이며 전시기획자다. 또한 대학원에 다니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그 이력은 공개적으로 검증 가능하다. 그런데 그가 ‘쥴리’라는 예명으로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황당무계한 루머가 어째서 이렇게 널리 퍼질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양극화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야당 후보의 아내를 둘러싼 추문이 퍼지면 퍼질수록 윤석열의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그런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의 집단적 신념 체계는 사실 여부와 무관하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그러한 사회적 폭포효과와 집단 극단화가 맞물려 결국 ‘쥴리 벽화’ 사건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최근 몇 년 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폭력적 여성혐오다. 그쯤 되자 여론도 그 루머꾼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우리 국민의 인권 의식과 건전한 양식이 그런 광경을 용납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다.

리버티 고등학교의 사정은 달랐다. 루머에 잠식당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돌아와 보자. 아무도 해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저 심심풀이용 가십으로 소비하고 진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해나는 테이프에 남긴 마지막 육성을 통해 가까스로 호소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어떤 얘기가 제일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가 제일 인기 없는지는 알아. 진실이지. 진실이 늘 제일 재미있거나 최고나 최악은 아니거든. 진실은 그 중간이지. 하지만 진실을 알고 기억해줘야지.”

<루머>는 적대적 루머에 시달리던 오바마 정권을 옹호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러다보니 선스타인은 진보적인 법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시장’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해로운 루머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위축효과를 줄 수 있도록 법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명예훼손과 관련된 처벌 조항이 잘 마련된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하며 근본적인 해법은 수용자 집단의 건전한 양식에 달려 있다.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몇 달 후 국민 스스로가 상식적이며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면 악의적인 루머꾼들을 공론장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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