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st.com에서는 매일 도표를 하나씩 업데이트해준다. 대체로 당일 발간된 보고서의 핵심 내용을 소재로 삼을 때가 많지만, 워낙 업데이트가 잦다보니 별 희한한 것들을 다 통계로 만들어서 보여주곤 하는데, 오늘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정확히 말하자면 Factiva.com의 자료를 그래프로 만든 것이지만, 아무튼).
월스트리스 저널,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 타임즈 세 신문에서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등장했는가를 세서 그래프로 만든 자료인데,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올해 초부터 9월까지는, 많으면 25회, 적으면 5회 선에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언급 빈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사진 오른쪽이 잘렸습니다만 그냥 참고 보시기 바랍니다. 덕분에 그래프는 더 잘 보이는군요).
(이건 여담인데, 이렇듯 '일정하게 유지되다'라는 말은 세부적인 변동이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사용될 수 있다. 결정적인 변인이 개입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제한된 폭 안에서 수치의 변동이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경향신문 칼럼에 대한 내 설명을 놓고,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일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나는 인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즉 빙하기나 이런 것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고),화석연료 사용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온은 하루 종일 미세한 변동을 보이지만, 감기에 걸린 상태와 비교한다면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러다가 10월부터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세 언론의 언급은 급증한다. 10월만 해도, 이전까지 가장 높은 수치였던 3월의 그것에 두 배에 달하는 '디플레이션'이 등장하고, 11월의 경우 11월 20일까지의 통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50번을 채우고 있다. 전 세계가 'D의 공포'에 휩싸여있다는 말은 괜한 표현이 아닌 것이다.
"War Room"에 준하는 국가종합상황실을 운영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발상이 가당찮게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이다. 전시에는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전쟁으로 집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그것을 전선으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에 시급한 것은 국내 소비를 증진하여 디플레이션의 위험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므로, 그 비유는 전혀 옳지 않다.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겨야 할 판에, 최저임금을 깎고(당연히 국내 소비가 줄어든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을 때'라지만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한다면(밤에 장사하는 동대문 옷가게들은 문 닫으라는 소리?),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요소까지 함께 생각해보면, 'D의 공포'로 인해 정말이지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2008-12-08
국가주의-국제주의-세계주의
In short, if the world economy is to get through this crisis in reasonable shape, creditworthy surplus countries must expand domestic demand relative to potential output. How they achieve this outcome is up to them. But only in this way can the deficit countries realistically hope to avoid spending themselves into bankruptcy.
Some argue that an attempt by countries with external deficits to promote export-led growth, via exchange-rate depreciation, is a beggar-my-neighbour policy. This is the reverse of the truth. It is a policy aimed at returning to balance. The beggar-my-neighbour policy is for countries with huge external surpluses to allow a collapse in domestic demand. They are then exporting unemployment. If the countries with massive surpluses allow this to occur they cannot be surprised if deficit countries even resort to protectionist measures.
We are all in the world economy together. Surplus countries must willingly accommodate necessary adjustments by deficit countries. If they decide to sit on the sidelines, while insisting that deficit countries deserve what is happening to them, they must prepare for dire results.
Martin Wolf, "Global imbalances threaten the survival of liberal trade", The Financial Times, 2008년 12월 2일
'수출이 살아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보다 이 시점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수출을 살려야 한다'는 그 주장에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마틴 볼프의 이 칼럼은 그 점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마틴 볼프의 칼럼 자체가 아니라, 여기서 주장하는 바의 통속화된 형태가 횡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끔직한 일이 될 것이다. 일종의 중상주의적 관점이 회귀할 수 있고, 그것은 곧잘 (극단적인) 네셔널리즘과 손을 잡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수출국가들)이 현 국면에서 자국 내 소비 비중을 높여야 하고,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것은 다 맞다. 하지만 그것을 '권고'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런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감정 상하기 시작하면, 국제관계는 급속히 냉각된다.
