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논점들에 대해 하나씩 대답하기에 앞서, 비슷한 차원의 '중산층을 위한 감세' 논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은 금융 위기 때문에 쟁점에서 빗겨나 버렸지만, 오바마와 매케인은 부시의 대규모 감세안을 유지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를 놓고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오바마는 부시의 감세안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했고, 매케인은 후보가 되기 전까지는 오바마와 같은 입장이었지만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 후에는 부시 감세안을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 매케인이 사용하는 수사법 또한 'middle class'를 위해 감세안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기준선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오바마는 연봉 15만 달러 이하, 한국돈으로 (지금은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대강 1달러당 1000원으로 잡았을 때) 1억 5천만원 이하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middle class라고 보고, 그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에 대한 세율을 다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매케인은 "5백만 달러?"라고 농담을 했다가, 자신이 그 누구의 세금도 올리지 않을 거라며 어려운 주장을 회피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논쟁과 한국에서 벌어지는 '중산층' 논쟁의 유사성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지난번에 내가 인용한 기사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근로소득세 과세표준 8800만원은 총급여가 1억 2000~1억 3000만원에 달해야 나올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즉 오바마와 강만수는 같은 지점에서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middle class'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상류층 중 하위층이 자신을 'middle class'라고 주장하는 현상은 동일하게 발견된다. 폴 크루그먼의 8월 22일 칼럼인 "Now That's Rich"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When we think about the middle class, we tend to think of Americans whose lives are decent but not luxurious: they have houses, cars and health insurance, but they still worry about making ends meet, especially the time comes to send the kids to college.
Meanwhile, when we think about the rich, we tend to think about the handful of people who are really, really rich -- people with servants, people with so much money that, like Mr. McCain, they don't know how many houses they own. (Remember how Republicans jeered at John Kerry for being too rich?)
The trouble with Mr. Warren's question was that it seemed to imply that everyone except the poor belongs to one of these two categories: either you're clearly rich, or you're an ordinary member of the middle class. And that's just wrong.
우리는 중산층을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집, 차, 건강 보험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야 할 때 돈 걱정을 하게 되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 우리는 극소수의 매우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인을 부리고, 자신이 몇 채의 집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존 매케인처럼 돈이 많은 그런 사람들 말이다. (공화당원들이 존 케리가 너무 부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비난을 퍼부었는지 기억하는가?)
워렌 목사의 질문에 담긴 문제는 빈곤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단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같은 함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명백하게 부자가 아니라면, 당신은 평범한 중산층의 일원이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서 현재 통용되는 영어 맥락에서, middle class의 번역어는 '중산층'이며, 그것은 전혀 '쁘띠 부르주아'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지 않다(물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쁘띠 부르주아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칭함으로써 개념의 혼돈을 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둘째, 인용문에서 말하는 middle class를 '중간계급'으로 바꿔도,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글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사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하는',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때 돈 걱정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중간계급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도 타당한 일처럼 보인다.
따라서 나는 middle class의 번역어를 '중간계급'으로 쓰자는 주장까지는 이택광님의 글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1억 2000만원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을 중산층이라고, 즉 중간계급이라고 간주하는 강만수의 주장에 대한 '풍자'가 그 글의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는 "한국 사회에는 중간계급에 속하지 못하면서도 중간계급 의식을 소유한 '서민들'이 참으로 많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감세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건 이를 반증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세표준 8800만원 이하인 사람들은, 이택광 스스로는 뭐라고 '풍자'를 하고 있건, 이택광과 강만수 양자에 의해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이 아님'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내 논지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이라는 단어가 워낙 복잡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으니, 차라리 '중산층'을 이명박이 말하는 그것으로 설정하고 대신 '서민'을 강조하자'. 문제는 그 '중산층'이, 그렇게 되면 결코 'middle class'의 번역어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폴 크루그먼의 칼럼으로 돌아가보자.
In his entertaining book “Richistan,” Robert Frank of The Wall Street Journal declares that the rich aren’t just different from you and me, they live in a different, parallel country. But that country is divided into levels, and only the inhabitants of upper Richistan live like aristocrats; the inhabitants of middle Richistan lead ample but not gilded lives; and lower Richistanis live in McMansions, drive around in S.U.V.’s, and are likely to think of themselves as “affluent” rather than rich.
Even these arguably not-rich, however, live in a different financial universe from that inhabited by ordinary members of the middle class: they have lots of disposable income after paying for the essentials, and they don’t lose sleep over expenses, like insurance co-pays and tuition bills, that can seem daunting to many working American families.
