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양씨는 "세 아이 엄마인 내가 촛불집회에 나선 것은 깨끗한 먹을거리와 바른교육, 안정된 삶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할지 몰랐다"며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촛불을 든 엄마가 경찰차를 부수고, 쇠파이프를 휘둘렀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더욱 분노를 느끼는 것은 가정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는 경찰의 막무가내식 수사"라며 "어제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집을 찾아왔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지만 전화로 다짜고짜 `출두할지 안 할지만 말하라', `출두하지 않으면 아무 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양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주거지에 갔었고 임의동행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수사 진행 과정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정중했다"고 반박했다. . .
"물대포 가로막은 '유모차 부대' 주부 입건(종합), 연합뉴스, 2008년 9월 19일
경찰의 지금 행동은 말 그대로 '알아서 기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을 제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이 사건은 정말이지 징후적이다. 촛불시위가 불타오르는 과정이 아니라, 촛불시위가 꺼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제 '핫'하지 않은 이 주제에 대해 그 누구도 열정적으로 입을 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산층 혹은 중산계급을 양 방향에서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쌤통'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들끼리의 건전한 '상식'이나마 간직하고 있는 중간계급이 없다면, 대의민주주의도 직접민주주의도 모두 불가능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 반대로, 너무도 적은 사람들이 중산층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양심'을 갖지 않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중간계급이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또한 자신들이 법 안에 살고 있는 건전한 시민이라는 자의식의 균열을 체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중산층은 이중적인 존재이지만, 그 이중적인 존재가 없다면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란 존립할 수도 없다.
비정규직과 노동운동을 수호해야 하는 만큼이나, 중산층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는 대단히 혁명적으로, 1987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되어온 바로 그 계층을 분쇄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징후적이다.
혁명이라고 부르기엔 혁명이란 단어도 아까운데요...
답글삭제'혁명적'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긍정적인 함의를 품거나 하지 않습니다. '반동 혁명'이라는 말이 존재할 수 있는 건 그래서죠. 이명박 정부를 무가치한 존재로,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천박한 존재로만 취급하는 것은 우리의 목줄을 조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저랑 관심사가 비슷한 거 같아요. :)
답글삭제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치적 동물로서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답글삭제노정태// 이명박을 천박한, 없는 존재로만 취급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안 들어요. 다만 이명박이란 징후가 있다면, 혹은 상징이 있다면 그것의 구조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자꾸 드네요. 너무나 빠른 한국식 신자유주의의 노골화, 그리고 그의 충실한 대변자로서 이명박..이라고 읽어내리기엔 신자유주의자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이 정권에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답글삭제아직 이 정권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고민 중이랄까요.
기존의 언어적 틀에서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논하기에 앞서, 일단 벌어지는 현상 그 자체를 주시해야 할 필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코미디야' 라는 식의 냉소는 그러한 차분한 응시에 도리어 방해가 된다고 보고요. 사실 저로서도 뭐라고 말하기 어려워서, 어떤 해석을 내놓는 것은 다소 꺼려집니다. 중요한 건 자기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끈덕지게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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