간단한 도식을 그려보자. '국가주의-국제주의-세계주의'를 하나의 직선 위에 놓고 바라본다면, 최근 10년 동안은 '세계주의'가 득세해왔다고 볼 수 있다. 토마스 프리드먼 같은 '평평한 지구'론자들이 자유무역이 킹왕짱이고 전 지구적 분업을 하면 효율이 높아지고 금융 시장이 팽팽 돌아가서 쿨하고, 등등을 외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까지의 세계도 그랬다. 벨 에포크 당시, 크루그먼이 케인즈를 인용하며 말하듯, 세계는 지금보다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그 고리가 그렇게 쉽게 깨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요컨대 세계주의가 졸지에 국가주의로 처박히고 만 것이다(여기서 국가주의는 nationalism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100년 전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중요하지만, 국민국가의 역할과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최대한 치밀하게 짜여진 국제적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철학적, 제도적 기반 또한 절실해지고 있다. 케인즈주의의 복귀를 둘러싼 논의만큼이나 이 또한 중요할 터인데, 아직까지 본격적인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두려운 일이다.
2008-12-07
독거청년을 위한 난방 가이드
혼자 사는 외로운 청년들은 추운 겨울이 오면 더 힘들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고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번듯한 신축 원룸 따위에 살지 않는 한, 집에 있을 때보다 정말 더 춥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자취방은 가정집보다 난방 효율이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불을 때도 때는 것 같지 않고, 방에 앉아있으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바람에 손가락이 얼기 시작한다.
적지 않은 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내용의 하소연을 접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집이라는 것이 본디 사람이 따뜻하게 살자고 짓는 거지, 그 반대는 아닌 까닭이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도 겨울에 가정 내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독거청년들이 유독 심하게 느끼는 '집 안에서의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제시하는 것에서 만족하고자 한다.
1. 문풍지를 바르자.
난방 효율성 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외풍 단속'이다. 지금 앉아있는 방이 너무 춥게 느껴진다면, 당장 라이터를 들고 창가로 가볼 것을 권한다. 창문 틈새에 대고 라이터를 켜라. 불꽃이 춤을 춘다면 바람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좁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추워지고 있다. 가까운 철물점, 슈퍼, 잡화점 등으로 달려가 문풍지를 구입해 바르도록 하자.
외풍이 새느냐 안 새느냐의 차이는 실로 막대하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 경험을 말해볼까 한다. 재작년 겨울 무렵 무척 추웠다. 나는 당시 드라마틱 객원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내 주된 업무는 드라마를 시청한 후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방송사 사이트에서 다시보기 결제를 했다. 그렇게 몰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집인데,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다. 당시 내 방의 데스크탑 컴퓨터는 창문과 바로 붙어 있었고, 그 창문에서 바람이 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문의 틈 사이를 전부 노란색 문풍지로 처바르고, 인터넷선을 연결하느라 드릴로 구멍을 뚫은 창틀에 고무찰흙을 이겨넣으니 한결 나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지독한 외풍이었다. 신형 샷시로 된 창문이었지만 애초에 건물 자체가 약간 삐뚤어져 있어서 창틀이 찌그러져 있었고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문풍지를 이중 삼중으로 발라서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방이 남산 끄트머리에 있어서 바람이 세게 부는 것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좋았는데 겨울이 되자 단점으로 돌변했다. 고무찰흙으로 창틀의 구멍을 다 막아놨더니,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나갈 구멍도 없어졌고, 그 물이 고여서 얼어붙은 결과 아침에 창문이 안 열린 날도 적지 않았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와 얼음을 우선 조심스럽게 녹인 후, 고무찰흙을 제거하고 물을 빼서 해결했다.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되니 이쯤 하도록 하자.
아무튼 요점은, 방 안에서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고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일단 외풍이 드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터 등을 이용해 외풍을 확인하면, 악의 세력을 섬멸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틀어막아야 한다. 그 작업만 완료해도 한결 낫다.
2. 커튼을 쳐라.
문풍지를 다 발라도 창가에 가면 추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딴게 아니라, 창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틀이 플라스틱 샤시가 아니라 철제로 되어 있을 경우, 지금 내 방 창문이 그런데, 쉽사리 물방울이 맺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벽을 이루는 벽돌보다 창문을 이루는 유리와 철의 열 전도율이 높기 때문인데, 길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짧게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이므로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미묘한 찬바람은 창가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감기를 유발할 수 있을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다. 독거노인과 마찬가지로 독거청년 또한 질병에 취약한 존재들이다. 아프면 서럽고, 서러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풍지를 바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창가에는 커텐을 쳐야 한다.