그의 재미있는 저서 "리치스탄"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로버트 프랭크는 부자들이 나와 당신과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평행 우주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나라는 몇 개의 층으로 나위어 있고, 오직 상위 리치스탄에 사는 사람들만이 귀족처럼 산다. 중위 리치스탄에 사는 사람들은 넘쳐나는 부를 가지고 있지만 금박 입혀진 인생은 아니며, 하위 리치스타니안들은 맥맨션에 살고, S.U.V.를 몰며, 자신들이 부유하다기보다는 그저 "살만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자 아닌 사람들'도, 그러나, 중산층의 평범한 구성원들과는 완전히 다른 금융 우주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지출을 하고도 사용할 수 있는 다수의 수입원을 가지고 있으며, 다수의 일하는 미국 가정들을 괴롭히는 보험금 납입이나 수업료 등으로 인해 잠 못 이루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케인이 주장하는 바 부시의 감세안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이렇듯 '하위 리치스타니안'들에게서 세금을 걷지 않는 대신, 중산층과 빈곤층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폴 크루그먼은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대 미국 영어'에서 'middle class'는 우리가 아는 '중간 소득을 버는 사람들'이지 '쁘띠 부르주아'가 아니다. 적어도 폴 크루그먼은 그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고 있고, 반면 존 매케인과 그 선거본부는, 마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도 같은 '중산층' 논쟁을 벌여 하위 리치스타니안들의 호주머니를 불려줄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적 차이를 도표로 그려보자.
폴 크루그먼 | 존 매케인 | 강만수 | 노정태 |
상위 리치스탄 | 부자 | 부자 | 부자 |
하위 리치스탄 | 중산층 | 중산층 | (강남)쁘띠 |
중산층 | 중산층 | 서민 | 중산층 |
빈곤층 | 빈곤층 | 빈곤층 | 빈곤층 |
이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나는 '하위 리치스탄'의 한국 버전에 해당하는 강남의 아파트 부자들을 '중산층' 대신 '쁘띠 부르주아'라고 직설적으로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좋은 욕 놔두고 어렵게 말할 필요가 뭐가 있나).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중산층을 위한 감세 정책'이라는 말이 전적으로 허위의 것임을 드러낼 수 있고, 동시에 '서민'이라는 단어가 야기하는 개념적 혼동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한편 존 매케인은 중산층의 범위를 하위 리치스탄까지 확대함으로써, 리치스타니안을 위한 감세안이 마치 진짜 중산층과 서민층에게까지 이익이 되는 것처럼 호도한다(주어를 이명박이나 강만수로 바꾸어도 큰 무리가 없다).
나는 이택광이 '풍자'를 통해 택하는 담론적 전략이 그다지 현명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이유야 도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택광과 같이, 엄연히 middle class의 번역어인 중산층을 하위 리치스타니안의 자리에 분류하고, '한국에서 중산층이라는 게 그렇지'라고 냉소하는 전략을 택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 제1의 군사, 경제대국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보조를 맞추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거나 할 수 없고, 도리어 '서민'이라는 막연한 단어 안에 포함되어버리는 또 다른 개념적 혼돈과 맞닥뜨려야만 한다.
서민과 중산층, 중간계급의 구분으로 넘어가보면 개념적 혼돈은 한층 더 심화된 양상을 보인다. 만약 한윤형이 지난 글의 리플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대충 '중산층'='쁘띠 부르주아'의 번역어구요. '중간층'은 '미들 클래스'의 번역어"라고 하면, 이택광이 말하는 '서민'이야말로 '중간계급'이 될 것이고, 중산층은 중산층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이택광은 '중간계급'을 '중산층'의 대체어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부유층-중산층-중간계급-빈곤층'으로 사회 계층 구도를 보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한윤형은 이택광을 옹호하겠다는 건가 옹호하지 않겠다는 건가?
나는 한국 사회의 '좌파'들이 대체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왔는지, 그 속에서 어떤 쟁점을 어떻게 잡아왔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리 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산층'이라는 단어에 대해 강력한 혐오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 내지는 '민중'과 친화성이 없는 어휘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하지만 내가 인용한 프레시안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쁘띠 부르주아'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그 방언 집단이, 하나는 이명박의 경제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한 '좌파'들이라는 것이다.)
이미 상대방이 설정해놓은 개념적인 틀거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며, 특히 '한국에서만은 '쁘띠 부르주아'가 '중산층'이고 'middle class'의 번역어는 '서민'이다'라는 용어표를 만들어내는 것은 국제적으로 고립만을 자처하는 더욱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나는 '폴 크루그먼이 부시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듯, 그것은 중산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택광과 한윤형은 훨씬 더 멀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서로 열심히 '풍자'해가며 그 고단함을 이겨내시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