알량한 한 장의 헝겊이 창문과 당신 사이에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불러온다. 미처 잡지 못한 외풍이 불어닥치는 속도를 낮춰줄 뿐만 아니라, 창문 자체의 서늘함도 어느 정도 감소시켜주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두꺼운 커튼은 햇빛을 전부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지만, 적어도 저녁에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커튼을 쳐놓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이다.
3. 보일러를 확인하라.
이태원으로 이사오기 전 살던 약수동 방에 처음 들어갔던 날. 삭풍이 몰아치던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기 괜찮을 거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지도 못한 방에서 박스들을 한 켠으로 밀어두고, 가을이와 함께 잠을 청했다. 가스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보일러를 높게 틀어 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붙이고 있어도 방이 하나도 안 따뜻해지는 것 아닌가. 보일러는 폐병 걸린 미소년이 밭은기침을 하듯 쿨럭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십분이 지났는데도 방바닥에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희망온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20도.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춥나, 내가 뭘 잘못했길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덜덜 떨면서 억지로 눈을 붙였다.
자고 일어나서 보일러를 확인해보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희망온도'와 '난방온수온도'가 별도로 조작 가능하게 되어 있었고, '난방온수온도'가 40도였나, 아무튼 가장 낮은 수치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내 방의 바닥에는 내 체온보다 고작 3~4도 정도 높은 알량한 온수, 그 미적지근한 물이 왔다갔다하면서 난방을 하겠답시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내 기억에 그 보일러는 귀뚜라미 제품이었다. 난방온수온도의 비밀을 안 이후로는 단 한 번의 고장도 없이 잘 썼다는 점을 괜히 적어본다).
옛날에 했던 바보짓을 굳이 공개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보일러 조작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우선 따져봐야지, '전기담요가 얼마쯤 할까' 같은 다음 단계의 고민을 먼저 하면서 괜히 세입자의 서러움 같은 것을 느끼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특히 실내가 실외보다 춥다면, 집이 완전히 잘못 지어지지 않은 바에야, 보일러가 안 돌아가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보일러를 확인해야 한다. 계기판을 꼼꼼히 살펴보고, 본체에 써있는 주의사항도 읽어보도록 하자.
내가 방금 말한 세 가지 사항은, 사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기본적이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그런 것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를 경우 그로 인해 한없는 고통을 겪으며 괜한 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괜히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같은 시를 읊으며 타향살이의 설움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거나, 이성친구도 없으면서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따위 싯귀를 웅얼거리거나, '청계천 8가' 같은 노래를 부르거나, 뭐 이런 짓을 하고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감상에 빠지기 전에 실질적인 요소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특히 요즘 독거청년들은 집에서 너무 곱게 자란 탓에, 가정 설비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한채 험난한 겨울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가사노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막상 나와 살고 보니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겪으면서 겨우 배웠다.
혹시라도 이런 단편적인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말 새벽에 일하다가 잠시 적어 보았다.
적지 않은 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내용의 하소연을 접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실로 놀라운 현상이다. 집이라는 것이 본디 사람이 따뜻하게 살자고 짓는 거지, 그 반대는 아닌 까닭이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도 겨울에 가정 내 추위를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독거청년들이 유독 심하게 느끼는 '집 안에서의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제시하는 것에서 만족하고자 한다.
1. 문풍지를 바르자.
난방 효율성 재고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외풍 단속'이다. 지금 앉아있는 방이 너무 춥게 느껴진다면, 당장 라이터를 들고 창가로 가볼 것을 권한다. 창문 틈새에 대고 라이터를 켜라. 불꽃이 춤을 춘다면 바람이 통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좁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추워지고 있다. 가까운 철물점, 슈퍼, 잡화점 등으로 달려가 문풍지를 구입해 바르도록 하자.
외풍이 새느냐 안 새느냐의 차이는 실로 막대하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 경험을 말해볼까 한다. 재작년 겨울 무렵 무척 추웠다. 나는 당시 드라마틱 객원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내 주된 업무는 드라마를 시청한 후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방송사 사이트에서 다시보기 결제를 했다. 그렇게 몰아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분명히 집인데,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추웠다. 당시 내 방의 데스크탑 컴퓨터는 창문과 바로 붙어 있었고, 그 창문에서 바람이 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문의 틈 사이를 전부 노란색 문풍지로 처바르고, 인터넷선을 연결하느라 드릴로 구멍을 뚫은 창틀에 고무찰흙을 이겨넣으니 한결 나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지독한 외풍이었다. 신형 샷시로 된 창문이었지만 애초에 건물 자체가 약간 삐뚤어져 있어서 창틀이 찌그러져 있었고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문풍지를 이중 삼중으로 발라서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방이 남산 끄트머리에 있어서 바람이 세게 부는 것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좋았는데 겨울이 되자 단점으로 돌변했다. 고무찰흙으로 창틀의 구멍을 다 막아놨더니,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나갈 구멍도 없어졌고, 그 물이 고여서 얼어붙은 결과 아침에 창문이 안 열린 날도 적지 않았다. 주전자에 물을 끓여와 얼음을 우선 조심스럽게 녹인 후, 고무찰흙을 제거하고 물을 빼서 해결했다. 실제로 보지 않은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사료되니 이쯤 하도록 하자.
아무튼 요점은, 방 안에서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고 너무 서러워하지 말고, 일단 외풍이 드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터 등을 이용해 외풍을 확인하면, 악의 세력을 섬멸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틀어막아야 한다. 그 작업만 완료해도 한결 낫다.
2. 커튼을 쳐라.
문풍지를 다 발라도 창가에 가면 추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딴게 아니라, 창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틀이 플라스틱 샤시가 아니라 철제로 되어 있을 경우, 지금 내 방 창문이 그런데, 쉽사리 물방울이 맺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벽을 이루는 벽돌보다 창문을 이루는 유리와 철의 열 전도율이 높기 때문인데, 길게 말하면 그렇다는 거고 짧게 말하자면 '자연의 섭리'이므로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미묘한 찬바람은 창가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감기를 유발할 수 있을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다. 독거노인과 마찬가지로 독거청년 또한 질병에 취약한 존재들이다. 아프면 서럽고, 서러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풍지를 바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창가에는 커텐을 쳐야 한다.
알량한 한 장의 헝겊이 창문과 당신 사이에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불러온다. 미처 잡지 못한 외풍이 불어닥치는 속도를 낮춰줄 뿐만 아니라, 창문 자체의 서늘함도 어느 정도 감소시켜주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치게 두꺼운 커튼은 햇빛을 전부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지만, 적어도 저녁에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커튼을 쳐놓는 것이 여러 모로 이득이다.
3. 보일러를 확인하라.
이태원으로 이사오기 전 살던 약수동 방에 처음 들어갔던 날. 삭풍이 몰아치던 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기 괜찮을 거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지도 못한 방에서 박스들을 한 켠으로 밀어두고, 가을이와 함께 잠을 청했다. 가스비가 걱정되긴 했지만 보일러를 높게 틀어 놓았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붙이고 있어도 방이 하나도 안 따뜻해지는 것 아닌가. 보일러는 폐병 걸린 미소년이 밭은기침을 하듯 쿨럭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십분이 지났는데도 방바닥에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희망온도'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20도. 그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춥나, 내가 뭘 잘못했길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덜덜 떨면서 억지로 눈을 붙였다.
자고 일어나서 보일러를 확인해보니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희망온도'와 '난방온수온도'가 별도로 조작 가능하게 되어 있었고, '난방온수온도'가 40도였나, 아무튼 가장 낮은 수치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 밤 내 방의 바닥에는 내 체온보다 고작 3~4도 정도 높은 알량한 온수, 그 미적지근한 물이 왔다갔다하면서 난방을 하겠답시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내 기억에 그 보일러는 귀뚜라미 제품이었다. 난방온수온도의 비밀을 안 이후로는 단 한 번의 고장도 없이 잘 썼다는 점을 괜히 적어본다).
옛날에 했던 바보짓을 굳이 공개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보일러 조작 같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우선 따져봐야지, '전기담요가 얼마쯤 할까' 같은 다음 단계의 고민을 먼저 하면서 괜히 세입자의 서러움 같은 것을 느끼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특히 실내가 실외보다 춥다면, 집이 완전히 잘못 지어지지 않은 바에야, 보일러가 안 돌아가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보일러를 확인해야 한다. 계기판을 꼼꼼히 살펴보고, 본체에 써있는 주의사항도 읽어보도록 하자.
내가 방금 말한 세 가지 사항은, 사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기본적이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그런 것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를 경우 그로 인해 한없는 고통을 겪으며 괜한 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괜히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같은 시를 읊으며 타향살이의 설움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거나, 이성친구도 없으면서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따위 싯귀를 웅얼거리거나, '청계천 8가' 같은 노래를 부르거나, 뭐 이런 짓을 하고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감상에 빠지기 전에 실질적인 요소부터 점검해봐야 한다.
특히 요즘 독거청년들은 집에서 너무 곱게 자란 탓에, 가정 설비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도 갖추지 못한채 험난한 겨울을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어려서부터 이런 저런 가사노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 또한 막상 나와 살고 보니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겪으면서 겨우 배웠다.
혹시라도 이런 단편적인 지식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말 새벽에 일하다가 잠시 적어 보았다.
2008-12-06
2008-12-05
헌법재판소의 최근 두 판결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에 대해 부분위헌을 선언한 것 외에도, 헌법재판소는 최근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를 전담하도록 한 방송법 제73조 5항과 그 시행령 제59조 3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두 판결 모두, 해당 법률에 위헌 소지가 매우 다분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름의 공익적 차원에 기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조세 부과의 단위가 개인이 아닌 '가구'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코바코나 코바코가 출자한 회사가 아니면 방송광고 판매업을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본주의적인 상식선을 이미 어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바코는 출발 자체가 위헌적, 아니 차라리 초헌법적이었다. 1981년 전두환 시절에 만들어진, 신문과 방송을 옥죄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를 통폐합한 후,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방송사의 돈줄을 정부가 움켜쥐어버렸다. 이게 코바코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이 그렇다는 거고, 지금은 코바코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수많은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의 군소방송업체가 영세한 살림을 근근히 꾸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코바코는 태생적으로 헌법에 부합하지 않지만, 그것이 현재 '공공의 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미디어 시장 자체가 좁고, 미디어 수용자들의 쏠림 현상이 심한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언론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시장 경쟁보다 높게 볼 여지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그러한 정책적인 방향성은 그다지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다. 종부세에 대한 판결문에서는 최소한 '비례의 원칙'에 대한 판단이 있었고, 세대별 합산이 왜 만들어진 규정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헌법불합치이다, 이런 논증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나는 헌법재판소가, 이 두 건의 판결에 있어서, 해당 법의 입법 취지와 정책적 지향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가급적 존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사법소극주의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그 판결로 인해 모종의 지향성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는 사법적극주의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이것은 여담인데, 특히 대한민국처럼 정치적 균형이 짧은 시간 안에 격렬하게 요동치는 국가의 경우, 사법소극주의와 사법적극주의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사법적극주의는 입법부 내지는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헌법, 법률 자구의 문어적(文語的)인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선거에 의해 뽑힌 공무원들의 정책 결정을 대체하는 정책 결정을 판결을 통해 감행하는 진보적인 사법부의 태도"로 이해되는 반면, 판결을 통한 적극적인 가치 실현에 방점을 두고 사법적극주의를 "판사들이 선판례에 엄격히 얽매이지 않고 상급 법원의 판사들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진보적이고 새로운 사회 정책을 선호하는 사법부의 철학"으로 이해하는 입장 또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21쪽. 임지봉, 《사법적극주의와 사법권 독립》, (철학과현실사, 2004)]
만약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을 합헌으로 처리했다면, 그것은 입법부와의 관계에서는 사법소극주의가 되겠지만,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사법적극주의가 된다. 그러므로 가령,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경향신문, 2008년 11월 20일)를 놓고 '사법소극주의적 입장'이라 말하는 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최종적으로 남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가 우리의 정치 지형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역할에 걸맞는 책임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 원칙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그저 '재판소'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최종심까지 판결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법감정과, 정치적인 문제를 모두 헌재에 떠넘기는 정치권의 '관습'이 맞물려, 헌재는 현재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헌법 기관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헌법재판소 판사 개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평가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 사법부, 특히 헌재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그에 걸맞는 윤리적 평가가 판사에게 돌아가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것이 'XXX판사, 지켜보겠어!'라는 수준에서 멈추어서는 곤란하다.
헌재가 'Watchmen'으로 더더욱 큰 활약을 보이고 있는 지금, 'Who watches the watchmen(누가 감시가를 감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천진난만할 뿐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는 발상이다. 사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과 감시가 더욱 절실하다.
두 판결 모두, 해당 법률에 위헌 소지가 매우 다분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름의 공익적 차원에 기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조세 부과의 단위가 개인이 아닌 '가구'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코바코나 코바코가 출자한 회사가 아니면 방송광고 판매업을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자본주의적인 상식선을 이미 어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코바코는 출발 자체가 위헌적, 아니 차라리 초헌법적이었다. 1981년 전두환 시절에 만들어진, 신문과 방송을 옥죄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를 통폐합한 후,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방송사의 돈줄을 정부가 움켜쥐어버렸다. 이게 코바코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작이 그렇다는 거고, 지금은 코바코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수많은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의 군소방송업체가 영세한 살림을 근근히 꾸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코바코는 태생적으로 헌법에 부합하지 않지만, 그것이 현재 '공공의 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미디어 시장 자체가 좁고, 미디어 수용자들의 쏠림 현상이 심한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언론의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시장 경쟁보다 높게 볼 여지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그러한 정책적인 방향성은 그다지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지 않다. 종부세에 대한 판결문에서는 최소한 '비례의 원칙'에 대한 판단이 있었고, 세대별 합산이 왜 만들어진 규정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헌법불합치이다, 이런 논증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나는 헌법재판소가, 이 두 건의 판결에 있어서, 해당 법의 입법 취지와 정책적 지향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가급적 존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사법소극주의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그 판결로 인해 모종의 지향성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는 사법적극주의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이것은 여담인데, 특히 대한민국처럼 정치적 균형이 짧은 시간 안에 격렬하게 요동치는 국가의 경우, 사법소극주의와 사법적극주의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 사법적극주의는 입법부 내지는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헌법, 법률 자구의 문어적(文語的)인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선거에 의해 뽑힌 공무원들의 정책 결정을 대체하는 정책 결정을 판결을 통해 감행하는 진보적인 사법부의 태도"로 이해되는 반면, 판결을 통한 적극적인 가치 실현에 방점을 두고 사법적극주의를 "판사들이 선판례에 엄격히 얽매이지 않고 상급 법원의 판사들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진보적이고 새로운 사회 정책을 선호하는 사법부의 철학"으로 이해하는 입장 또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21쪽. 임지봉, 《사법적극주의와 사법권 독립》, (철학과현실사, 2004)]
만약 헌법재판소가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을 합헌으로 처리했다면, 그것은 입법부와의 관계에서는 사법소극주의가 되겠지만,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는 사법적극주의가 된다. 그러므로 가령,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경향신문, 2008년 11월 20일)를 놓고 '사법소극주의적 입장'이라 말하는 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최종적으로 남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헌법재판소가 우리의 정치 지형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역할에 걸맞는 책임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가? 원칙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그저 '재판소'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하지만 최종심까지 판결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법감정과, 정치적인 문제를 모두 헌재에 떠넘기는 정치권의 '관습'이 맞물려, 헌재는 현재 가장 영향력이 막강한 헌법 기관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헌법재판소 판사 개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평가가 높아질 필요가 있다. 사법부, 특히 헌재의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그에 걸맞는 윤리적 평가가 판사에게 돌아가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물론 그것이 'XXX판사, 지켜보겠어!'라는 수준에서 멈추어서는 곤란하다.
헌재가 'Watchmen'으로 더더욱 큰 활약을 보이고 있는 지금, 'Who watches the watchmen(누가 감시가를 감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천진난만할 뿐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는 발상이다. 사법부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과 감시가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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